‘예술병’이란 말이 있다. 쥐뿔도 없으면서 무언가 초월적이고 거창한 예술을 하는 것처럼 고고하게 구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끝없는 허세가 어딘가 ‘중2병’과 닮았다. 이들은 보통 뜻이 높고 능력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세상을 놀라게 할 대단한 재능은 또 아니고, 그렇다고 집에 돈이 많아서 든든한 지원을 받을 처지도 못 된다. 예술에 인생을 걸고는 싶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그러나 중증의 ‘예술병’ 환자는 현실의 벽 앞에 꺾이지 않는다. 나를 몰라주는 세상이 잘못된 것이지, 내 미의식이 잘못됐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필연적으로 지질해진다. 급기야 나를 제치고 성공한 사람에게 질투와 분노를 느끼고 훼방을 놓기도 한다.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부끄러움조차 잊는다. 여기까지 오면 ‘예술병’의 실체가 드러난다. 겉으로는 예술이 존재의 목적이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예술은 어디까지나 있어 보이는 수단일 뿐, 마음속에는 예술을 통해 내가 세상의 중심에 서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마영신 작가의 〈아티스트〉는 이런 예술가들의 맨얼굴을 다룬 만화다. 주인공은 셋이다. 신득녕, 히트작 없는 소설가. 곽경수, 화가이며 대학 시간강사. 천종섭, 인디 뮤지션. 모두 40대인 셋은 예술가 모임인 ‘오락실’에서 마지막까지 뜨지 못한 최후의 삼인방이다. 세 사람은 틈만 나면 곽경수의 화실에 모여 술을 마시며 우리는 뜨더라도 절대 변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셋의 관계는 천종섭이 뜨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발단은 득녕이 종섭에게 에세이를 써보라고 권하면서다. 득녕은 종섭의 글에 기틀을 잡아주고 출판사와도 연결해준다. 그런데 이 책이 대박을 터뜨리고, 종섭은 순식간에 인기 작가로 떠오른다. 그러자 종섭과 득녕은 점점 오해가 쌓여 멀어지게 된다. 득녕은 자괴감과 싸우면서, 알고 지내던 편집자와 힘을 합쳐 〈오락실〉이라는 새로운 문학잡지를 창간한다. 〈오락실〉은 좋은 신인 작가를 발굴해 인기 잡지로 떠오른다. 한편 곽경수는 예술진흥원 원장의 ‘라인’을 타면서 끗발이 오르기 시작한다. 그는 법인카드를 휘두르며 권력 끄트머리의 꿀맛을 보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혀를 차면서 끝까지 보게 되는 작품

그러나 이들 앞에 곧 위기가 닥친다. 종섭은 점점 안하무인이 되어가고, 경수는 법인카드로 룸살롱을 드나들다 ‘라인’에서 잘린다. 득녕은 최고의 인기 작가가 다른 출판사로 옮기겠다는 통보를 받는다. 한번 성공했다가 추락한 이들의 현실은 더욱 비참하고, 셋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변한다.

〈아티스트〉는 예술가를 표방하지만 사실은 평범한 속물들의 초라한 면면을 리얼하게 그려낸다. 형식은 픽션이지만 내용은 작가가 주변에서 겪은 이야기를 반영한 논픽션에 가깝다. 한없이 부끄럽고 때로는 안쓰럽고 그래도 좀 잘 풀렸으면 싶다가도, 끝내 혀를 차면서 어느새 끝까지 보게 되는 작품이다.

기자명 박성표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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