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체공녀 강주룡〉과 〈마르타의 일〉에 이어 세 번째 장편소설인 〈더 셜리 클럽〉을 출간한 박서련 작가.

셜리(Shirley). 박서련 작가의 영어 이름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있을 때 서련이라는 발음이 어려워 영어 이름을 썼다. 셜리로 사는 동안 깨달았다. 그 나라에서 셜리는 ‘유행이 한참 지나버려서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붙이지 않는’ 이름이라는 걸. 한국으로 치면 ‘자’나 ‘숙’으로 끝나는 이름보다도 더 오래된 느낌이랄까. 매년 1월, ‘오스트레일리아의 날’을 기념해 멜버른 시내에서 페스티벌이 열린다. 각 나라의 전통의상을 입은 이민자들과 빅토리아 시대의 신사처럼 차려입은 시민들이 퍼레이드를 한다. 박 작가도 페스티벌을 구경했다. 그때 ‘더 셜리 클럽’이 나타났다. 아무 퍼포먼스 없이 사람 좋아 보이는 할머니들이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명찰에 쓰인 이름은 모두 셜리였다. 수많은 ‘셜리들’이었다. 근사해 보였다. 박서련 작가는 외치고 싶었다. “내 이름도 셜리예요.”

작가가 하지 못한 걸 작가의 소설 〈더 셜리 클럽〉 속 주인공 셜리는 해낸다. 그의 본명은 설희. 무리에 속해 그들을 따라 걷기까지 한다. 박서련 작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이번엔 사랑 이야기다. 1931년 한국 최초로 고공농성을 벌였던 여성 노동자 강주룡의 삶을 그린 첫 번째 소설 〈체공녀 강주룡〉과 자살한 줄 알았던 동생이 살해당한 걸 알고 범인을 추적해 복수하는 언니의 이야기를 그린 〈마르타의 일〉은 거침없이 진격하는 이야기였다. 그 둘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그때도 사랑 이야기가 주된 건 아니지만 사랑의 감정을 다룬 부분이 좋았다는 반응이 있었다. 사랑에 대해 써볼까 결심하던 차에 문학잡지 〈릿터〉의 지면이 주어졌다. ‘빨리 써야겠다. 잘 아는 이야기에서 시작해야지.’ 작가 본인이 경험한 오스트레일리아 워킹홀리데이를 생각했다.

‘셜리들’을 따라간 펍에서 주인공은 S를 만난다. 파독 한인 부부 사이에서 난 어머니와 영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고 뮌헨에서 자란 그의 목소리는 ‘완벽한 보라색’이다. S의 도움으로 셜리는 ‘더 셜리 클럽’의 문을 두드린다. 어린 동양 여자가 자신도 셜리라며 클럽에 가입하겠다고 하자 상대는 갸웃한다. 셜리는 그렇게 임시 명예회원이 된다. 한꺼번에 100명 넘는 친구를 사귄 셈이다. 당장 일하는 치즈공장의 포장 파트, 부인 한 명이 쉬는 시간에 다가와 그를 덥석 안았다. 그도 셜리였다. 실존하는 ‘더 셜리 클럽’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재미, 음식, 친구(Fun, Food, Friend)’라는 세 단어가 가장 먼저 뜬다. 소설 속 셜리들도 중요하게 여기는 세 가지다. 지역마다 지부가 있는 전국구 클럽이다. 각 지부의 셜리들은 갑자기 사라진 S를 찾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이기도 하다. 작가가 본 인상적인 독자 반응 중 하나도 셜리 클럽의 (일산) 원당지부를 만들겠다는 내용이었다.

작가는 실제 워킹홀리데이로 1년간 오스트레일리아에 머물렀다. “작가가 할 말인가 싶기는 하지만 (이번 소설은) 해외 생활 ‘희망 편’인 것 같다. 실제 생활은 ‘절망 편’이고.” 그곳에서 청소 일을 했다. 카트로 된 대형 물 청소기를 몰 줄 알게 되었다. 어딜 가면 청소 견적을 내보는 습관이 귀국 후 2~3년까지는 갔다. 그 시기 기억의 한 조각이 선명하다. 룸메이트와 크게 싸우고 짐을 싸서 나왔다.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했다. “당장 한국 갈래.” 그때 교복 입은 키 큰 현지 청소년들이 다가왔다. 길을 잃었냐며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했다. 그 시기 작가는 어렸고 그곳 사람들은 실제보다 그를 훨씬 어리다고 짐작했다. 전화기에선 엄마가 한국말을 하고 있고 그 친구들은 작가의 눈물을 닦아주려 영어로 말하고 혼란스러운 와중에 눈물이 그쳤다. 신선한 충격으로 남았다. “10년은 어린 친구들이 나를 위로하겠다고 하는데 과연 내가 어떻게 보였을까.”

책이 막 나왔지만, 계속 쓰는 일상이다. 짧은 소설을 연재하고 있고 문예지 청탁 원고를 마감 중이다. 앤솔로지 작품집에도 참여하고 있다. 장편소설 두 권을 엎드려서 쓰는 바람에 허리가 망가져 조심하는 중이다. 그는 전업 작가가 아니라 실업 작가라고 표현했다. 직장을 못 구해서 글만 써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 이번 소설을 쓰는 중에 코로나19가 시작됐다. 출간 즈음엔 끝나 있을 줄 알았다. 책이 나오기 한 달 전부터는 우울한 마음이 든다. 이번에도 그랬다. 실업 작가라는 표현과 맞닿아 있다. ‘이 일로 계속 버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자주 맴도는 시기다.

2018년 〈체공녀 강주룡〉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을 당시 서영인 문학평론가는 “거침없이 나아가되 쓸데없이 비장하지 않고,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으나 자기 연민이나 감상에 젖지 않는 이 인물을 통해 우리는 전혀 다른 여성 서사를 만난다”라고 했다. 많은 독자들이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2011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고공농성을 할 때 대학생이던 그도 ‘희망버스’를 탔다. 당시 기사에 강주룡이 많이 언급되었고 거기서 실마리를 얻었다. 동생을 죽인 가해자를 끝까지 찾아 나서는 〈마르타의 일〉도 그렇고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은 성실하고 좀체 ‘지지 않는 여성’이다. 등장인물도 대체로 여성이다. 오스트레일리아가 배경인 이번 소설에도 남자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왜 여성 서사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남자가 주인공인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고 떠오른다고 해도 재밌을까 의심이 먼저 들 것 같다.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이야기를 쓰는데 떠오르는 주인공이 항상 여자다. 나로서는 여성 서사가 아니라 그냥 서사다.”

ⓒ아침달 제공5월8일 아침달 서점에서 문학 플랫폼 〈던전〉의 오프라인 낭독회가 진행되고 있다.

외쳐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박서련 작가는 문학 플랫폼 〈던전〉의 운영진이기도 하다. 지난 2월, ‘문예지를 경유하지 않으면 최신 문학작품을 접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 상황에서 매일 만날 수 있는 온라인 지면을 직접 만들었다. 대표로 있는 서호준 시인 등 다섯 명과 함께 꾸렸고 현재는 세 명이 남았다. 모두 문학 자조모임 ‘암흑의 한국문학 카운슬’ 일원이기도 하다. 작품 게재는 청탁이 아닌 투고를 기반으로 한다. 독자들에게 30일에 7000원의 구독료를 받고 있다. 문학계의 넷플릭스를 목표로 했으나 모두 문필가이지 기업가형 인재가 아니라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다.

발표할 지면이 없어 아쉬웠던 작가의 경험이 그 바탕에 있다. 2015년 등단 이후 원고 청탁이 거의 없었다. 〈체공녀 강주룡〉으로 주목받은 이후에도 단편소설 청탁은 여전히 없다. “개인적인 욕망은 글을 발표할 지면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등단과 상관없이 작품 활동을 하고 싶은 친구도 있었고 각자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지면을 미니멀하게 온라인에서 구현하기로 했다.” 등단 여부와 상관없이 투고할 수 있다. 등단한 작가가 글을 보내오기도 하고 〈던전〉에 실린 미등단 작가의 작품이 평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박 작가는 〈던전〉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둔다고 할까 싶다가도 작가 스스로 발표할 지면이 없던 시기에 얼마나 아쉬웠는지를 떠올리면서 ‘차력쇼’ 하듯 버티는 중이다.

그는 청소년 시절부터 글을 썼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소설로 ‘제15회 대산청소년문학상’ 금상을 받았고 시로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늘 잘 쓴다는 말을 들었다. 기억에 남는 칭찬은 문학상 수상 당시다. 심사위원 중 누군가 박 작가를 소개하며 “철원 사람”이라고 했다. 철원에 문재(文才)가 많다며 이태준·김소진 작가의 이름을 말했다. 크게 될 거라고 했다. 예상보다 등단이 늦어지면서 역시 ‘성인 리그’는 다른 것인가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문단의 주목을 받았지만 그 시기 집안은 급격히 기울었다. 아버지는 특수고용 노동자로 분류되는 덤프트럭 운전사였다. 수개월 임금체불이 이어졌고 집안이 주저앉았다.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과 누구에게도 일어나선 안 된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다. 이럴 때 나를 위해 누군가 외쳐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외쳐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대학 진학 후 자연스럽게 학생회 활동을 했다. 희망버스도 그때 탔다. 어느 날 그가 소속되어 있던 ‘생활도서관’이 학생 자치 기구에서 제외됐다. 과거, 선배들이 강의실을 점거하고 갹출한 책을 모아 만든 도서관이었다. 일명 ‘비권(비운동권)’ 학생회의 결정으로 자치 기구에서 탈락했다. 생활도서관 대신 헬스클럽이 만들어진다는 소문이 들렸다. 학교에 다니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학 중이었고 집안 형편도 좋지 않아 자퇴를 했다. 언제고 목소리를 내야 할 때 내는 편이다. 올해 초 이상문학상에 항의해 윤이형 작가가 절필 선언을 했을 때 말을 보탠 이유다. “문단에 아는 분도 많지 않고 대표성도 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했던 건, 정작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사람이 아닌 높은 윤리적 기준을 가진 사람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너무 이상해서였다.”

‘강주룡 지분’을 넘어서

이십대 중반, 글쓰기밖에 못하는 사람이 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다가도 적성과 특기가 일치하는 게 어딘가 싶었다. 드디어 스물여섯, 〈실천문학〉으로 등단했지만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3년 뒤 나온 첫 장편소설 〈체공녀 강주룡〉으로 각종 찬사를 들었다. “지분을 따졌을 때 작가보다 강주룡에게 보내는 찬사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는 〈마르타의 일〉부터가 본인의 실력이라고 말했다. “덕을 보며 시작한 셈이지만 주특기가 강주룡은 아니다. 제 실력만으로 평가받을 때 그게 정직한 대중의 반응이다. 실망할 사람은 빨리 실망하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서도 여전히 좋아해주는 분들과 아직 내 소설을 만나보지 못한 분들에게 다양한 맛을 보여드리고 싶다.”  

작가는 이번 소설이 성인 여성들을 위한 ‘빨간머리 앤’이나 ‘키다리 아저씨’ ‘소공녀’였으면 좋겠다. 멋진 일이 일어나는 걸 보며 가슴이 두근두근해지는 고전처럼 말이다. 사랑과 긍정의 에너지 때문에 읽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지금 시대의 동화’면 좋겠다. 목표는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 같다. 낯선 공간에서 타인에게 보여주는 ‘셜리들’의 선의와 연대는 어느 때보다 배제와 혐오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지금, 코끝이 찡할 정도로 감동적이다. ‘더 셜리 클럽’의 멤버가 되고 싶은 건 원당에 사는 독자만이 아닐 것이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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