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전공의 파업 이틀째인 8월27일 서울성모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A 의료원은 지역 소도시의 공공병원이다. 병원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인근 4개 군의 환자들까지 이곳을 찾는다. 전체 약 2800㎢ 면적의 지역에 대형병원이 A 의료원뿐이기 때문이다. 서울 면적의 4.7배 수준이지만, 인구는 인근 지역을 다 합쳐도 20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 인구가 적다고 응급환자 발생률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14년째 근무 중인 김명우씨(46·가명)는 “응급실로 걸어 들어와서 장례식장으로 가버린” 환자들을 떠올렸다. 의사가 없어서였다. 심장내과 담당의가 공석이었다. 야간에는 소아과 응급진료가 어려워 환자들을 인근 대도시 대학병원으로 보내야 했다. 그때마다 환자들은 도로 위에서 한 시간을 더 보내야 한다.

한국의 의료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자화자찬은 인구 100만명 이상 대도시 밖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소도시, 농어촌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병원) 가다가 죽는다”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나돌고 간호사들은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응급실을 지킨다. 의료 취약지에는 의사가 없고, 병원이 없고, 의료 장비를 운용할 인력이 없다. A 의료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시군구별로 분석한 결과, 2020년 6월 기준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가 1명 미만인 시군구는 강원 고성군(0.45명), 강원 양양군(0.47명), 충북 단양군(0.65명) 등 45곳이었다. 서울 종로구(16.29명), 대구 중구(14.66명), 부산 서구(12.67명) 등과 비교해봤을 때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의 핵심 대상은 A 의료원 부근 같은 의료 취약 지역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23일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방안’을 발표하며 “지역의 중증(심혈관, 뇌질환, 응급) 및 필수 의료 공백 해소를 위해 필요한 의사 수는 약 3000명으로 추계된다”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지역의사제’ 추진 방안에 따르면, 2022학년도부터 의대 정원 증가분 연 400명 중 300명을 ‘지역의사 선별전형’으로 뽑아 지역 내 공공의료 및 중증·필수 의료기능 수행 의료기관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복무토록 한다. 불이행 시 국가와 지방정부가 지원한 장학금을 환수하고 면허가 취소된다.

반면 의사 단체는 전국적으로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으며, 무분별한 정원 증가로 의료서비스의 질이 낮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10년 강제 복무’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있고, 수가 현실화, 부실한 병원 재정 등 근본적인 근무 여건을 개선하지 않은 채 의사 수만 늘리면 ‘밑 빠진 의료에 의사 붓는 꼴’이 된다고 우려한다. 정부와 의사 단체가 공전하는 동안 막상 의료 취약 지역에 의사가 부족한 원인과 그 대안에 대해서는 논의가 심도 깊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지역 의료 현장에 있는 이들일수록 ‘소모적 논쟁’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정책이나 파업이나 지방 의사들의 생각은 안 물어보고 하는 것 같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의료원에서 일하는 고한석 전문의(정형외과 과장)는 최근 의대 정원 확대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서울 한 종합병원에서 정년퇴직한 뒤 영월에 터를 잡았다. ‘시골 의사’가 된 지 올해로 6년째다. 고 전문의는 지방, 특히 소도시와 농어촌 지역에서 체감하는 의사 공백은 수도권에서 체감하는 수준과 다르다고 지적한다.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는 전국 어디서나 기피하는 과이지만, 지방일수록 인력난이 심각하다. 최혜영 의원실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전남 신안군, 경남 함양군 등 9개 군에는 내과 전문의가 단 1명뿐이다. 강원 횡성군·정선군 등 11개 군에는 산부인과 전문의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내외산소’ 이외에 감염내과·방사선과·신경과 등도 필수 의료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분야다. 고 전문의는 “우리 병원 비뇨기과는 7~8개월째 담당 의사를 못 구하고 있다. 서울에서 받는 월급의 1.5배를 준다고 해도 지원자가 없다”라고 말했다.

“지역과 관계 맺은 의사가 오래 머문다”

지방 공공병원 의사가 받는 월급은 적지 않다. 지난 8월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18개 지방의료원의 2019년도 의사 인건비를 조사한 결과, 성과급을 포함한 개별 의사의 최고 연봉은 최대 6억5000만원으로 파악됐다. 평균 연봉도 약 2억2500만원으로 의사가 아닌 직원에 비해 평균 4.4배 수준이었다. 이런 ‘유인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방에서 의사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교육기관, 문화시설, 교통망 등 도시 인프라가 부족한 곳에 자진해서 내려올 사람도, 잘 버티는 사람도 드물다고 지역 의료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그러다 보니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 의료 격차를 대체복무 중인 공중보건의로 겨우 메우고 있다. 전남 강진군 강진의료원이 대표적이다. 이곳 의사 17명 중 공중보건의가 6명에 달한다.

서울 서북병원 박찬병 원장은 “(지역 의료시설에) 대단한 천재가 필요한 게 아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환자들을 친절하게 진료하고 치료할 수 있는 의사면 충분하다. 모든 의사가 서울 대학병원의 교수가 되어야 할 필요도, 될 수도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박 원장은 경주보건소장, 수원의료원장, 삼척의료원장, 천안의료원장 등을 역임하며 30년 넘게 지역 공공병원에 몸담아온 인물이다. ‘기본에 충실한 인재면 충분하다’고 채용의 눈높이를 낮췄지만, 지역에선 사람을 구할 수 없었다. 박 원장은 “채용한 의사가 한 달 만에 사직서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전북 남원시 남원의료원도 상황은 비슷했다. 남원의료원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1월 심혈관센터가 오픈한 이후 채용된 의사가 한 달 만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심혈관센터 담당의가 한 명뿐이라 야간진료, 주말 당직까지 혼자 메우기엔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소아과도 사정은 비슷했다. 24시간 응급진료가 가능하려면 최소 의사 2~3명, 간호사 5~6명이 필요한데 의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의료원 최원호 전문의(외과 과장)는 “병원에 시설장비 투자하는 것을 공공의료 확충이라고 하면 안 된다. 거기서 일할 의사가 1명인데 누가 독박 쓰러 오겠나”라고 말했다.

최원호 전문의는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다 7년 전 창원시로 돌아왔다. 창원이 고향이라서다. 당시 입사 제안을 받았을 때 전 직장 동료들은 ‘(지방으로) 농땡이 치러 가는 것 아니냐’ ‘커리어 생각하면 가지 않는 게 좋다’라며 그를 말렸다. 최 전문의는 “아버지 암 치료도, 아이 귀 수술도 지역(창원)서 했다. 꼭 서울로 가야 하는 희귀병이 아니라면 여태처럼 생로병사를 고향에서 치르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처럼 지역 출신이거나 지역 의대에서 수련 과정을 거친 경우 자연스레 지역 의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박찬병 원장이 “지역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은 의사일수록 지역에 오래 머문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그러나 지역에 머물 ‘구실’은 점점 더 약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의대 졸업 이후 대학 소재 지역에서 계속 근무하는 비율은 지역별 편차가 크다. 서울 54.5%, 경기 41.8%, 대구 44.4% 등 대도시는 해당 지역에 계속 머무르는 비율이 높다. 그러나 경북(10.1%), 강원(13.8%), 충남(16.6%) 등에서는 의대 졸업 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런 현상은 의사 개개인의 선택에 맡겼을 때 지역에서 정주하는 의사를 배출하기 어렵다는 추정을 뒷받침한다. 전문의료기관의 서울 쏠림 현상도 가속화될 공산이 크다. 마산의료원 최원호 전문의는 “서울에서 죽으면 최선을 다한 거고 지역에서 죽으면 의료사고다. 심지어 서울에서 펠로가 집도하고 지방에서는 경력 10년 차 전문의가 (수술)했더라도 환자나 보호자는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르다. 암 환자에게 지역 종합병원에 가보라고 했더니 ‘여기서 죽으란 소리냐’며 오히려 화를 내시더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연합뉴스8월26일 대구광역시 영남대학교병원에서 한 의대생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건강보험수가 인상은 해결책 아니다”

정부 정책이 도입되더라도 10년 복무를 마치고 수도권으로 돌아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지적도 이런 점 때문이다. 결국 10년을 지역에서 ‘버티는’ 의사가 필요한 게 아니라면, 지역에 정주할 환경과 조건을 만드는 것이 지금 논의해야 할 과제다. 의사 단체들은 의사 수를 늘리는 대신 건강보험수가를 현실화하면 지역별 불균형이 해결될 것이라고 보지만 이 역시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다. 울산대학교 옥민수 교수(예방의학과)는 “산부인과 진료 건수가 적은 농어촌 지역은 수가를 올린다고 해서 의료 수요가 창출되지 않는다. 산불 발생 빈도가 적은 강원도 어느 지역에 소방대원이 출동을 할 때마다 돈을 100만원씩 더 준다고 해서 소방서가 더 늘어나겠나”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6년 보건복지부는 강원도 영월군, 태백시 등 분만 취약 지역 97개 시·군의 분만수가를 200% 가산하는 등 지원정책을 시행했지만 의사 수급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역 의료 관계자들은 이번 정부안만으로는 지역 공공의료를 확충하기에 부족하다고 말한다. 의사 수를 늘리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어떻게’ 늘릴지에 대한 현실적인 검토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인구 6만명 규모의 농촌 지역에 소화기내과·내분비내과·심장내과를 다 갖춰놓을 수 있을지, 인근에 종합병원이 충분히 있는 지역에 공공의료사업으로 심혈관센터나 분만센터가 반드시 필요한지 등이 논의거리로 남았다. 어디에, 얼마나 인력과 자원이 배분되어야 하는지, 각 지역에 필요한 필수의료와 공공사업이 무엇인지도 면밀히 살펴야 할 문제다.  

정부는 전국 공공병원 57개를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운영했다. 사회가 공공의료의 존재 의미를 공유하게 된 계기였다. 그러나 외래 업무가 중단되고 의료인력이 선별진료소 업무에 투입되면서 지역 소도시에는 의료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지역에서 유일한 종합병원이라면 공백이 더욱 컸다. 남원의료원의 경우 간호사를 차출하기 위해 호스피스 병동을 폐쇄해야 했다. 그 동안 호스피스가 꼭 필요한 말기 암 환자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올해 5월 외래진료가 재개된 이후 영월의료원 고한석 전문의는 하루에 환자를 70명씩 보고 있다. 대부분 60~70대 고령층 만성질환자다. 산 너머 정선군·평창군에서 오는 이들도 더러 있다.

의사를 늘려야 하냐, 말아야 하냐를 논쟁해야 할 단계는 이미 지났다. ‘어떻게 늘려야 할지’가 문제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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