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경기도교육연구원의 ‘코로나19와 교육:학교 구성원의 생활과 인식을 중심으로’ 조사 결과, 예상대로 학부모들은 오프라인 학교 부재로 인한 ‘학습·돌봄 공백’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학부모(보호자)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여러 부문 삶의 질이 떨어지고, 계층 격차가 벌어졌으며, 교육의 ‘뉴노멀’에 목소리를 내는 코로나19 이후 초중고 자녀(10~19쪽 기사 참조)를 바라보며 학부모들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느꼈을까? 경기도교육연구원의 ‘코로나19와 교육:학교 구성원의 생활과 인식을 중심으로’ 조사(학부모 3만1042명 응답) 결과, 그간 예상대로 학부모들은 오프라인 학교의 부재로 인한 ‘학습·돌봄 공백’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학부모들은 보호자 역할에 더해 자녀들에게 학습 교사, 생활지도 교사는 물론 조리사, 친구의 역할까지 해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이런 부담을 덜어주는 교사·학교의 지원과 지역사회 돌봄 인프라 구축에 아쉬움이 컸다. 학부모가 겪은 돌봄과 학습 지원 고충의 정도는 또한 계층별로 갈렸다. 소득이 낮을수록, 코로나19로 가정경제가 받은 타격이 클수록 갑작스레 바뀐 학교 정책으로 인한 고통도 컸다. 재난은 불평등하며, 재난으로 인한 교육 변화 역시 불평등하다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 엄마는 매일매일 하루 종일 담임, 조리사, 전산실 직원, 그리고 학생주임

초등학생과 중학생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 박수미씨(가명·42)는 코로나19 이후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다. 맞벌이 부부이지만 재택근무를 할 수 있어서 코로나19 초기에는 직장 일과 등교하지 않는 자녀를 돌보는 일이 병행 가능할 줄 알았다. 반년이 지난 지금, 박씨는 퇴사를 고려하고 있다.

두 자녀의 학사 일정을 챙기는 일부터 쉽지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학교 알리미 앱이 번거로워 알림을 꺼놨다가, 중요한 공지(등교나 시험 일정이 갑자기 바뀐다든가, 내일까지 학습 꾸러미를 받아야 한다든가)를 몇 개 놓쳐 식은땀을 흘리기도 했다. 온라인 수업에 대비해 집에 있던 공기계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를 정비해놓긴 했지만 오래된 탓인지 조금만 사용해도 금방 배터리가 닳아, 아이들이 자꾸 ‘새걸 사달라’고 조른다. EBS 방송 수업이 겹칠 때는 둘이 서로 화면이 큰 기기로 보겠다며 싸우고, 쌍방향 수업 시간에는 각각 마이크와 스피커를 점검해주고 조용한 공간을 마련해주느라 아침마다 야단법석을 떤다.

예전 같으면 학교에서 풀고 채점도 해왔을 교과서나 학습지 문항도 일일이 점검하고 매겨줘야 한다. 과제를 망쳤다며 학습지를 다시 출력해달라는 둘째 아이의 요구에 이번에 새로 마련한 프린터를 켰는데 오류가 나서 한참을 실랑이하고, 떨어진 A4 용지와 잉크 토너도 주문해야 한다. 온라인 수업을 챙기느라 아침 식사 설거지도 못했는데 금세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부랴부랴 밥을 짓고 차리다 보면 아이들은 그새 또 몰래 스마트폰 게임이나 유튜브를 켜서 놀고 있다. 다시 수업에 집중하라며 잔소리하고 화를 내면 사춘기인 큰아이가 또 발끈하며 대든다. 매일 평일 오전 반복되는 박씨의 일상이다. 재택 업무를 할 시간도, 에너지도 없다.

경기도교육연구원 조사 결과, 초중고 학부모 56.6%가 박씨처럼 자녀의 온라인 학습지도에 어려움을 겪었다(21쪽 〈그림 1〉 참조). 자녀의 미디어 과다 사용 때문에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그림 2〉 참조). 코로나19 이전이라면 학교에서 먹고 왔을 자녀의 평일 점심식사를 챙기는 일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그림 3〉 참조).

ⓒ시사IN 최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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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들은 온라인 학습과 생활지도에 대한 교사·학교의 도움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자녀의 학습에 대해 학교 선생님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증가했다’에 19.2%만이 그렇다고 답했다(〈그림 4〉 참조). ‘온라인 학습 시 자녀의 진로 및 생활에 대해 교사와 자주 이야기한다’는 응답도 15.5%에 그쳤다(〈그림 5〉 참조). 지역사회의 도움도 절실하다. ‘지역에 아동의 돌봄과 교육을 지원하는 시설이나 제도가 더 구축되어야 한다’에 학부모 87.6%가 동의했다(〈그림 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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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봄 위기는 가난한 집에 더 ‘비싸다’

학부모들에게 코로나19가 가정경제에 끼친 영향을 물었다(〈그림 7〉 참조). 57.8%가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고, 21.5%가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다. ‘별로 영향이 없다’는 답은 20.6%에 그쳤다. 코로나19로 받은 경제적 타격이 클수록 현재의 교육 상황도 버거워했다. ‘요일별 등교’ 혹은 ‘주기별 등교’로 학생이 드문드문 학교에 가는 현재의 등교 방식에 대해 코로나19로 인한 가정경제 타격이 큰 학부모일수록 불만족도가 높았다(〈그림 8〉 참조). 맞벌이일수록, 가정경제 하층일수록 ‘지금의 학교’에 만족하기 힘들었다(오른쪽 〈그림 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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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온라인 수업을 돕고 학교 일정과 과제를 챙기는 일은 모든 학부모의 어려움이었지만, 특히 경제 사정이 나쁜 학부모일수록 그 고충을 크게 겪었다. ‘자녀의 온라인 학습·교육 활동을 지도하는 것이 어렵다’고 답한 학부모가 상층에 비해 하층에 훨씬 많다(〈그림 1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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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스트레스는 가족 간 불화로도 이어진다. 학생들에게 ‘코로나19 이전보다 보호자(부모)의 잔소리가 늘었는지’ 물었을 때 가정경제 하층으로 갈수록 ‘그렇다’는 비율이 높아졌다. 함께 거주하는 구성원(가족)과의 다툼이 늘었는지를 물었을 때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상층은 오히려 다툼이 ‘줄었다(23.6%)’는 비율이 ‘늘었다(18.1%)’는 비율보다 높았다. 하층 가정은 17.5%만 다툼이 줄었고 32.1%가 다툼이 늘었다. 코로나19 이후 학습과 돌봄의 위기는 가정의 화목도 계층별로 갈랐다.

경제적 여유가 부족한 가정은 학습과 돌봄의 위기에 대응하는 ‘비용’도 더 들었다. 학부모 송혜진씨(가명·39)는 잔뜩 누적된 가계 빚을 갚기 위해 자녀들의 등교 중지에도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 나가 돈을 벌어야 했다. 초등 3학년 자녀의 온라인 수업과 과제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늘 미안하던 송씨는 최근 수학 방문 학습지를 새로 신청했다. “EBS 강의만 듣고는 도저히 어려워서 못 풀겠다”라며 수학 교과서를 들고 울상을 짓는 아이를 보고서다. 송씨는 없는 형편에 수학 문제집도 잔뜩 사들였다. 이대로 가면 영영 학습이 뒤처질까 불안해서였다. 혼자 집에 오래 있어야 하는 아이가 신경 쓰여서 동네 태권도 학원도 새로 등록했다. 송씨는 “남들보다 앞서가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코로나19 이전보다 어째 사교육 비용이 점점 더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위기에서 취약계층에 오히려 학습과 돌봄의 비용이 가중되는 현상은 실제 통계로도 나타난다. ‘자녀의 온라인 수업·보충을 위한 사교육비(유료 보습·보충 학원)가 증가했다’는 비율이 가정경제 하층일수록 높다(〈그림 11〉 참조). ‘자녀의 학습 이외 돌봄을 위한 사교육비가 증가했다’는 비율도 마찬가지다(〈그림 12〉 참조). 온라인 수업을 위해 새로 디지털 기기나 장비를 구입하는 지출, 학습을 위한 책이나 참고서를 구입하는 지출도 가정경제가 어려운 하층이 가장 많이 증가했다. ‘기본 인프라’의 격차를 메우기 위한 지출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학교나 도서관, 여러 아동·청소년 문화센터 등이 학습과 돌봄의 ‘기본 인프라’ 비용을 나눠 부담했지만, 방역을 위해 모든 공공·교육·문화·복지 기관들이 문을 닫게 되자 그 부담이 모조리 개별 가정으로 돌아가게 됐고, 기본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은 저소득층일수록 그것을 메우기 위한 비용이 증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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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만 버티자’하던 것이 ‘한 학기만 버티자’로, 이제는 1년을 갈지 2년을 갈지 모르는 상태로, 많은 가정들이 학습과 돌봄 위기 앞에서 지쳐가고 있다. 임시방편과 긴급처방으로는 이제 더 이상 굴러가기 힘들다. 지속 가능한 온라인 학습과 돌봄을 위해 이제는 ‘긴급’이 아닌 ‘정식’ 코로나19 대응 돌봄체계를 짜야 한다. 김형모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초등학교의 방과후 돌봄, 기존의 지역아동센터, 우리동네 키움센터·다함께돌봄센터 등 지자체 운영 돌봄기관 이렇게 세 개 축으로 보편적 아동 돌봄체계를 적어도 올해 말까지 시급히, 또 탄탄히 짜야 한다”라고 말했다. “각 돌봄기관에서 온라인 수업 지원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예산과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하고, 뉴딜 사업이나 청년 일자리 사업에 학생들의 학습·돌봄 일자리도 포함되어야 한다. 꼭 저소득층이나 맞벌이 가정이 아니더라도 돌봄 지원이 보편적으로 제공되도록 체계를 짜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기자명 글 변진경 기자·그래픽 최예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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