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향년 85세. 내내 고생만 하다 가셨다. 싱글맘이어서 남보다 조금 더 고생스러운 세월을 살고 가셨다. 더 이상 어머니의 손을 잡을 수 없어 허전하던 그의 손에 소설 한 권이 들어왔다. 여성작가 마르타바 탈라가 쓴 〈A Vida Invisível de Eurídice Gusmão 에우리디스 구스망의 보이지 않는 삶〉.

“소설을 읽자마자 어머니를 떠올렸다. 이모가 생각나고 할머니도 기억났다. 그 세대 여성 모두의 이야기였다. 나는 1960년대 브라질 북동지역의 보수적인 가부장제 문화에서 자랐다. 남성들은 주로 떠나거나 자주 부재했다. 나는 여성들이 주도하는 가족의 일원이었고 우리 집에서는 여성이 주연이었다. 그럼에도 어머니 세대 여성의 서사는 소설, 역사, 그리고 영화에서조차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여성의 역사, 그 한 페이지에 빛을 비추는 이야기. 꼭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인비저블 라이프〉 보도자료 중 카림 아이누즈 감독 인터뷰 인용).”

1950년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의 첫날은 아버지의 손님이 집에 오는 날이다. 에우리디스(캐롤 두아르테)와 언니 귀다(훌리아 스토클러)가 예쁘게 단장하고 손님을 맞이한다. 함께 식탁에 앉아 웃음꽃을 피워내는 일, 그 시대의 딸들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그 일을 하기 위함이다. 그러다 언니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딸이 남긴 쪽지를 남편에게 읽어준다.

“아버지, 전 자유를 찾아서 그리스로 떠나요. 요르고스와 함께라서 행복해요. 너무 노여워 마세요. 우리 가족은 항상 제 맘속에 있어요.” 그러나 아버지는 역시 노여워하셨고 맘속에서 딸을 지워버렸다. 몇 달 뒤 만삭의 몸으로 혼자 돌아온 귀다. 매몰차게 쫓아내는 아버지. 동생이라도 만나게 해달라며 애원하는 언니.

‘그 시대의 딸’로 살지 않으려는 몸부림

“네 동생은 유럽에 갔다. 늘 가고 싶어하던 비엔나 음악원에.” 그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이 모든 것을 바꿔놓는다. 다른 선택이 막혀 남들처럼 결혼을 선택한 동생에게도 아버지는 언니의 귀환을 숨긴다. 아내를 윽박질러 자신의 거짓말을 악착같이 지켜낸다. 가족이면서 친구였고, 때로는 연인이나 다름없던 자매가 서로의 안부를 모르고 살아간다. ‘그 시대의 딸들’로 살지 않으려 각자 몸부림칠수록 점점 더 서로를 맹렬히 그리워한다.

먼 과거의 삶이 ‘바로 지금’의 삶과 다르지 않다. 먼 나라 자매에게서 ‘바로 여기’의 여성들이 보인다. 흥미진진한 통속의 스토리를 형형색색 컬러에 담아낸 연출. 덕분에 빠져들긴 쉽지만 좀처럼 빠져나오기가 어려운 영화. 이미지의 잔상은 길고 이야기의 여운은 짙다. 2019년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 수상작. 지난 6월에 개봉했고 IPTV와 VOD로 볼 수 있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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