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링띠링. 매일 오후 1시. 휴대전화에서 알림이 울린다. 여러 장의 예쁜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안녕하세요. 우리 지원이(가명)는 오늘 터널놀이를 했답니다. 터널 안에 들어가 친구를 부르며 들어오라고도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점심시간에는 반찬도 골고루 잘 먹었어요. 치카치카 양치하고 지금은 잘 자고 있습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는 많은 학부모들이 받고 있는 모바일 알림장의 글이다.
대부분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알림장으로 학부모들에게 그날의 아이 상태와 활동 내용을 전달한다. 영유아 담임 교사들은 주로 낮잠 시간을 이용해 반 아이들의 사진과 설명, 오전 중에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에 관한 상황 전달, 다음 날 활동이나 준비물 안내 등을 알림장에 적어 보낸다. 종이 알림장의 경우 아이가 하원한 뒤 가정으로 전달된다. 부모는 교사에게 전할 사항을 작성해 다음 날 원으로 다시 보낸다. 모바일 알림장은 거의 실시간이다.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있는 동안 알림장을 확인한 부모들은 사진을 보고 질문하거나 건의 사항, 감사 인사 등을 댓글로 전달하고 교사는 댓글에 답글을 작성할 수도 있다.
부모 처지에선 알림장을 확인하는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지쳐가는 오후, 부모들은 환하게 웃으며 활동하는 내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힘이 생긴다. 아이의 일과를 글뿐만 아니라 사진으로도 전달받으니 아이 상황을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이렇게 알림장은 부모와 교사의 소통에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다.
하지만 이 알림장 작성, 특히 사진을 찍어 보내는 일은 교사들을 곤란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아이 사진을 더 많이, 더 예쁘게 찍어달라고 민원을 넣는 학부모가 종종 있다. 사진 속 아이의 모습을 보고 왜 그 시간에 내 아이만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해명을 요구하기도 한다. ‘왜 우리 지원이만 양말을 벗고 있나요? 신겨주세요~’라든가 ‘지원이가 왜 친구들 사이에 섞이지 않고 혼자 블록을 쌓고 있을까요? 함께 놀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같은 요구들이다. 사진을 잘 찍는 교사가 활동을 잘하는 교사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알림장에 올리거나 붙이는 사진은 대부분 활동을 하는 도중에 찍어야 한다. 활동하다가 잠시 짬을 내어 전체 모습을 몇 장 찍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개별 알림장을 위해서는 모든 아이의 활동 사진을 한 장 한 장 다 찍어야 한다. 게다가 아이들은 움직임이 크기 때문에 사진이 흔들려서 찍히는 경우도 많다. 활동을 진행하면서 사진도 찍고, 또 그 사진이 흔들려서 찍히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 그런 경우 “지원아 잠깐만, 한 번만 더 보여줄까?” 하면서 다시 찍어야 한다. 보조교사나 부담임 교사가 없는 반의 경우라면 그 사진을 찍는 동안에 다른 아이들이 방치될 수도 있다. 교사들은 점점 사진에 잘 보이기 위한 활동을 준비하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영유아 교사의 ‘교실 사진 원데이 클래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진을 잘 찍지 못하는 교사들은 주말에 시간을 내고 사비를 들여 ‘교실 사진 원데이 클래스’ 같은 사진 강의를 듣기도 한다. 생각보다 많은 수의 교사들이 이런 사진 강의를 듣는다.
알림장 사진은 분명 아이들의 어린이집·유치원 생활을 알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의 지도 내용보다 겉으로 보이는 사진이 더 중요시되는 현 상황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프레임 속 한정된 아이의 모습으로 사진작가가 된 선생님과 소통하기보다는, 오늘 어린이집·유치원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서툴지만 생생하게 표현하는 내 아이와 소중한 소통의 시간을 보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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