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8월15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정부 규탄 집회에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수도권에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었다. 그 방아쇠가 된 사건이 8·15 서울 광화문 집회였다. 사실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규모 집회에 참석하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으리란 것을 누구든 예상할 수 있었다. 상식적인 사람들은 이제 코로나19가 얼마나 위험하고 어떻게 감염되는지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지금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애당초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내렸다. 그런데도 그들은 막무가내로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그들이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모인 것은 코로나에 대해 상식적인 사람들과 다른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코로나19는 별로 위험하지 않고 전파력도 낮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으로 인해 코로나19가 확산된 뒤에도 상식과 동떨어진 얘기를 했다.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정부가 코로나 확진자를 의도적으로 늘려서 발표한다.’ 대체 그들은 어쩌다가 이런 인식을 갖게 됐을까?

그들은 주로 극우 유튜버들로부터 정보를 습득한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극우 유튜버들이 만들어내는 ‘서사’를 정보라고 착각하며 공유한다. 이를테면 8·15 반정부 광화문 집회를 주도한 전광훈 목사는 자신의 교회에서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자 이를 ‘북한에 의한 바이러스 테러’라고 말했다. 이런 ‘음모론’은 ‘정보’라기보다는 ‘(허구적) 서사’에 해당한다.

극우 유튜버들은 자기들이 만들어낸 서사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현혹할 수 있느냐에 따라 수익의 규모가 달라진다. 구독자들은 자신을 설득시킨 이들의 서사를 그 자체로 지식이나 논리라고 착각한다. 이 때문에 극우 유튜버들은 허위사실과 혐오 정서를 동원해서라도 사람들을 선동할 수 있는 서사를 만들려고 한다. 구독자들은 극우 유튜버들의 서사가 자기 세계관에 맞는지만 중요할 뿐 그 내용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가령 극우 유튜버 ‘왕자’의 경우, 자신이 만든 ‘N번방’ 사건에 대한 영상에서 ‘가해자인 조주빈 일당도 나쁘지만 피해자들도 원인 제공을 했기 때문에 피해를 당해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본인들이 고액 알바를 하려다가 사기꾼에게 잘못 걸렸을 뿐이기 때문에 순수한 피해자가 아니며 그러므로 국가가 이들에게 치료비 등 보상금을 지불하는 건 부당하다’는 얘기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다.

N번방 피해자들이 조주빈 등과 엮인 경로는 매우 다양하며, 설사 일부가 ‘고액 알바’를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성착취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국가의 지원금 또한 N번방 피해자들을 위해 특별히 급조된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제도다. 엄격한 절차에 따라 허술하지 않게 피해자에게 지급된다.

이처럼 극우 유튜버들은 날조된 정보를 얼기설기 엮어 반페미니즘 정서를 자극하는 방법으로 구독자를 현혹한다. 그 구독자들 입장에서 사건이나 제도에 대한 정확한 정보 같은 디테일한 사실관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전체적인 이야기가 자신이 평소 내면화하고 있던 ‘문재인 정부는 여성들에게 불공정하게 국가 자원을 지원한다’는 세계관에 들어맞으면 그걸로 그만인 것이다. 그래서 사회의 다수 구성원이 N번방 사건의 가해자들을 비난할 때, 극우 유튜버들은 피해자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며 구독자들의 주머니를 털어낸다. 이 영상은 지금까지도 ‘왕자’ 채널에 게시되어 있다.

ⓒ시사IN 이명익9월2일 보름간의 치료 후 퇴원한 전광훈 목사가 사랑제일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로 한 가운데유튜브 방송 장비를 든 교회 관계자가 출입자를 통제하고 있다.

포퓰리즘으로 포퓰리즘에 맞서다

극우 유튜버들의 이야기는 사실 너무 저열한 데다 기본적 논리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그동안 제도권 언론과 정치권은 관련 문제들을 인지하지 못했다. 내심 뉴미디어의 변방에서 벌어지는 지질한 이들의 분탕 정도로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이들에 대한 논의를 진지하게 하는 것 자체가 괜히 이들을 키워주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는 정도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백하게 해악을 뿌리는 이들의 존재를 그대로 방치한 결과 지금 같은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광화문 집회로 인해 확산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두고 ‘북한에 의한 바이러스 테러’라고 헛소리를 해도 그 자체로는 다수의 시민들을 직접적으로 해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수준의 이야기에 집어삼켜진 사람들이 뿌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코로나19 가짜뉴스’에 전염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옮는다. 이렇게 되어서야 우리 사회는 사태의 심각성을 통감했다.

그러나 좀 더 긴 시간을 두고 본다면 그들이 뿌리는 정보, 아니 ‘서사’는 감염병과는 별개로 전체 공동체에 큰 해악을 끼치게 될 것이다. 우리 연구소에서 운영하는 ‘가짜뉴스’ 검증 유튜브 채널 ‘헬마우스’ 메일함에는 매일 오만 가지 제보 메일이 온다. 어떤 채널이 사람들을 현혹하는데, 특히 젊은 친구들에게 악영향을 미칠까 두렵다는 내용이 대다수다. ‘극우 유튜버’의 주된 수입원이 되는 노년 세대는 물론이고 전혀 다른 매체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나는 젊은 세대에게 그들이 미칠 영향력이 두려운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필자로 하여금 유튜브 채널을 만들 결심을 하게 한 샹탈 무페의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란 책에서는 포퓰리즘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사회를 두 진영으로 분리하는 정치적 경계를 구성하고, ‘권력자들’에 맞선 ‘패배자들’의 동원을 위한 담론 전략.” 극우 포퓰리즘이 한국 사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샹탈 무페 같은 저명한 학자가 포퓰리즘으로 포퓰리즘에 맞서는 정치 전략을 구상하게 되었을 터이다.

필자 역시 몇 년 전부터 범람한 ‘혐오’ 담론만으로 극우 포퓰리즘 현상을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왔다. 극우 포퓰리스트들 역시, 오랫동안 저항자의 무기였던 냉소와 유머를 활용해서, 그들이 생각하는 ‘기득권’을 규탄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이 일부 젊은이들에겐 멋있어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기존의 혐오 담론에만 기대면, 극우 포퓰리스트들에게 현혹된 젊은이들을 다시 한번 ‘혐오세력’으로 규정하며 밀어내는 수밖에 없다. 즉, 기성 담론, 특히 진보언론은 ‘사회적 약자’의 목록을 다시 정리하고 젊은 세대를 계몽하려 하지만 이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극우 포퓰리즘이 겨냥하는 기득권은 누구인가. 극우 포퓰리스트들은 세상을 두 부류로 가른다. ‘자기 일을 하고 살면서 돈을 버는 사람들’과 ‘이런 사람들을 도덕으로 두들겨 패고 규탄하면서 돈을 버는 이들’이다. 후자가 바로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상정한 ‘기득권’인데 ‘도덕을 팔아 이윤을 창출하는 세력’으로 규정된다. 극우 포퓰리스트들은 이런 기득권의 정점이 현 정부라며, 그들이 생각하는 모든 부정적인 것을 덮어씌운다. 그들에게 문재인 정부는 운동권이고 마르크스주의자이며 페미니스트인 동시에 조선 왕조다. 논박이든 반성이든 이 같은 ‘말의 전장(戰場)’에서 이뤄져야 한다. 나는 극우 포퓰리스트들보다 훨씬 세련된 냉소와 유머를 젊은 세대에게 보여주는 것이 기성세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기자명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