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7월4일 미국 총영사관 인근에서 홍콩 시민이 성조기를 들고 미국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는 행진을 벌이고 있다.

어쩌다 보니 홍콩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강연을 나갈 때가 있는데 ‘왜 홍콩 사람들은 굳이 성조기나 유니언잭을 들고 흔드느냐’라는 질문이 꼭 나온다. 질문층도 정해져 있다. 주최가 NGO일수록, 1980년대 학생운동에 투신했던 세대가 많을수록 이 질문은 반드시 따라온다. 홍콩 민주화운동은 지지하지만 식민 모국의 깃발을 흔드는 건 매국노들이나 하는 짓 아니냐는 지적이다. 청년 시절 ‘반미’가 상당히 중요한 가치였던 한국의 50대는 홍콩 시위대의 성조기가 불편했을 것으로 보인다.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홍콩 시위대를 적극 지지하려 했다가 순간 멈칫했다고나 할까.

주강 삼각주의 끝 작은 돌섬 홍콩은 1842년 난징조약으로 영국에 할양되기 전까지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던 불모지였지만, 청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엄연한 중국 땅이었다. 아무리 불모지라도 국토를 떼어준다는 점에서 청나라 관료들의 반감이 심했고, 그건 조정도 마찬가지였다. 아편전쟁이 무려 3년을 끈 이유 중 하나에는 홍콩섬 할양 문제가 잠복해 있었다. 역사적으로 1997년의 홍콩 반환은 중국인들에게 ‘피붙이의 귀환’이었고, 홍콩 사람들도 이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들 알다시피 홍콩과 중국 간 갈등은 2014년 우산혁명 이후 증폭된다. 홍콩인들은 중국이 홍콩을 반환받으며 한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했고, 중국은 이 약속 이행을 차일피일 미루다 급기야 체벌하듯 홍콩의 자유를 박탈해버렸다. 홍콩 사람들은 한 발짝이라도 물러서면 자신들이 누리던 신체의 자유가 훼손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게다가 중국은 180년이나 떨어져 살아온, 낯선 조국이기도 하다. 반면 중국인들은 영국의 식민지배로부터 홍콩을 구해줬더니, 홍콩 사람들이 외려 자신들을 멸시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정치체제와 지도자를 거부하고 증오한다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다.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가 발생했을 때, 홍콩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선전의 화이트칼라들은 홍콩에 온정적인 경향을 보였다. 그들은 ‘이제 중국도 좀 변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시위 초기만 해도 주말에 홍콩으로 넘어가 시위에 참여하고 중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소수지만 존재했다. 실제로 선전의 IT 기업들에서는 지난해 11월 강력한 점거 투쟁이 벌어졌던 홍콩 폴리텍 대학 출신 직원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그들이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조국과 자유가 일치하면 좋으련만

이런 선전의 분위기가 바뀐 건 2019년 8월 홍콩 공항에서 발생한 중국 기자 폭행 사건 때부터다. 선전을 포함한 중국 전역에서 ‘우리 중국인’이 홍콩인들에게 폭행당하는 화면이 전파를 타자 분위기가 급변했다. 선전 시민들 사이에서 홍콩을 ‘선전시 홍콩구’로 만들어버리자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같은 시기 홍콩에서는 성조기가 등장했다. ‘선전시 홍콩구’와 성조기는 사실 서로 닮은꼴이다. 농담이라도 홍콩을 선전의 일부로 만들겠다니, 그렇다면 나도 너희들이 제일 싫어하는 성조기를 흔들어주겠다는 싸움이다. SNS에서 벌어지던 악플 대결이 오프라인에서 벌어진 셈이다.

조국과 자유가 일치하면 좋으련만, 홍콩은 지금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가치에 따라 누군가는 조국을, 누군가는 자유를 선택하는 중이다. 홍콩의 상황을 알고 보면, 무얼 선택하든 그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매국노냐, 독재의 주구냐’라는 식으로 단칼에 정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칼로 무 자르듯 나눌 수 있는 세상은 판타지 속에서만 가능한 법이니까.

기자명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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