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히치하이킹은 우연과 호의가 만나 일어난다. 운전자는 형편이 닿는 데까지 교통수단을 제공한다. 탑승자는 딱히 교통비를 지불하지 않는다. 그가 제공할 게 있다면 백지상태에서 간혹 인상에 남는 짧은 만남이다. ‘히치하이커’라는 아티스트가 그렇다. 그는 거의 우연처럼 보일 정도로 종잡을 수 없는 낯선 차들을 타며 기착지에서 기착지로 횡단해왔다.

그는 ‘지누’라는 이름의 기타리스트 겸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다. 1996년작 ‘엉뚱한 상상’은 그야말로 1990년대의 해맑고 신나는 청춘 그 자체였다. 그는 이승환, 토이 등 당대 가요계에서 가장 작가주의적이라는 집단과 함께 일했다. 이어 조원선, 이상순과 함께 결성한 롤러코스터는 지금까지도 비견할 바가 흔치 않은 수려함을 인디 신에 불어 넣으며 굵은 족적을 남겼다. 클럽 DJ 활동, 엄정화의 앨범 참여 등을 통해 ‘히치하이커’라는 새 이름을 슬그머니 들이미는가 싶더니, 케이팝 아이돌 작업을 시작했다.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는 케이팝의 괄목할 질적 향상을 선언함과 동시에 과거 영미권 따라잡기를 벗어난 동시대 음악으로 케이팝을 올려놓은 기념비적 작품이었다. 에프엑스의 ‘빙그르’, 샤이니의 ‘히치하이킹’ 등은 케이팝이 단지 달콤한 팝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진보적인 가치를 담보할 수 있음을 입증한 숨은 명곡이 되었다.

2014년부터 그는 은빛으로 빛나는 로봇 의상을 둔중하게 껴입고는 ‘11’ 같은 파격적인 곡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힙합에 기댄 비트가 아프리칸 리듬을 뒤집어쓰고 몰아치는 동안 무의미해 보이는 주술적 훅이 날아다닌다. 이만큼 정도를 넘어서는 혼돈은 흔치 않다. ‘혼돈’의 화룡점정은 그가 직접 제작한 뮤직비디오다. 동네 목욕탕, 문방구, 철공소, 낙후한 빌라, 대절 관광버스 등 굳이 공들여 재현하기에는 너무나 시시하고 ‘리얼’한 풍경이다. 영상 속에 ‘풀어 넣어진’ 캐릭터들은 일견 악취미에 가까워 보인다. 온몸이 새빨간 플라스틱 인간, 폐섬유 다발 같은 털북숭이, 채색된 코끼리 등이 정교하게 춤추고 있으니 말이다. 그건 문명의 디지털 쓰레기장에서 우연한 오류가 발생해 벌어지는 카니발과도 같다. 그리고 그의 라이브 무대 위에 이 캐릭터들이 실제로 올라와버릴 때면, 그 광경을 보고 쉽게 잊을 이는 거의 없다.

그러고 보면 그는 1971년생이다. 고도성장의 이면에 자리한 수수한 도시에 대한 애착, 그 속에서 일상을 뒤엎으며 광포하게 폭발하는 축제는 어쩌면 이 세대 아티스트들이 꿈으로 공유하는 정서다. 누구나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것에 과도하게 공을 들인다는 점까지도. 그래서 그의 작품은 가장 화려한 축제로 잘 알려진 이승환이나 싸이의 콘서트와도 닮았다. 다만 그 미감과 음악이 좀 더 짓궂고 디스토피아적이며, 급진적이고, 디지털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슈퍼스타의 인생으로만 살아왔다면 그런 차이를 만들 수 있었을까? 목적지는 있으나 갈지자 방랑을 두려워하지 않는 히치하이커의 삶의 궤적이 지금의 그를 아티스트 히치하이커이게 하지는 않았을까?

기자명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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