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

마이크 쥔 사람이 목소리를 내면 모두가 귀를 기울인다. 말의 힘, 마이크의 위력이다. “승객 여러분,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계십시오.” 세월호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476명을 배 안에 붙들어놓았다. 그렇게 말이, 마이크가 무섭다.

사회자 최광기씨(52)는 마이크가 가진 그 무게를 안다. 두렵고 부담스럽지만 놓지 않는다. 그 힘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아프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KTX 여성 승무원 해고 복직 투쟁, 세월호 관련 문화제,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 노숙인 추모 문화제…. 수많은 사람들의 끼니와 목숨이 연결되어 있는 문제 앞에서 최씨는 “더욱 절박하게 온몸으로” 그들의 말을 전했다. 그래서 최씨에게 마이크를 잡고 말을 하는 행위는, 귀를 열고 다른 이의 목소리를 듣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집회 이후 유명해진, 들으면 “아, 그 목소리”로 기억되는 부드럽고도 귀에 쏙쏙 꽂히는 최씨의 음성은 중학생 시절 국어 선생님이 처음 발견해줬다. “네 목소리는 백만 불짜리다”라며 종종 책을 낭독하게 했다. 책읽기를 끝내면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네 목소리는 사람들에게 힘이 될 거다.” 그 예언대로 최씨는 소수자의 마이크, 거리의 사회자, 국민 사회자로 불리는 사람이 되었다.

최씨가 목소리를 보태는 현장들은 늘 무거운 공간이었다. 새파란 젊은이들의 영정 사진이 늘어선 군 의문사 진상규명 촉구 추모제에서, 참석한 어머니들의 일제히 흐느끼는 울음 앞에서 최씨는 어깨가 짓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미아리 텍사스촌 화재 사건 당시 쪽방에 갇힌 채 밖에서 잠긴 문을 긁으며 죽어간 성매매 여성의 노제에서는 말문이 막히는 경험을 했다. 그 무거운 이야기들을 끝끝내 발화하고, 다독이고, 나눔으로써 최씨는 절망과 분노를 온기와 연대로 바꾸어내려 한다.

그 노력을 최근 펴낸 책 〈목소리의 힘으로 꽃은 핀다〉(마음의숲)에서도 이어갔다. 무대 위아래에서 만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한 번쯤은 세상에 정리해서 전하고 싶었다. 무겁고 강렬하기보다, 가볍고 잔잔한 톤이다. 집회와 시위를 벌이는 슬픈 얼굴의 사람들도 때론 웃고, 마음을 나누고, 평범한 삶을 이어가는 우리 이웃 중 하나라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잊고 산다.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로 들릴 수 있도록 책을 쓸 때 신경을 많이 썼다.

최씨는 이번 책이 ‘자기 말하기’ 시리즈의 첫 신호탄이 되기를 바랐다. 거리의 사회자, 한쪽 눈 시력을 거의 잃은 시각장애인, 중년 여성이라는 스스로의 정체성 속에서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그 안에서 피워나갈 꽃(꿈)에 대해 먼저 화두를 던졌다. “평범한 월급쟁이든 취업난 속 불안한 청년이든, 어떤 힘으로 인생의 어떤 꽃을 피울지 시리즈처럼 쭉 나왔으면 좋겠다.” 최씨의 꽃을 피우는 힘은 목소리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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