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윤성근. 앞으로 ‘책방에서 만난 사람’ 코너를 연재한다.

“책방이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 할 수도 없지(〈섬에 있는 서점〉).” 로컬·일상·연결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된 2020년, 문득 궁금해집니다. 지금 동네책방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격주 연재될 ‘책방에서 만난 사람’ ‘책방에서 만난 사건’ 코너에서 풀어봅니다.

내 직업은 작은 헌책방 주인이다. 표면적으로는 일단 그렇다는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중고책을 사고파는 일을 하지만 사실 나는 책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김수영 시인이 오래전에 쓴 것처럼 “잠자는 책은 이미 잊어버린 책”이다. 그 책을 깨우는 사람만이 진짜 책 속의 이야기를 얻을 수 있다. 잠들어 있는 책을 깨워 그 속에 깃든 무한한 힘을 찾아낸다. 그게 바로 진짜 내가 하는 일이다.

이렇게 호기롭게 첫발을 뗐지만 다음은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막막해진다. 그러나 이건 무작정 부리는 허세가 아니다. 나는 실제로 그런 일을 하고 있으니까. 물론 이 글을 시작하면서 관심을 끌고 싶은 마음에 약간 멋을 부렸다는 건 인정한다. 여러분이 큰 아량을 베풀어주신다면 이제 진짜 이야기를 풀어놓겠다.

새 책을 파는 서점에 갈 때 대부분의 사람은 무슨 책을 사야겠다는 결심이 선 상태다. 특정한 책을 사러 가는 것이다. 하지만 헌책방에 오는 손님들은 반대인 경우가 많다. 특정한 책을 마음에 두기보다 그저 ‘오늘은 무슨 책이 있을까나’ 하는 느슨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책장을 훑어보다가 어떤 책이 문득 자기를 끌어당기면 그 책을 산다. ‘새책방’을 사람이 책을 선택하는 곳이라고 할 때 ‘헌책방’은 반대로 책이 사람을 선택하는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는 가게다.

그런데 가끔은 특정한 책을 목표로 삼아 헌책방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하필이면 왜 헌책방인가? 당연히 그가 찾고 있는 책이란 새책방에서는 팔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절판된 책이다.

절판된 책을 굳이 찾으려는 이유는 다양하다. 분명한 사실은, 이런 사람들은 보석처럼 값진 물건을 모으는 것과는 결이 다른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절판된 책을 애써 찾으려는 데는 그럴만한 이야기가 그 책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헌책방에서 일하다 보면 이처럼 절판된 책을 찾아달라는 손님을 자주 만나게 된다. 짧게는 몇 달에서 몇십 년씩 책 한 권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다. 찾아주기만 하면 사례비를 주겠다는 분도 적지 않다. 그런데 수백 년 전에 발간된 엄청난 가치를 지닌 호화 장정본 같은 것은 내 능력 밖이다.

대략 1950년대 이후에 나온 책이라면 어떻게든 찾아볼 수 있겠는데 그런 책은 찾는다고 해도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지는 않다. 그러니까 거기에 얹어 사례비를 받기도 미안하다.

헌책방에서 일어나는 기묘한 일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바로 ‘사연 수집’이다. 오랫동안 책을 찾아다니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의뢰받은 손님에게 수수료 대신 책을 찾고 있는 사연을 받는다. 이야기를 들어보고 흥미로운 이유가 책에 얽혀 있으면 그것을 찾아준다. 또한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을 익명으로 쓴다는 약속 아래 이렇게 글로 풀어내 언젠가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다.

자, 이렇게 해서 나는 헌책방을 꾸리는 한편 책과 사람에 얽힌 기묘한 사연을 수집하는 이상한 직업을 갖게 됐다. 이제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재미있을 수도, 슬플 수도 있다. 때론 무서운 이야기, 황당한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만 밝혀두자. 우리 주변엔 의외로 기묘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건 소설이 아니다.

※ 〈시사IN〉과 동네책방이 함께하는 콜라보 프로젝트 ‘책 읽는 독앤독’(book.sisain.co.kr)에서도 책방 소식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기자명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