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 우리는 공연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올해는 1991년부터 해마다 무대에 올려온 ‘기찻길옆작은학교’의 정기공연이 서른 번째를 맞는 해였다. 코로나19가 30년 동안 한 번도 멈춘 적 없는 공연을 멈춰 세웠다. 공연뿐 아니라 공부방도 문이 닫혔다. 1987년 인천의 한 가난한 지역에서 문을 연 공부방 기찻길옆작은학교가 일주일 넘게 문을 닫은 것은 3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초유의 사태에 어리바리하다가 3월을 맞았다. 개학은 계속 미뤄졌다. 집에 있는 아이들한테 연락하니 예상대로였다. 먹고 자고 씻는 일상부터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논의 끝에 우선 초등부 아이들을 대상으로 긴급 돌봄을 시작했다. 일주일 뒤부터는 하루 종일 스마트폰에 붙박여 있거나 낮밤이 바뀐 중고등부도 긴급 돌봄을 시작했다. 그러나 방역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1m 이상 떨어져야 하는 공부방은 낯설고 재미없었다.

원래 아이들에게 공부방은 재미있는 곳이었다. 여기 오면 같이 뒤엉켜 놀고,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고 위로받을 수 있고, 인형극과 영화를 같이 만들고 공연도 같이 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는 공부방을 정말 공부만 하는 곳으로 만들어버렸다.

초중고 온라인 개학이 시작된 뒤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디지털 기기를 만져보지 못한 할아버지 할머니와 사는 아이들은 공부방 이모 삼촌의 도움으로 겨우 로그인을 할 수 있었다. 코로나19에도 다행히 일자리를 잃지 않은 맞벌이 가정, 장애인 가정, 다문화 가정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공부방에서는 아이들의 원격수업을 돕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많은 이들이 원격교육의 불가피함을 말하고, 디지털 교육의 확장성·개방성·평등성을 장점으로 꼽지만 이는 학교의 기능을 지식 전달에만 맞추었을 때의 이야기다. 여기에 정보 격차, 교육 격차, 불평등은 잘 고려되지 않는다.

며칠 전 함께 공부방을 꾸리고 있는 초등학교 교사들과 이야기를 하다 요즘 학교에서 가장 반짝반짝하는 애들이 돌봄교실 애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돌봄교실은 일주일에 한 번이나 격주로 학교에 오는 아이들에 비해 규칙적으로 등교하고 또래들과 어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제대로 된 보호와 양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학교는 존재감을 느끼고 배우는 곳이다. 지역공동체가 무너진 사회의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타인과 소통하고 자신을 통제하는 법을 배운다. 정서적·지적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 학교는 더욱 절실한 곳이다. 코로나19는 학교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했다.

고등부 아이들은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어서 공부방에 오면 걱정을 쏟아낸다. “이모, 중간이 없어요. 국영수를 완벽하게 마스터한 애들도 있지만 원격수업을 하면서는 좋아하는 과목만 하는 경우가 많아 학습 격차가 심해요.” 아이들이 느끼는 것도 교사들과 다르지 않다.

지식만 먹으며 홀로 자랄 수 없어

공연, 어린이날, 모내기, 춘천인형극제 등 모든 활동이 멈춘 뒤에도 캠핑만은 갈 수 있기를 바라던 아이들은 이제 그것마저도 체념했다. 공부방에는 인천은 고사하고 자신이 사는 동네를 벗어나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반면 내가 살고 있는 강화도는 요즘 주말이면 캠핑객으로 몸살을 앓는다. 해외여행 대신 자녀와 캠핑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주민과 타인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는 이들에게 눈살을 찌푸리다가 공부방 아이들과도 그런 여행을 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 씁쓸해진다. 코로나19는 여러모로 불평등하다.

그렇다고 넋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중등부는 7월부터 몇 달 동안 미뤘던 영화 제작을 시작했고, 초등부도 마스크를 쓰고 부둣가로, 동네 골목으로 우리 동네 이야기를 찾아 나섰다. 그러자 아이들이 눈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지식만 먹으며 홀로 자랄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함께 살아야 할 때다.

기자명 김중미 (작가·기찻길옆작은학교 상근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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