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나 상상하기조차 힘든 인간의 흉악한 범죄 소식을 접했을 때, 가끔은 신을 원망한다. 그리고 원초적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들어 인간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고, 시련의 문을 열게 했나?’ 선택할 기회조차 없었다면, 뱀의 유혹도 없었을 테고 선악과를 먹지도 않았을 것이며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할 일도 없었을 텐데…. 그럼 인간은 죄 없는 세상에서 살지 않았을까? 하지만 알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 덕분에, 때로 후회할지라도 인간은 위대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이 책은 너무도 유명한 로이스 로리의 원작 소설 〈기억 전달자〉를, 하비 상과 아이스너 상을 수상한 그림 작가 크레이그 러셀이 그래픽노블로 재탄생시킨 역작이다. 원작은 뉴베리 상과 보스턴글로브 혼북 상 수상작에 빛난다.

책의 배경은 미래의 어느 날, 사람들은 전쟁과 차별, 고통, 갈등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시스템 ‘커뮤니티’에서 평화롭게 살아간다. 인종차별, 종교 갈등, 정치적 분쟁 그리고 전쟁과 기아 같은 끔찍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기억은 봉인된다. 대신 커뮤니티의 통제 안에서 안온한 시스템이 작동된다. 출산, 직업, 색깔 등 모든 것이 규제된다. 선택의 대가로는 인간이 지닌 다양한 감정과 욕망의 거세가 따른다. 시스템이 부여한 사람들과 원가족을 이루고 살며, 인간의 기본 욕구가 없어지는 알약을 삼키고, 고통 없는 평화가 유지된다. 적당한 나이가 되면 적당한 삶의 기술을 배워나가고 주어진 환경에서 이웃들과 교류하면서 늙어간다. 시스템의 통제에만 벗어나지 않으면 이들 모두 주어진 환경에서 고통 없이 살다 죽는다.

시스템에서는 열두 살이 되면 미래의 직업을 결정해준다. 보육사, 공학자, 건축사, 전기기사, 조종사, 교사, 산모 등 다양하다. 그렇게 직업을 가진 성인이 되어 다시 가족을 꾸린다. 일정한 나이가 된 사람이나 규칙을 세 번 위반한 사람은 ‘임무해제’를 당한다. 사실 임무해제란 외부 지역으로 강제 이동되어 삶이 마감되는 것이다.

열두 살이 된 주인공 조너스는 직업을 결정해야 한다. 시스템이 결정해준 직업은 한번 정해지면 바꿀 수 없는 까닭에 ‘직업부여식’이 거행되는 날, 그는 조금 긴장한다. 그리고 일상에 필요한 직업이 아니라 ‘기억 보유자’라는 낯선 임무를 부여받는다. 커뮤니티에서 유일한 원로 ‘기억 보유자’의 사무실로 매일 출근하면서 인간이 지닌 기억을 전달받는다.

커뮤니티의 경계선을 넘는 지도

조너스는 차츰 진실과 마주한다. 매일 먹던 알약을 끊자 본능이 되살아나며 인간의 감정을 알게 된다. 무채색의 세상을 벗어나 서서히 다양한 색깔을 본다. 인간의 본능에 내재된 다양한 감정을 경험한다. 차가움, 따듯함, 뜨거움과 행복, 사랑의 마음을 느낀다. 하지만 좋은 기억뿐 아니라 전쟁과 공포, 아픔, 기근, 외로움과 두려움 등 나쁜 기억도 마주한다. 조너스는 괴로워하며 이 일을 그만둘지 고민하다가, 결국 다시 돌아온다.

그는 기억 전달자에게서 커뮤니티의 경계선을 넘는 지도를 얻어 자유를 찾아 떠나기로 결심한다. 잿빛 세상에서 ‘주어진 행복’을 깨는 선택이다. 여기에는 사랑의 힘이 가장 컸다. 자전거 하나에 몸을 맡기고 어린 아기와 함께 경계를 넘는 조너스. 난생처음 눈비와 삭풍을 맞고 배고픔과 고통을 경험하지만, 결국 그는 ‘선’을 넘는 데 성공한다.

이 작품은 원작의 의도를 담아 흑백 모노톤에서 시작해 조너스의 시각이 변함에 따라 차츰 부분 색채를 더해가고 마지막에는 온통 아름다운 색으로 덮인다. 독자에게 ‘존재의 이유’를 화두로 던지며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기자명 김문영 (이숲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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