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실종 소식이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메신저로 온갖 ‘지라시’들이 날아들었다. 유튜브 메인에는 ‘실시간 스트리밍 중’이란 글자가 쓰인 섬네일이 줄지어 올라왔다. ‘현재 방송 중’이란 의미다.
극우 유튜버들은 그야말로 ‘잔치’를 벌였다. 하긴 그들로서는 이른바 ‘어그로’를 끌 절호의 기회를 그냥 놓칠 수가 없었을 터이다. 특히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 채널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았다. 방송의 제목은 ‘[현장출동]박원순 사망 장소의 모습!!!’.
그 내용을 본다면, 인터넷 조어로 표현해서 ‘제곧내’다. 즉 ‘제목이 곧 내용’. 그 방송은 소장 강용석을 필두로 가세연 멤버들이 박원순 시장이 실종된 와룡공원에서 숙정문까지 산행을 하는 것으로 채워졌다. 흡사 소풍을 나온 것 같은 모양이었다. 시청자들도 채팅창에서 함께 잔치를 즐겼다. 그 수가 2만명에 달했다. 그들이 그런 ‘패륜 방송’을 하게 만든 동력이 바로 그 2만명이란 숫자다.
유튜브 세상에는 ‘코인’이라는 조어가 있다. 주로 사람들의 감정 혹은 관심사를 자극하는 어떤 소재로 콘텐츠를 만들면 조회수가 ‘떡상(크게 오름)’한다. 이를테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부당하다는 내용의 콘텐츠를 만들면 이른바 ‘태극기 부대’가 그 콘텐츠를 무더기로 시청한다. 여러 가지 수단으로 해당 유튜버에게 돈을 보내기도 한다. 그런 걸 ‘태극기 코인’ 또는 ‘우파 코인’이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현안을 소재로 하되 진보 성향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논조로 만든 콘텐츠로 조회수를 끌어올리면 그걸 ‘좌파 코인’이라 부른다. 이 코인을 탈 때 중요한 것은 ‘윤리’나 ‘정보’가 아니다. ‘타깃 오디언스(목표 시청자)’를 잡고 그들이 듣기 좋아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중요하다.
가세연을 비롯한 극우 유튜버들이 박원순 시장을 조롱하는 방송을 하는 것을 보면서 코인이라는 표현에 회의감을 느꼈다. 코인은 돈 벌려고 흉한 짓도 하는 것에 대한 조롱이 담긴 용어다. 그러나 동시에 대중의 관심사와 이슈를 기민하게 읽어서 재미있는 콘텐츠로 만들었다는 칭찬을 귀엽게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소재로 한 방송들의 경우, 그런 패륜에 차마 코인이라는 표현을 붙이고 싶지가 않다. ‘온라인 테러리즘’이라 표현해야 옳다.
테러리즘의 사전적 정의는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조직적·집단적으로 행하는 폭력 행위. 또는 그것을 이용하여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는 사상이나 주의’라고 되어 있다. ‘폭력 행위’를 ‘폭탄을 던지는 행위’라고 좁게 정의하지 않는다면, 오늘날 인터넷에서 사전적 정의와 꼭 맞는 테러리즘은 흔하게 볼 수 있다. 몇몇 정치 유튜버들은 오프라인으로 뛰쳐나와 실제로 테러 행위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채널에 방송하며 시청자와 함께 낄낄댄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화력 경쟁
얼마 전에는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들이 “보수 유튜버가 차량으로 돌진할 듯 위협하고 성추행했다”라며 경찰에 고소하는 일이 있었다. 또 어떤 극우 유튜버는 자신과 정치 성향이 다른 이의 아내를 위협하는 방송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온갖 욕설과 함께 시위 현장을 중계하는 것을 메인 콘텐츠로 하는 유튜버도 있다. 이게 단순히 코인일까? 사실상 거대 플랫폼을 활용한 테러나 매한가지다.
이 ‘온라인 테러리즘’의 화력은 물리적 위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좋아요·구독·조회수 등 전부 그들에게 동의하는 시청자들의 숫자로 이루어져 있다. 숫자가 많으면 그게 화력이 된다. 이들이 만드는 콘텐츠들은 배포되기 전에 ‘데스킹’이 이뤄지지 않는다. 사실상 어떤 규제도 없다. 결국 정보의 질보다는 남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낚아채서 자극적으로 풀어내는 게 중요하다. 이런 공식은 비단 유튜브뿐만이 아니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도 마찬가지다.
이런 식으로 만든 숫자에 한계가 있다. 유튜브가 됐든 페이스북이 됐든 알고리즘의 핵심은 애초 그 내용을 좋아할 만한 이에게 전달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설득은 존재하지 않거나, 불필요하다. 확산이라고 해봤자 실제로는 확산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즐기는 콘텐츠가 되지 못한다면 그들의 구역 내에서만 떠돌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무려 몇만 명이 즐겼던 가세연의 패륜적인 소풍의 풍경이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겐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크나큰 문제다. 서로 섞이는 일 없이, 그저 본인이 원하는 세상에서 윤리도 진실도 없이 사는 것이 유튜브 시대 이후 인간의 운명일까?
다행히 최근에는 이런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페이스북의 경우, 혐오 표현을 규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광고 보이콧’을 당했다. SNS는 유튜브만큼이나 가짜뉴스의 온상 노릇을 해왔다. 기업들의 조치는 반가운 일이다.
결국 플랫폼의 책임을 이야기해야 한다. SNS나 유튜브 등에선 누구나 대중과 소통하거나 양질의 콘텐츠로 영향력을 획득할 수 있지만 그 해악도 만만찮다. 어떤 이들은 지금의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해서 이런 플랫폼에 떠도는 정보가 더 영향력을 가진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옳은 이야기다. 그렇다면 언론의 기본 기능인 데스킹이 SNS와 유튜브에서도 작동해야 하지 않을까. 혐오 표현이나 온라인 테러리즘에 대한 규제 같은 기능이 플랫폼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 자체를 두고 여러 의견과 감상이 있을 수는 있다. 한국 사회에 워낙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의 죽음이었다. 더구나 그 끝자락에 찍힌 발자국의 모양은 그가 생전 남겨온 다른 족적들과는 너무도 이질적이었다. 때문에 그 족적과 마지막 발자국 모양을 대조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말을 얹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두고 용어 논쟁, 조문 논쟁 등으로 각자 화력 경쟁이나 하며 사회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동안 진짜 필요한 논의와 성찰은 덧없이 날아가버리고 만다. 유튜브 시대의 해악을 한탄하지만, 현실 사회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무슨 일만 생기면 늘 이런 식이다. 어쩌면 사회의 각종 제도들과 담론이 제구실을 못하고, 만인이 만인에 대해 화력 경쟁만 벌이는 그 아수라장. 그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 역시 담론 공간의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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