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등 위로 검버섯이 피었다. 함께 일하는 다른 직원이 “쌤, 운전을 너무 많이 해서 그래”라고 말했다. 자동차 핸들 잡은 손 위로 내리쬔 햇볕 때문이라고 했다. 원종선 간호사(57)는 민망하다는 듯 손을 감추었다. 원 간호사는 나눔의집에서만 20년 가까이 일했다. 나눔의집에서 가장 오랫동안 일한 최고참 직원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보살폈다.

할머니들을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집에서 서울아산병원까지 차로 모시는 일은 대개 원 간호사의 몫이었다. 외출할 때면 할머니들은 먹고 싶은 음식을 이야기했다. 먹고 싶다기보다 먹이고 싶은 음식이었다. 할머니들은 원 간호사와 직원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병원을 오가는 동안이면 밥값은 본인이 내겠다며 쌈짓돈을 꺼내곤 했다. 직원들이 자신들 때문에 외출할 때 식비가 별도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할머니들은 알고 있었다.

ⓒ시사IN 이명익원종선 간호사는 나눔의집에서 20년 가까이 할머니들을 보살펴왔다.

원 간호사가 나눔의집에 머무르는 할머니만 챙긴 건 아니다. 나눔의집에 머물고 있는 할머니들을 돌보는 동안, 전국 각지에 흩어져 홀로 지내고 있는 다른 피해 할머니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 원 간호사는 기회가 될 때마다 지방에 살고 있는 할머니들을 찾아다녔고, 2012년부터는 ‘재가 방문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주기적으로 나눔의집 바깥에 사는 할머니들을 방문했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루였다. 지방 병원에 계시던 한 할머니가 원 간호사에게 면박을 줬다. “옷이 그게 뭐냐. 다음에 올 때는 화사한 옷 좀 입고 와라.” 다음번에는 그러겠노라고 약속했다. 다음이 없을 줄 몰랐다. 원 간호사는 할머니에게 약속한 밝은색 옷을 차려입고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원 간호사는 검은색 옷으로 갈아입지 않았다. 할머니가 바라던 밝은색 옷을 입고 영정사진 앞에 섰다. 그렇게 마음에 무게 추를 하나둘 더해왔다. 한 분 한 분 임종을 경험할 때마다 더 잘해드리지 못한 일만, 죄송한 마음만 쌓여갔다.

나눔의집에 계신 할머니들에게 물리치료와 운동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 지도 벌써 몇 년째다. 운영진에게 수차례 예산을 늘려달라고, 할머니들 건강에 쓰이는 돈은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여러 방법으로 요청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매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수록 스스로를 채근했다.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할머니들을 최선을 다해 도울 수 없었다. 더 늦기 전에 하루라도 더 빨리, 할머니들이 조금이라도 기력이 있을 때 건강을 돌봐야 했다. 내부 문제를 외부로 알리는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의아한 곳으로 통해

나눔의집은 ‘위안부’ 문제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의아한 곳으로 통했다. 관계자와 연락을 하고 싶어도 직원이 너무 자주 바뀌어 도통 업무 담당자를 찾기 어려웠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대응 TF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던 류광옥 변호사(법무법인 가로수)는 지난해 한 토론회에서 나눔의집 관계자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손을 덥석 잡았다. “그렇잖아도 나눔의집 쪽에 연락을 드리고 싶었는데 담당자 연결이 쉽지 않더라고요. 잘됐네요.” 당시 류 변호사가 토론회에서 만난 인물은 나눔의집에서 각종 전시 기획을 담당하는 김대월 학예실장(35)이었다. 며칠 뒤 그가 류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변호사님, 저희를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시사IN 이명익김대월 나눔의집 학예실장이 운영진의 무관심으로 훼손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물품을 가리키고 있다.

김대월 학예실장은 나눔의집 직원이자 연구자다. 2018년, 여성 독립운동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던 중 나눔의집에 합류했다. 류광옥 변호사가 느낀 의아함의 실체를 김대월 실장은 일을 시작하자마자 알아차렸다. 도시와 멀리 떨어진 근무지,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 주말이 따로 없는 업무환경. 죄다 사람들이 꺼리는 근무조건이었다. 하지만 김 실장은 괘념치 않았다. 할머니들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 수 있어서 좋았다. 할머니가 바라는 음식을 밖에서 사오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포갰다. 전시 프로그램을 정비하면서 다양한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보람된 일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모른 체’할 수만은 없었다. 끝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하나둘 눈에 띄었다. 운영진이나 이사진이 할머니들을 대하는 태도는 무례했고, 내부 회계는 불투명하게 집행됐다. 무엇보다 할머니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눈에 밟혔다. 노후된 시설, 인력 부족으로 할머니들이 다치는 일도 왕왕 일어났다. 그 많은 후원금은 대체 어디로 향하는 걸까. 운영진에게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고, 갈등의 골도 깊어졌다.

먼저 내부 기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보기로 했다. 2019년 8월 송현섭 대표이사(월주 스님)와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다른 이사진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즈음 김정숙 나눔의집 사무국장의 비위 의혹도 드러났다. 김 사무국장이 횡령 혐의에 뚜렷한 답을 하지 않은 채 사의를 밝힌 후 그의 자리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외화 더미가 발견되기도 했다. 해외 방문객들이 남기고 간 후원금이었다. 후원금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제대로 계좌에 입금되지도 않았다는 ‘증거’ 중 하나였다.

거듭된 직원들의 문제 제기에 이사회는 ‘내부감사를 하겠다’고 달랬다. 하지만 감사 결과는 ‘법인과 시설 회계에 문제없음. 직원들의 근무 태만’이었다. 지난 1월 나눔의집 직원 7명은 이사진에게 내용증명을 보냈다. “나눔의집에 계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해 여러 차례 인권침해가 있었으며 (중략) 재무 등에 관한 중대한 비리가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류광옥 변호사의 도움을 얻어 먼저 김 사무국장을 고발했다.

근무한 지 2년밖에 안 된 젊은 연구자부터 20년 동안 할머니들을 돌본 간호사까지, 나눔의집 직원들은 1년 넘게 조직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써왔다. 더는 방법이 없어서 외부에 손을 내밀었다. 자신들의 생계를 걸고, ‘내부고발’이라는 비난까지 감수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5월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기도청의 나눔의집 법인 감사 내용을 언급했다.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을 때 나눔의집이 피해 할머님들을 위해 선도적인 노력을 해온 점은 충분히 존중되어야 합니다. 이번에 드러난 일부 과오들로 인해 그 대의와 헌신까지 부정되거나 폄훼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눔의집에서 그 누구보다 ‘헌신’해온 사람들은 운영진도, 이사진도 아니다. 우리가 나눔의집 문제에서 기억해야 할 헌신이 있다면 이 직원들의 이름과 얼굴일 것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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