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사진이 진실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사실을 담고 있다고 믿는다. 사진은 과학적 원리에 의해 빛을 기록하는 기계장치니까. 사진에 대한 믿음엔 과학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 깔려 있다.
그러나 사진은 거짓말을 하기에 아주 효율적인 매체이기도 하다. 그 방식으로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그야말로 가짜 사진이다. 이 사진과 저 사진을 따 붙여 사실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사람들은 이런 사진들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그대로 수용하기도 한다.
사진을 다른 맥락 속에 교묘하게 끼워넣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사기꾼과 정치가는 유명 인사, 연예인 등과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그 사진들을 사무실 벽에 줄줄이 걸어놓거나 의정 보고서와 선거 선전물에 사용한다. 사실 사진을 찍는 순간은 몇백 분의 1초밖에 안 된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은 ‘같이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 외에 다른 어떤 의미도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사진을 보면서 두 사람이 무슨 특별한 관계일 수도 있다고 여기게 된다. 사진의 거짓말에 알아서 속아 넘어가는 것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사진이 놓인 맥락이 거짓말을 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북한군 총격 상관없는 1년6개월 전 사진
사진이라는 매체는 언제나 세계의 파편이다. 그 사진을 찍기 전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는 서사성을 갖지 못한다. 부족한 서사성을 보충하기 위해 연속 사진이나 문자, 글 혹은 말이 사용된다.
지난 5월3일, 비무장지대 GP에 북한군 총탄이 날아든 사건이 있었다. 대체로 의도적 발사가 아니었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진다. 그러나 〈월간조선 뉴스룸〉이 사진과 기사를 결합한 방식은 일종의 거짓말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이 회사의 그날 기사는 ‘합참 “북한군 우리 군 GP 향해 수차례 총격 가해”’라고 사실만 건조하게 전하고 있다. 하지만 기사에 붙인 사진이 문제다. 폭파되는 초소 위로 폭연이 자욱해 마치 전쟁터 같다. 이 장면은 5월3일 사건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2018년 11월 철원 지역 중부전선에 위치한 감시초소(GP)가 폭파되는 모습”이라는 사진 설명에 나와 있듯이, 1년6개월여 전의 일이다. 당시 남북한은 GP 시범 철수 사업에 합의하고 각각 11개의 GP를 철거한 바 있다. 이 사진은, 그 자체로는 사실이지만 맥락으로는 거짓이다.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이 기사와 결합되면서 큰 분쟁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사진은 세계를 기록하는 데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동시에 사진을 둘러싼 믿음 덕분에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기에도 탁월한 매체다. 사진을 비롯한 이미지를 잘 읽어내는 ‘이미지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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