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사진공동취재단4월15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당 선거상황실에서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180석은 확실히 인상적인 숫자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총선에서 180석(지역구 163석+비례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 17석)을 얻었는데, 이건 국회에서 다른 당과 합의 없이도 법을 통과시킬 힘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흔히 ‘패스트트랙’으로 불리는 신속처리안건 상정 조건이 의원정족수의 60%, 그러니까 180석입니다. 이론적으로는, 민주당이 21대 국회에서 못 할 일은 200석이 필요한 개헌 말고는 없습니다.

이 역사적인 압승은 미묘한 착시를 낳습니다. 민주당은 분명 대승을 거두었지만, 의석 분포가 보여주는 정도만큼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서울 지역구 49곳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은 총 577만 표 중 305만 표를 얻었습니다. 53%쯤 됩니다. 민주당 의석은 49곳 중 41곳, 84%입니다. 53% 득표에 의석 점유율 84%이므로, 서울에서는 민주당이 득표 대비 1.6배쯤 득을 봤다는 뜻입니다. 소선거구제는 승자독식 구조여서 원래 1등 정당이 추가이득을 얻습니다. 이번 총선에서는 수도권 박빙 지역구를 민주당이 그야말로 싹쓸이해서 추가이득이 더 크게 잡힙니다.

이 착시는 정치권 특유의 선거분석 기법 덕에 증폭됩니다. 흔히 정치권에서는 선거의 3요소로 ‘구도·인물·이슈’를 꼽습니다. 구도란 그 선거의 핵심 전선이 무엇으로 잡히느냐를 뜻합니다. ‘정권 중간평가’ ‘문재인 정부 심판’으로 구도가 잡히면 야당이 유리하고, ‘정신 못 차린 야당 심판’ ‘코로나19 국난 극복’ 구도가 잡히면 여당이 유리합니다. 민주당이 원하는 구도가 선거 내내 압도했습니다. 인물은 각 지역구 후보 경쟁력을 뜻하기도 하고, 당의 간판 격인 차기 대선주자 경쟁력도 중요합니다. 이번 총선이라면 이낙연 후보(민주당) 대 황교안 후보(미래통합당)의 대결이 대표적인데, 보수가 밀렸습니다. 이슈란 선거 캠페인에서 화제가 되는 사건인데, 보수는 차명진 후보의 세월호 막말 문제 등 이슈 관리에도 실패했습니다.

ⓒ시사IN 신선영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뒷모습)가투표가 종료된 4월15일 오후 6시께 당선거상황실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시사IN 윤무영정의당 심상정 대표(가운데) 등 당직자들이여의도 당사에서 총선 개표방송을 지켜보고있다.
ⓒ연합뉴스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서울 마포구 당사에서 “겸허하게 끝까지 선거 결과를 지켜보겠다”라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4월16일 오전 열린민주당 당사에서당선이 확정된 김진애, 최강욱, 강민정후보(왼쪽부터)가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16년 총선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왜 보수가 ‘3요소’에서 완패를 했는가”라는 질문이 다시 나와야 합니다. 답은 구도도 인물도 이슈도 밀려버린 보수의 무능이지만, 또다시 질문이 이어집니다. 2020년의 보수는 왜 이정도로나 무능했을까요? 여기에 답하려면 3요소와는 다른 층위에서 선거 결과를 결정하는 요소를 잡아내야 합니다.

경마 중계식 정치 보도만 보다 보면 유권자들은 주권자라기보다는 쇼핑객처럼 느껴집니다. 이런저런 정당들의 마케팅 전략에 따라, 쇼핑을 하듯 투표할 정당을 이리저리 고른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런 유권자도 없지는 않지만 매우 적습니다. 유권자들은 보기보다 지지 정당을 잘 바꾸지 않습니다. 지지하는 정당이 투표하고 싶게 만들어주면 투표장에 나오고 부끄럽게 만들면 숨기 때문에 결과가 들쭉날쭉해 보일 뿐입니다. 유권자들 중 다수는 정당을 쇼핑하는 게 아니라, 지지하는 정당에 애착과 일체감을 느낍니다. 이것은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관계맺음입니다. 정치학자들은 이런 걸 정당과 유권자 사이의 ‘정렬’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정치에는 기본 지형이 존재합니다. 정당·유권자 정렬 관계에 따라 진보 우위 혹은 보수 우위의 지형이 잡힙니다. 구도·인물·이슈는 선거 때마다 달라지지만, 지형은 한 세대 이상 안정된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지형은 3요소 이전의 결정요소, ‘제0요소’입니다. 득표율을 물에 비유하면, 구도·인물·이슈는 수면의 출렁거림을 결정합니다. 지형은 물 자체의 높낮이를 결정합니다. 구도·인물·이슈는 의석수를 위아래로 출렁거리게 만드는데, 이번 총선에는 민주당 쪽 파도가 최대한 높은 곳까지 닿았습니다. 이건 다음 선거에서 재연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형은 애초에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어느 선에서 출발할지, 운동장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는지를 결정합니다. 지형 자체가 변했다면, 그것은 미래의 선거를 두고두고 규정합니다. 이제 180석 압승을 구도·인물·이슈의 승리로만 보는 게 착시인 이유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아직 ‘제0요소’를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정당과 유권자의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관계맺음이 흔들리는 순간이, 아주 드물지만 있습니다. 정치학은 이런 보기 드문 장면을 ‘재정렬’이라고 부릅니다. 리얼라인먼트(Realignment)라는 용어의 번역어입니다. 그리고 그게 시작되는 결정적인 선거를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라고 부릅니다. 박원호 교수(서울대)는 정치학자입니다. 그는 한국 정치가 리얼라인먼트의 징후를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지형 자체가 흔들렸다는 뜻이고, 구체적으로는 보수 투표연합이 구조적으로 쪼그라들었다는 뜻입니다. 그가 중대선거 후보로 지목하는 선거가 의외입니다. 2020년 총선이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이후의 2017년 대선도 아닙니다. 2016년 총선입니다. 이건 촛불집회 이전입니다.

〈그림 1〉은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에서 보수가 얻은 득표율 추이를 보여줍니다. 2012년 4월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42.8%를 얻었습니다(비례대표 정당득표). 그해 12월 대선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역대 최대의 보수 투표연합 결집을 이뤄냅니다. 51.6%였습니다. 2014년 지방선거는 박근혜 대통령 임기 중간평가 성격이 있었습니다. 새누리당은 정당득표(광역의원 비례대표) 47.1%를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 보수는 40~50% 정도의 투표연합을 꾸준히 유지했고, 정치분석가들은 이를 두고 ‘보수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게 흔들리는 게 2016년 촛불집회 이후가 아니라 그 이전이거든요. 2016년 4월 총선에서 보수 투표연합이 크게 흔들립니다. 당시 중도 신당인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이 보수 이탈표 대부분을 흡수합니다. 그런데 이게 일시적인 이탈이 아니라 장기적인 지형 변화로 이어지는 징후가 계속 나타나고 있어요. 중도 제3당이 사실상 와해된 후에도, 보수가 이때의 이탈을 복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 돌아가지를 않아요.” 박원호 교수의 설명입니다.

30%대로 주저앉은 보수의 지형

2016년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정당득표는 33.5%로 추락합니다. 일회성 국민의당 효과일 뿐 곧 복원된다고 해석하는 게 당시에는 대세였습니다. 20대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됩니다. 보수는 그 충격파에 직격당한 채로 2017년 대선을 치러서 30.8%를 얻었습니다(홍준표·유승민 후보 득표율 합산).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광역의원 비례대표 득표가 34.8%에 그칩니다(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득표율 합산). 여기까지도 탄핵 충격파로 해석할 여지가 있습니다.

2020년 총선은 그래서 보수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했습니다. 탄핵의 직접 충격파는 가라앉았고 이렇다 할 중도 제3당도 없습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파동 이후로 정권심판론도 있었습니다. 복원 가설이 맞다면, 지금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보수는 2020년 총선에서 33.8%를 얻었습니다. 이 숫자는 4년 전 총선의 33.5%와 비슷합니다. 이제 박원호 교수가 2016년 4월 총선을 중대선거 후보로 주목하는 이유가 선명히 드러납니다. 보수의 기본 지형이 40%대 능선에서 30%대 계곡으로 주저앉았습니다. 보수정당과 보수 투표연합 사이에 구조적 균열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겁니다. 박형준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원장은 KBS 개표방송 패널로 나와 “기본 정치 지형의 변화를 인정해야 할 것 같다”라고 탄식했습니다.

이 가설이 맞는다면, 2020년 총선은 사상 초유의 결과라기보다는 2016년 중대선거의 연장선으로 더 잘 설명됩니다. 허물어진 보수 투표연합은 복원되지 않았습니다. 2016년에 보수를 떠나 주로 국민의당으로 갔던 이탈 블록은, 2020년에 보수로 돌아가기보다는 민주당으로 더 멀리 건너가거나 기권한 것으로 보입니다. 2016년 새누리당이 얻은 비례대표 표는 796만 표입니다. 2020년 총선은 보수가 몰락할 것이라는 위기감으로 총결집이 일어났고 투표율도 높아졌습니다. 보수가 얻은 표는 944만 표로 늘었습니다. 하지만 범진보도 총결집해 같이 늘었기 때문에 득표율로 보면 제자리걸음입니다.

ⓒ연합뉴스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종합상황판에 당선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이것으로 중대한 결론이 나옵니다. 이제 보수와 진보가 서로 총결집하면, 보수는 보수 표만으로 선거를 이길 수 없습니다. 보수는 구도·인물·이슈를 최대한 유리하게 가져와야 하고, 진보의 실책을 더해야 불리한 지형을 뒤집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1990년 3당 합당 이후 진보파들이 내내 감당해야 했던 바로 그 제약조건입니다. 지형은 선거 결과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은 보수 우위 지형에서 대선을 이겼습니다. 2004년 열린우리당도 보수 우위 지형에서 ‘탄핵 역풍’ 구도와 이슈로 총선을 이겼습니다. 그러므로 2016년 총선이 중대선거였다는 가설이 맞는다고 해도, 그것이 2020년 총선 결과를 결정한 것은 아닙니다. 2022년 대선의 승자를 알려주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지형은 구도·인물·이슈의 경쟁에서 누가 더 험난한 길을 가야 하는지를 결정합니다. 이것이 지형이라는 ‘제0요소’의 힘입니다. 지형 변화는 구도나 이슈보다 밋밋하고 훨씬 드물게 일어나지만, 일단 일어나면 훨씬 더 장기적이고 구조적입니다.

지형에서 소수파로 쪼그라든 정치세력은 골치 아픈 숙제를 받아듭니다. 경합 지역 정치가들은 대체로 여론 향방에 더 민감하고, 강성 지지층의 요구보다는 당파성이 옅은 유권자들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그들은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형이 쪼그라들수록 경합 지역부터 낙선합니다. 탄탄한 지지기반에서 강성 지지층을 보는 후보들은 살아남습니다. 즉, 지형이 쪼그라들수록 정당이 강성 지지층에 포획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럴수록 정당의 노선이 극단화되고, 그럴수록 지지기반은 더 좁아집니다. 소수파가 될수록 더 유능해져야 상황을 바꿀 수 있는데 오히려 더 무능해지는 구조가 작동합니다. ‘극단화의 역설’입니다.

2016년 총선 이후 보수는 이 경로를 전형적으로 밟아왔습니다. 보수가 소수파가 되면서 영남권 친박계가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그 귀결로 탄생한 ‘황교안 체제’는 극단화의 역설을 극복할 역량을 보여주지 않았고, 대체로 태극기 부대와 아스팔트 개신교와 극우 유튜버들의 정치성향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황교안 체제는 “문재인 독재 타도”라는 공감대 좁은 세계관에 매몰되어 구도를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시사IN〉 제645호 ‘황교안화되어가는 한국 보수의 현실’ 기사 참조). 선거 막판 차명진 후보가 세월호 관련 막말을 내놓고도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극단화의 역설이 낳은 극단적인 장면입니다. 미래통합당은 이 사건이 막판 경합 지역 표심에 악영향을 끼치는 걸 알면서도 차 후보 제명에 실패합니다. 지형은 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지만, 정치세력을 이런 악순환 경로로 빠트릴 가능성을 높입니다. 지형은 구도·인물·이슈를 꼬아버리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동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보수 다수파 시대’가 종식되고 ‘진보 다수파 시대’가 열렸다는 의미일까요? 아직은 더 따져봐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정치학자들은 리얼라인먼트에도 종류가 있다고 봅니다. 미국의 정치학자 크리스티 앤더슨은 1979년에 재정렬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책 〈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를 썼습니다. 1932년 시작된 뉴딜 재정렬을 다룬 연구서입니다. 그는 리얼라인먼트의 동력으로 ‘전향’과 ‘동원’을 구분합니다. ‘전향’은 상대 정당을 찍던 지지자들이 넘어오는 걸 말합니다. ‘동원’은 기존 정당·유권자 정렬에 들어와 있지 않던 낯선 유권자 블록이 새롭게 결합하는 걸 말합니다(기존 지지층을 최대한 끌어 모으는 ‘동원’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왜 이걸 구분할까요.

미국 정치는 20세기 들어 크게 두 차례의 리얼라인먼트를 겪었다고 평가됩니다. 〈그림 2〉에 그 과정이 축약되어 있습니다. 가장 왼쪽은 1896년 대선(①)입니다. 이 시기는 미국 내전(남북전쟁)의 기억이 생생하던 때로, 공화당은 북동부 산업지대가 표밭입니다. 민주당은 내전에서 진 남부를 대변합니다. 인구가 많은 북동부를 차지한 공화당 우위 지형입니다. 다음은 1932년 대선(②)입니다. 1929년 대공황의 여파로 민주당 후보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압승을 거둡니다. 루스벨트 이후 민주당은 산업과 인구가 밀집한 북동부를 빼앗아 민주당 시대를 엽니다. 재정렬입니다.

세 번째 그림은 1964년 대선(③)입니다. 공화당은 참패하지만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내전 이후 100년 동안 민주당만 지지하던 남부가 공화당으로 돌아섭니다. 이 선거 이후로 지금까지 남부는 공화당 기반입니다. 재정렬이 일어났고, 민주당 시대도 끝이 났습니다. 마지막은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1996년 대선(④)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구도, 동서 해안은 민주당이 차지하고 남부와 내륙 일대는 공화당이 차지하는 구도가 전형적으로 드러납니다. 이 그림을 다시 첫 번째인 1896년 대선과 비교해 보면, 두 당이 정확히 서로의 기반을 빼앗아 차지하는 100년에 걸친 대격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는 1932년 이후 뉴딜 재정렬이 어떤 힘으로 일어났는지를 다룹니다. 첫 대선인 1932년에는 공화당 표가 빠지고 민주당 표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공황 시기여서 일종의 정권심판이 작동합니다. 이건 ‘전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이후 내리 4선 대통령을 하면서, 이전까지 투표하지 않던 새로운 유권자 블록을 발굴하여 민주당에 단단하게 결속시킵니다. 대도시 산업노동자와 이민자 자녀들이 그들입니다. 둘 다 기존 정치세력이 관심 두지 않는 사이에 숫자가 크게 증가하였지만, 어떤 정당도 그들을 유권자로 불러내지 않았습니다. 루스벨트는 이들을 충성스러운 민주당 투표자로 새로이 정렬시키는 데 성공하여 ‘뉴딜 시대’를 엽니다.

ⓒ연합뉴스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오른쪽)가 지난해 3월20일 전광훈 목사와 악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서 있는 자리

‘전향’과 ‘동원’이라는 렌즈를 한국 정치에 적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우선, 보수정당과 보수 투표연합 사이의 정렬이 끊기는 현상은 거의 확실히 일어난 것 같습니다. 정렬 관계가 바뀌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얕은 의미로 리얼라인먼트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전향’도 일어났는지는 더 상세한 데이터와 시간을 둔 관찰이 필요합니다. 보수당에서 이탈한 유권자들이 한두 번 진보·개혁 정당을 찍는다 해도, 이게 얼마나 안정적인 관계냐는 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어쨌든 2016년 총선 이후 세 차례 선거에서 ‘전향’의 징후는 분명 있습니다.

정치가들에게 가장 까다로운 과제는 ‘동원’입니다. ‘동원’은 소외된 유권자 블록을 포착하고, 그들을 불러내는 새로운 사회계약(‘뉴 딜’)을 제시하고, 그 계약을 관철시켜서 그들을 지지층으로 묶어내는 일련의 정치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사회의 역관계를 바꾸는 일이고, 자원 배분을 재조정하는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손해를 감수하도록 요구하는 일입니다. 2020년 총선이 그런 유형일 가능성이 높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투표장에 나타나지 않던 대규모 유권자 블록이 민주당 지지층으로 새롭게 편입될 경우가 ‘동원’에 해당할 것인데, 선거 과정에서 그런 현상이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습니다. 2020년 총선 투표율 66.2%는 21세기 들어 가장 높지만, 아직은 기존 지지층의 최대 결집 효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뉴딜 재정렬의 사례를 보면, ‘전향’으로 재정렬이 시작된다고 해도, 그 흐름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려면 ‘동원’을 통한 지지기반의 확장이 필요합니다. 즉, 새로운 사회계약을 관철시키는 정치 역량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기존에 투표하는 유권자를 주고받는 쟁탈전보다 훨씬 심대하고 파괴적인 지형 재편성입니다.

ⓒ시사IN 이명익4월15일 대구광역시 수성구 대구여자고등학교에 설치된 범어 제1 투표소에서 선거 관리원들이 유권자의 발열체크를 하 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이 사이, ‘전향’이 작동하는 징후가 뚜렷한 가운데 ‘동원’의 과제를 받아든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180석 여당이란 자원 배분의 규칙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손에 쥐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집권 세력이 어떤 사회계약 구상을 갖고 있는가’가 결정적인 질문으로 떠오릅니다. ‘진보 다수파 시대’라는 규정이 가능한지는 그 답이 나온 후에야 검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와 21대 국회 임기가 겹치는 앞으로 2년은, 어떤 의미로든 한국 사회가 경험한 적 없는 시간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흔히 선거 과정에서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투표 결과에서 답을 찾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투표 결과는 답인 동시에 또 다른 질문입니다. 2016년은 중대선거였을까요? ‘전향’은 일어났을까요? 우리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초의 리얼라인먼트 시기를 지나고 있을까요? 2020년 총선 투표율은 왜 이렇게나 치솟았을까요? 66.2%가 투표하는 총동원 선거에서도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동원’이 가능할 새로운 유권자 블록은 누구이고, 왜 소외되어 있을까요? 총선 결과는 답만큼이나 수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시사IN〉은 앞으로 몇 회에 걸쳐서 이 중대하면서 까다로운 질문에 답을 찾아가볼 예정입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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