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nhua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3월23일 코로나19 관련 대국민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서방국가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경기침체에 긴급 편성한 예산으로 대응하고 있다. 공통점은 계획된 정부지출 규모가 전례 없이 크다는 것이다. 각국의 복지 시스템이나 관행에 따라 민간 부문에 돈을 전달하는 방법은 조금씩 다르다.

미국 상원은 3월25일(현지 시각) 늦게 2조 달러(약 2500조원) 규모의 정부지출 패키지를 통과시켰다. 현지 언론의 보도를 종합해보면, 정부가 연소득 7만5000달러 이하(중산층과 저소득층)의 미국 성인들에게 현금을 직접 지급한다. 1인 가구에게 1200달러, 결혼한 부부에게 2400달러를 주는 식이다.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추가로 일정한 금액(1인당 500달러 정도)을 더 준다.

실업급여도 크게 확대되었다. 주 차원에서 지급하는 실업급여에 연방 자금을 얹기로 했다. 연방 자금의 규모가 제법 크다. 1주에 1인당 최고 600달러. 기한도 연장했다. 크고 작은 업체의 노동자들 이외에 자영업자는 물론 배달원이나 운전기사 등 플랫폼 업체의 불안정 노동자들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민주당이 몰아붙이고 공화당은 반대했다. 실업급여가 너무 후해서 노동자들이 일보다 실업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총 실업급여를 평소 임금 이하로 제한하는 방향으로 타협안이 나왔다.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은 산업에 대한 구제금융 규모는 5000억 달러로 편성되었다. 주로 대출 형식이다. 그중 250억 달러는 상업 항공사에 배정된다. 당초 항공산업 몫으로 거론되던 500억 달러의 절반밖에 안 된다. 지난 수년 동안 미국 항공사들은 매년 수십억 달러 규모의 순수익을 올렸는데, 그중 90% 이상을 자사주 매입에 사용했다. 기업이 수익금으로 자기 회사의 주식을 사서 없애버리면 전체 주식의 수가 줄어들어 주가가 오른다. 그 덕분에 대주주와 최고경영자들이 돈방석에 앉는다. 이로 인해 팬데믹 이후 구제금융을 요구하는 항공사들에 대한 비난 목소리가 높았다. 많은 돈을 벌 때 대주주와 경영자의 배만 불리다가 어려워지니 국가재정을 탕진하겠다는 이야기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이번 협상에서도 민주당이 거세게 반발했다. 대기업들이 구제금융을 받아 자사주 매입, 경영진 보수 인상 등으로 남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대형 금융기관들의 행태를 감안하면 충분히 나올 만한 우려다. 결국 5000억 달러를 공급하되 해당 기업들에 대해 강력한 감시기구를 만들어 돈을 어떻게 쓰는지 감찰하기로 했다.

중소기업(노동자 500인 이하)에는 3500억 달러를 대출한다. 해당 업체가 이 돈으로 고용을 유지한다면 그 부분은 탕감해준다. 업체별로 최고 1000만 달러까지 지원이 가능하다. 이 밖에도 주와 도시들, 병원, 사회안전망 등에 수천억 달러가 편성되었다.

상원은 96대 0으로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3월26일 하원을 거친 뒤 대통령 승인을 받는 즉시 발효된다. 그러나 2조 달러로도 모자란다는 목소리가 높다. 몇 주 내로 더 많은 정부지출이 편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3월25일)는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 관료가 ‘추가 예산 편성을 위해 다시 하원으로 가야 할 것’으로 수긍했다”라고 보도했다. 이 법안의 상원 통과 시점인 3월25일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감염 확진자와 사망자는 각각 6만9000명과 1000명을 돌파했다.

ⓒAP Photo3월18일 인적이 끊긴 덴마크 코펜하겐 중심가의 모습.

고용 유지하면 국가가 임금 80% 부담

영국 정부는 3월17일, 3300억 파운드(약 490조원) 규모의 구제 대책을 발표했지만, 그 규모가 더 커지리라 보인다. 당초 3300억 파운드의 용도는 크고 작은 기업들에 대한 대출보증과 현금 지급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매점, 레저업체, 숙박업소, 주점 등은 자산에 부과되는 올해 세금을 면세받을 뿐 아니라 최대 2만5000파운드를 받게 된다. 상환할 필요가 없는 돈이다. 일정 규모 이하의 아주 작은 자영업체에는 1만 파운드의 보조금이 지급된다. 영국 정부가 업소들에 대한 ‘셧다운’을 명령한 뒤 ‘생계 대책이 없다’는 원성이 빗발치자 시급하게 취하게 된 조치이다. 구제 대책 규모는 다음 날 200억 파운드(약 30조원)를 더 얹어 3500억 파운드로 불어났다.

3일 뒤인 3월20일, 영국 정부는 수백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잠재적 실업자들에 대한 파격적 조치를 발표한다. 기업이 노동자들의 고용을 유지하는 경우, 그들의 임금 중 80%를 국가가 대신 부담하는 아이디어다. 〈가디언〉(3월20일)에 따르면, 이에 필요한 추가 정부지출은 780억 파운드로 추산된다. 리시 수낙 재무장관이 “전례 없는 시기의 전례 없는 수단”이라는 강한 표현을 사용한 이유다.

독일 정부 역시 3월23일, 1560억 유로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했다. 주로 작은 기업과 자영업자들에게 빌려주거나 현금으로 지급할 돈이다. 실업을 막기 위해서다. 기업이 단기 노동자들을 계속 고용하면, 평소 임금 중 60~70%를 정부가 부담해준다. 추경 예산과 별도의 구제 대책도 있다. 국책 금융기관인 독일재건은행(KfW)은 코로나19로 타격받은 기업들에게 대출을 무제한으로 제공하겠다고 선언했다. 1000억 유로를 투입할 계획이다. 경제안정화기금으로 1000억 유로도 따로 편성했다. 경영위기에 처한 기업들의 주식을 매입해서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재정균형에 편집증적으로 집착하는 독일 정부가 이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지출을 각오한 것이 놀랍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3월17일, “큰 기업이든 작은 기업이든 규모에 상관없이 파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기업에 대한 대출보증과 현금 지급에 각각 3000억 유로(약 404조원)와 450억 유로(약 60조원)를 책정해놓고 있다. 필요하다면 대기업의 국유화도 단행하겠다는 결의다. 프랑스 정부가 이념적으로 국유화를 선호해서가 아니다. 부도 위기에 처한 기업에 자금을 넣는 방법 중 하나는 해당 업체의 주식을 정부 돈으로 매입하는 것이다. 정부 지분이 높아지면 그 기업은 자연스럽게 ‘국유화 상태’가 된다. 한편 감염병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해고된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임금의 84%를 지급하기로 했다. 다만 해당 기업의 경영자는 바이러스를 퇴치한 뒤 해당 노동자를 다시 고용할 의무를 진다.

〈뉴욕타임스〉(3월23일)에 따르면, 덴마크는 ‘30% 이상의 노동자를 해고할 필요가 생긴 기업’에 대해 해당 노동자들의 임금 가운데 75~90%를 부담해준다. 해당 기업은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 오는 6월까지 시행된다. 노르웨이는 2주 이상 일감을 구하지 못한 프리랜서들에게도 평소 소득의 80%를 보장한다. 네덜란드는 팬데믹으로 타격받은 기업에 대해 노동자들의 임금 중 90%를 지원해준다. 스웨덴은 노동자가 해고되는 경우 평소 임금의 절반을 국가가 지급한다. 나머지 절반은 해고한 기업이 내야 한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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