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간 김승섭 교수(고려대 보건과학대학)와 아홉 차례 긴 글을 ‘섞었다’. 그가 첫 원고를 보내며 내게 한 당부는 하나였다. “교수라는 직업이 무서운 게 사람들이 저한테 틀렸다는 지적을 잘 안 해요. 그러니까 마구마구 말해주셔야 해요.” 그는 무자비한 수정 요청을 받고도 “글이 훨씬 예뻐졌어요!”라고 감탄하곤 했다.  

〈위험한 요리사 메리〉는 ‘차별당하는 몸’을 주제로 쓴 김 교수의 마지막 원고(〈시사IN〉 제652호 ‘당신은 정상인입니까, 그럼 특권층입니다’ 기사 참조)를 논의하는 동안 언급됐던 책 중 하나다. “바이러스가 정말 평등한가요? 이민 여성만 격리당하고 낙인찍히고 고립돼서 죽게 되는 역사를 다룬 책이 있어요.” 글을 쌓고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며 다듬는 동안 메리 이야기는 결국 빠졌다.

아일랜드계 이민자인 메리 맬런은 20세기 초 미국 뉴욕 상류층 가정에서 인정받던 가사 노동자였다. 그의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자꾸만 아팠다. 조사 결과 메리는 미국에서 최초로 발견된 ‘건강 보균자’였다. 그 자신은 건강했지만 24명에게 장티푸스를 옮겼다. 메리는 공중보건과 인권이 충돌하는 틈새로 미끄러진다. 여성이자 저임금 노동을 담당하는 이민자로서 중첩된 차별을 경험한다. 변복과 가명을 사용하며 격렬히 저항했지만, 결국 26년간 격리병동 생활 끝에 숨진다.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의 메리들’이 떠올랐다.

김 교수는 이번 학기 수업 중 코로나19가 드러낸 인종·장애·지역 낙인에 대해 한 번은 다루고 싶다고 했다. 나는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그 내용으로 인터뷰를 하자고 부추겼다. 연재를 수락할 때와 마찬가지로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예상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 대중을 상대로 한 사회역학자의 말과 글이 필요할 때 그가 〈시사IN〉을 찾으리라는 것도 안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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