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광모 중국 간쑤성 칭양시 닝현에 있는 한 농가의 모습.

차를 타고 이동하다 보니 주변에 고층건물을 찾기가 어려웠다. 드문드문 시골집만 보였다. 경운기에 땔감을 가득 싣고 이동하던 노인이 갑자기 앞을 가로막았다. 자연스럽게 방향을 틀어 추월했다. 시야에 황토 고원이 펼쳐졌다. 황토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메마른 흙먼지가 매섭게 몰아쳤다. 황토 고원 곳곳에는 독특한 동굴식 주거 양식인 야오둥(窑洞)도 보였다. 지금은 사는 사람이 없어 휑하지만, 과거에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은 조금씩 남아 있다. 황량함과 평화로움이 공존하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곳은 중국의 서북부에 위치한 간쑤성 칭양시 닝현이다. 총인구 53만명 중 49만명, 약 92.4%가 농민인 중국의 ‘작은’ 농촌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결코 작은 규모라고 볼 수 없지만, 대륙의 땅과 인구를 놓고 보면 중국에서는 작은 수준이다. 주변에 어떤 외국인들도 보이지 않았다. 중국의 농촌발전 전략을 위해 직접 현지 조사에 나섰다. 전형적인 농촌을 직접 둘러볼 기회였다.

중국 농촌은 인민의 뿌리이자 개혁의 시작이다. 농촌이 지금의 중국을 있게 했다. 농촌의 희생이 있었기에 도시 발전도 가능했다. 농민들은 값싼 식량과 값싼 노동력을 도시에 지속적으로 공급했다. 농민공들은 중국의 산업화를 일궈낸 중요한 일꾼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제 미래의 중국을 위해 진정한 농촌의 발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곳 농가는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많은 집 대문에는 ‘복(福)’자가 거꾸로 뒤집혀 붙어 있다. 복이 쏟아져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곳곳에 ‘가화만사흥(家和萬事興)’이라는 문구도 보였다. 집 안은 대체로 고요하고 평온했다. 좌식 생활을 하지 않다 보니 신발을 벗고 들어갈 일이 없었다. 한국 농촌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온돌이나 툇마루 등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방 안은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웠다. 농민들은 겨울이면 얇은 옷만 입고 생활하기에는 추워서 집 안에서조차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다.

연소득 2만 위안 이하 농가가 약 60%

화장실은 대부분 집 밖에 있는데 지붕조차도 없는 화장실도 많았다. 화장실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수준이었다. 그냥 밖에서 일을 볼 수 있게 땅을 파서 표시 정도만 해뒀을 뿐이다. 공중화장실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양변기는 고사하고 ‘푸세식’이었다. 칸막이조차 없어서 용변을 볼 때 때때로 민망한 경우가 생긴다. 중국 정부 관계자는 “관개시설이 제대로 갖추어 있지 않다 보니 물을 끌어오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광활한 땅에 끝없이 펼쳐지고 있는 사과밭이 눈에 들어왔다. 드문드문 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사과가 이곳의 주요 농산물이었다. 농민들 대부분은 사과를 팔아서 돈 벌기가 힘들다고 했다. 수요 대비 공급이 많기 때문이다. 사과 값이 그야말로 ‘껌 값’이었다. 뤼궈왕(綠果網)의 자료에 따르면 현재 닝현의 사과는 한 근(500g)에 2위안(약 340원)이 되지 않았다.

ⓒXinhua2019년 12월1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곳엔 소작농민들이 많았다. 대부분 크지 않은 땅에 소규모로 밀이나 옥수수 등을 재배했다. 사회주의라서 인민들은 자기 토지를 소유할 수 없다. 대신 토지를 정부로부터 도급받아 농작물을 가꾼다. 농작물만 재배해서는 생활이 되지 않았다. 농사해서 버는 돈보다 다른 곳에서 일해 번 돈이 더 많다고 했다. 많은 농민들이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면서 일손이 필요한 곳에 일을 해주며 돈을 벌고 있었다.

중국 인민 대학 농촌현지조사팀의 분석에 따르면 연소득이 2만 위안(약 332만원) 이하인 농가가 약 60%에 이른다. 절반 이상 농가에서 한 달에 20만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뜻이다. 연 수입이 4만 위안(약 664만원) 이상인 가구는 9.8%에 불과하다. 농민에게는 갖고 싶은 물건을 생각하는 것조차 사치일 뿐이다.

한 농민의 가슴 아픈 사연도 직접 들었다. 그녀는 도시로 나가 돼지 사육하는 방법을 익혀 돌아와 농촌에서 축산사업을 크게 벌였다.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서 좋았는데, 돼지의 축산폐기물이 문제가 되면서 정부로부터 돼지를 모두 폐기 처분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낮은 가격으로 돼지를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돈과 명예를 한순간에 잃었다.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때의 상실감을 토로했다.

이곳의 2019년 농촌 개혁 목표는 ‘빈곤퇴치’다. 각 촌 정부기관의 상황판에는 ‘빈곤퇴치에 집중해서 임무를 완수한다(完成脱貧攻堅任務)’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촌 정부기관에서는 조를 나누어 빈곤 농가들을 관리했다. 실제 이들 농가를 방문해보면 벽 한편에 ‘정부의 빈곤퇴치 방안’이라는 문건이 붙어 있었다. 이 문건에는 농가의 구성원, 수익, 빈곤 원인,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 앞으로 가처분소득 목표 등이 적혀 있다.

하지만 농민들은 정부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관심도 없어 보였다. 집에 걸려 있는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무색해 보였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농민들의 문맹률이 높다. 제대로 글을 이해하고 쓸 줄 아는 농민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학력은 대부분 초등학교 수준에 그쳤다. 정부 지침 문건을 보고 이해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전자상거래도 그들에게는 아직 먼 일이었다. 대륙의 공룡 기업 알리바바가 아직 침투하지 못한 농촌도 적지 않다. 전자상거래를 통해 물건을 사본 일도, 팔아본 일도 거의 없었다.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농민들이 극히 드물다 보니 그들이 얻는 정보량은 도시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닝현 정부 관계자는 “농촌인구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이 큰 문제다”라고 말했다. 농촌이 늙어가면서 젊은이들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현재 닝현 인구의 약 70%가 50대 이상이고, 30~40대는 대부분 외지로 일하러 나간다. 기업을 유치해 농민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 좀 더 나은 소득을 올리게 하고 싶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이 지역의 산업망을 점진적으로 구축하는 게 장기 목표라고 했다.

2019년 12월 열린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는 농업 부문의 구조개혁을 강조했다. 특히 정부의 3대 중점 과제(빈곤 탈피·환경 개선·금융리스크 관리)는 중국 삼농(농민·농촌·농업) 문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 문제는 이미 사회불안 요소가 되었다.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의 깊이 팬 주름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시름을 담배연기로 덜어내려는지 농민 대부분은 손에서 담배를 놓지 않았다.

기자명 칭양·양광모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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