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전 심석희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가 조재범 전 코치를 상습적인 성폭력 혐의로 고소했을 때 세상은 두 번 놀랐다. 우선 미성년 선수에 대한 폭행과 성폭력이 3년간 지속적으로, 그것도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이뤄졌다는 점이 던진 충격이 컸다. 이미 11년 전인 2008년 KBS 〈시사기획 쌈〉이 ‘스포츠 성폭력’ 문제를 보도하면서 여러 대책이 나오는 듯했지만, 아무 진전이 없었다는 점도 새삼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심 선수의 폭로 직후 국회는 이번에야말로 체육계 성폭력을 뿌리 뽑겠다며 의지를 보였다. 지난 1월 이후 국민체육진흥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의원의 당적을 살펴보자. 더불어민주당(안민석·남인순·권미혁·신동근·유승희), 민주평화당(김광수), 바른미래당(이동섭), 자유한국당(이종배·윤종필) 등 여야 구분이 없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총 11건의 발의안을 통합하고 조정해서 대안 하나를 마련했다. 이 법안은 (성)폭력 가해 지도자의 자격취소 또는 자격정지 요건 강화, 스포츠윤리센터 신설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법안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스포츠윤리센터 설립은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의 1차 권고안과도 맥을 같이한다. 2014~2018년 대한체육회에 접수된 폭력 및 성폭력 신고 91건 중 88건이 해당 종목 단체나 시·도 체육회에서 처리된 것으로 나타났다. 폐쇄적인 체육계 특성상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는 독립적인 조사기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정부는 2020년 상반기까지 체육계와 독립된 별도의 스포츠윤리센터를 신설해서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가 제때 마련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올해 초부터 국회 의사일정이 파행을 거듭해온 데다, 아직 논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자유한국당이 반대해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인권침해나 승부조작을 막기 위한 한국스포츠공정위원회 설립, (성)폭력을 저지른 체육지도자의 결격사유 규정 등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 관련 법안 4건은 모두 폐기됐다. 20대 국회 임기는 내년 5월까지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 2만2000건 가운데 계류 중인 법안은 현재 1만6000건이나 된다.
국회까지 온 ‘스포츠 미투’ 이젠 답 내놓아야
성폭력 피해자가 2차 피해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공개하기까지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를 내는 건 성폭력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뒤엎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일 것이다. 심 선수의 폭로 이전에는 초등학생 시절 자신을 성폭행한 코치를 고발한 김은희 테니스 코치, 대한체조협회 고위 간부의 성폭력을 고발했던 이경희 전 리듬체조 국가대표 상비군 코치가 있었다. 심 선수의 용기는 고교 시절 코치 손 아무개씨를 고발한 전직 유도 선수 신유용씨에게로 전해졌다.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을 드러내는 또 다른 이유는 힘없는 피해자가 거의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곳이 여론이기 때문이다. 여야 쟁점 법안도, 민생 법안도 아닌 스포츠 성폭력 방지법은 총선 정국이 다가올수록 정치권의 관심사에서 밀려날 운명에 처했다. 또 도쿄 올림픽이 다가올수록 언론의 포커스는 자연스럽게 메달에만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11년 전처럼 소중한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다시 범하지 않으려면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스포츠 미투’의 용기 있는 외침이 체육계 성폭력 문제를 국회까지 끌고 왔다면, 이제는 이 외침에 분명한 답을 내놓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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