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4월26일 사법개혁특별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스크럼을 짜고 농성하고 있다.

지난 4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정국에서 국회는 파행을 거듭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회의장 출입구를 봉쇄하고 점거했다. 집권당 시절 스스로 만든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키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했다. 국회의장의 경호권 발동은 1986년 이후 33년 만이다. 어렵사리 패스트트랙 안건이 지정됐지만 자유한국당이 장외 투쟁을 시작하면서 국회는 다시 개점휴업 상태를 맞았다.

국회 파행이 이번 신뢰도 조사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시사IN〉이 신뢰도 조사를 실시한 이래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국회는 이번 조사에서 10점 만점에 2.9점을 받았다. 0~4점까지는 ‘불신 구간’, 5점은 ‘보통’, 6~10점까지는 ‘신뢰 구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신뢰도 조사에서 국회가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때가 2014년이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놓고 여야가 충돌한 그해 2.97점을 받은 바 있다.

국회 파행으로 민생 현안 정책도 뒤로 밀렸다. 지난 4월 정부가 강원 고성 산불, 포항 지진 등 재난 대응과 경기활성화를 위해 6조7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지정 강행에 반발해 기약 없이 표류했다. ‘일 안 하는’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도 커져갔다. 100일이 지나서야 당초 예산안보다 감액된 5조8269억원으로 추경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공방도 이번 조사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보인다.

개혁에 대한 반발로 검찰 신뢰도 하락

국회에 이어 신뢰도가 낮은 국가기관은 국가정보원(3.81점)이었다. 국회와 국가정보원에 이어 검찰이 4.15점으로 낮은 신뢰도를 보였다. 지난해 3.47점에 비하면 높아지긴 했지만 전체 국가기관을 놓고 보면 낮은 쪽으로 분류되었다.

검찰 개혁은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국정 과제다. 지난 2월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정보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 때 문재인 대통령은 “(관련) 법, 제도까지 개혁하지 않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갈라진 물이 합쳐지고, 당겨진 고무줄이 되돌아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게 참으로 두렵다”라고 말했다. 4월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이 패스트트랙에 올랐다. 검찰은 조직적으로 반발했다.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형사법체계의 민주적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

사법농단 사건, 삼성바이오 사건 수사 등이 어느 정도 신뢰도 상승을 견인했다면, 검찰 개혁에 대한 공개적인 반발이 상승을 깎아먹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수사를 두고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검찰은 이례적으로 여야가 합의한 인사청문회 직전 강제수사에 들어갔다. 강제수사 개시 시점의 부적절함뿐 아니라 광범위한 압수수색을 두고도 해석이 엇갈린다.  

이번 신뢰도 조사에서 대법원의 상승이 눈에 띈다. ‘사법농단’으로 역대 최저의 신뢰도를 기록했던 작년보다 0.93점 오른 4.35점을 받았다. 대법원의 의미 있는 판결이 신뢰도 상승을 이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승소 판결, 양심적 병역거부자 무죄판결에 이어 최근 국정농단 사건 판결도 주목을 받았다. 지난 8월2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2심 판결 중 무죄로 봤던 부분을 뇌물로 인정해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2심 때보다 형량이 더 무거워질 가능성이 크다. 김인회 인하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대법원의 신뢰도 상승에 대해 “대법원이 인권 이슈를 주요하게 다루면서 국민들에게도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오랫동안 쌓여왔던 우리 사회의 과제들이 해결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법관 다양화도 신뢰도 상승에 기여했으리라 보인다. 양승태 대법원과 달리 ‘서오남(서울대·50대·남성 법관)’ 일변도에서 탈피해 법관이나 검사 출신이 아닌 변호사 출신(김선수)이 대법원에 합류했고, 여성 대법관 역시 역대 최다인 3명(노정희·민유숙·박정화)으로 늘어났다. 김 교수는 “관료제에 익숙한 판사들 대신 사회의 다양한 가치관을 반영할 수 있는 대법관을 임명함으로써 좋은 판결들이 나오고 있다. 기존의 사법 불신에서 벗어나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국세청은 4.72점을 받으며 모든 국가기관 중 가장 높은 신뢰도를 보였다. 불법 자산에 대한 세금 징수, 해외 은닉 재산에 대한 조사 등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기조가 상승의 원인으로 보인다. 국세청은 최근에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의 차명계좌에 대해 52억원의 차등과세를 부과하기도 했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신뢰도는 지난해보다 하락했다. 문재인 대통령 신뢰도는 지난해 5.86점에서 4.8점으로, 청와대는 5.27점에서 4.62점으로 떨어졌다. 청와대는 40대(5.53점), 광주·전라(5.93점), 더불어민주당 지지자(6.97점), 화이트칼라(5.44점), 진보(6.57점) 층에서 여전히 높은 신뢰도를 보였다. 60세 이상(3.64점), 대구·경북(3.61점), 자유한국당 지지자(1.9점), 무직·기타(3.76점), 중졸 이하(3.9점), 보수(3.16점) 층에서는 낮은 신뢰도를 보였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