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사회적 가족
미셸 바렛·메리 맥킨토시 지음, 김혜경·배은경 옮김, 나름북스 펴냄
“가족은 실로 돌봄의 주된 행위자이지만, 돌봄을 독점함으로써 다른 형태의 돌봄 수행을 어렵게 했다.”
사회제도로서 가족은 더 이상 보편적이지 않다. 이 책이 쓰인 1980년대 영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통계청 인구동향조사에 따르면 전국 1인 가구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5년 27.2%로 주된 형태가 된 이래 계속해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이런 상황에서 강화되고 있는 가족주의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빈곤한 개인은 서류상 부양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사각지대에 놓인다. 이성애 중심의 ‘정상 가족’에서 벗어나면 서류상 가족도 될 수 없다. 복지 제공 책임을 개별 가족에게 지우는 식으로 사회적 불평등은 재생산되었다. 이때 가족은 부와 빈곤의 세습기구나 마찬가지다. 저자들은 가족주의를 ‘사회의 가족화’라는 맥락에서 비판적으로 읽어낸다.
1962
마이클 돕스 지음, 박수민 옮김, 모던아카이브 펴냄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이런 소련 개자식들.”
미국 케네디 대통령 시절인 1962년,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설치하면서 초래된 이른바 ‘쿠바 미사일 위기’의 13일을,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 저자가 치밀하고 흡인력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들려주는 책이다. 저자가 100명 이상의 관련자 인터뷰와 사건 현장 답사, 기밀해제 자료 등을 분석해서 내놓은 〈1962〉는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쿠바 미사일 위기 이야기’로 평가받고 있다. 저자는 책에서 위기 상황의 미·소 수뇌부가 둘 다 무력충돌을 원하지 않았지만, 예측 불가능한 사태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핵전쟁이 여러 차례 터질 뻔했다는 사실을 박진감 있게 보여준다. 위기 상황에 대한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과거에 벌어진 남의 일’만은 아니다.
더 나은 진보는 불가능할까
남종석 지음, 두두 펴냄
“한국의 진보 담론은 정말 ‘진보적’인가?”
한국에서 ‘진보’로 불리는 이데올로기 및 정치운동의 대세는 ‘진보적 자유주의’다.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경유해서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는 그 흐름 말이다. 저자는 진보적 자유주의를, 미국 민주당 중도 좌파의 사상으로 1990년대 유럽 사민주의 정당들의 ‘현대화’에 영향을 미친 바로 그 이데올로기라고 정리한다. 다른 이름은 신자유주의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이른바 ‘구좌파’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운동이 계급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개인적 숭고’의 성취에 그치고 마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주장의 핵심은 ‘통념과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과학적 태도를 견지하자’는 것이다.
제국대학의 조센징
정종현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지사냐, 출세냐?”
저자가 교토 제국대학의 조선인 유학생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건 2010년 여름이었다. 교토 대학 교사 자료실에서 ‘학생일람’을 한 장씩 넘겼다. 1년 동안 교토 제국대학을 거쳐간 조선인 유학생 명단을 추출해 각자의 삶과 이력을 채워넣었다. 일본 본토의 일곱 개 제국대학에서 유학한 식민지 조선의 유학생은 1000명이 넘었다. 제국 최고의 엘리트 집단인 동시에 멸시받는 ‘조센징’이었다. 이들을 전수 조사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기회가 다시 왔다. 도쿄와 교토, 두 제국대학부터 살폈다. 조선을 떠난 유학생들은 돌아와서 관료로 복무하며 친일을 했고 일부는 변혁운동에 뛰어들기도 했다. 제국대학이 근대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대한민국 엘리트의 기원이 담겨 있다.
신 무서운 그림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세미콜론 펴냄
“납량특집, 미술관 편.”
명화는 무섭다? 일본 최고의 명화 이야기꾼으로 꼽히는 저자는 ‘그림을 둘러싼 섬뜩한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섬뜩하지만 매혹적이고 무섭지만 흥미롭다.
첫 화두는 프리다 칼로의 〈부러진 척추〉다. 자화상 시리즈의 하나로 프리다 칼로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하다. 내장을 날카롭게 꿰뚫는 기둥은 부서져 있어서 위태롭다. 금속 버클이 달린 가죽 코르셋은 몸을 꽁꽁 동여맨다. 온몸에 못이 박혀 있고 여인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보통은 이 그림을 페미니즘 관점에서 해석하는데 저자는 프리다 칼로의 인생과 결부해서 풀어준다.
남편의 문란한 사생활에 고통받다 자살한 여인을 그린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어〉 등 알고 보면 더 무서운 그림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바리데기
김석출 구연, 이경하 옮김, 돌베개 펴냄
“고전이란 무엇인가. 그 답은 훨씬 광대하고, 포괄적이며, 문제적이다.”
〈바리데기〉는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에서 전승되는 무가다. ‘옛날 옛적에 간날 갓적에 아승기 전세 겁에(헤아릴 수 없이 오래 전에)’로 시작되는 〈바리데기〉는 ‘집안 제족들과 소원 성취하자고 이 매년 천도하여 바리데기 풀이하여 왕생극락 보냅니다’까지 1507행으로 이뤄진 장편 신화다.
고 김석출 명인은 3대째 무업을 이은 화랭이(가업ㅌ을 잇는 남자 무당)로 동해안별신굿 무악부문 예능보유자였다. 그의 장구 연주를 듣고 반한 오스트레일리아의 드러머 사이먼 바커가 그를 찾아 나선 여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땡큐 마스터 김〉이 제작되기도 했다. 김석출 명인이 1976년 구연한 〈바리데기〉에 고전 연구가 이경하 서울대 교수가 역주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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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시를 읽는가 [독서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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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소설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1929년 디아길레프의 러시아 발레단 무용수였던 올가 코클로바와 결혼을 하고 아들 파울로를 얻었지만, 한 여자로 만족하지 못했다. 올가는 이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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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과 [소오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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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태 기자
지인들이 열광하던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늦게 입문했다. 한번 빠져드니 억제할 수 없었다. 가끔 ‘빨리 돌리기’를 감행했지만 초고속으로 마지막 시즌에 도달했다. 캐릭터들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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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로서 쓴 죽음이 시작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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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영 기자
“땡스 돈미.” 김혜순 시인이 가장 먼저 찾은 이름은 최돈미, 자기 시를 번역한 번역가이자 시인이었다. 6월6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그리핀 시문학상 시상식에서 “최고의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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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머리 위에서 물구나무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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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리 (작가∙북극곰 편집장)
그림책 〈아무 일 없었어〉의 표지는 참 순진한 얼굴 같습니다. 아주 순진하고 커다란 호랑이 표정이 표지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위로 치켜뜬 호랑이 눈동자가 아니었다면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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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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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편집국
내게 행복을 주는 그림책이루리 지음, 북극곰 펴냄“어른들의 문답이 이른바 ‘정답 찾기’라면 어린이의 문답은 ‘행복 찾기’입니다.”아이가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주었다. 습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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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사랑하는 일은 나를 사랑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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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호 기자
익숙해지는 게 ‘나쁜 일 같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익숙해지면 많은 것들이 당연하고 무례해지니까.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무조건적인 이해를 요구하는 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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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들은 서로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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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영 기자
‘힝구의 사랑’으로 읽었다는 트위터 글을 본 뒤 내게도 계속 그렇게 보였다. 서너 번 잘못 읽은 뒤 마침내 〈항구의 사랑〉을 집어 들었다. ‘내가 어릴 때는 요즘과 달리 부모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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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코프 푸거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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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기자
야코프 푸거(1459~1525), 16세기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를 기반으로 활약한 거상(巨商)이자 르네상스 시대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다. 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