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이 있지. 그런데 헛소문은 날개 돋친 듯, 더 빨리 더 멀리 퍼지기 마련이야. 헛소문이란 본디 자극적이고 충격적이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돋우기 때문이겠지. 이유를 하나 더한다면 헛소문이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소식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야. 오늘은 그렇듯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소식’을 전하고 싶었던 언론으로부터 비롯된 오보의 사연에 대해 들려줄게.

1982년 11월1일 밤, KBS에서 흥미로운 뉴스가 나왔어. 경남 함안에서 개가 물에 빠진 소년을 구했다는 얘기야. 술 취한 채 들판에서 잠든 주인을 들불로부터 구한 ‘오수의 개’ 전설을 들어봤을 테지만 이건 실제 상황이었어. 물에 빠진 아이의 비명을 듣고 주민들이 몰려오니 개가 여섯 살짜리 소년을 구해서 제방으로 기어오르고 있었다는 거야. 이 한국판 ‘플란다스의 개’는 소년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가 남의 집에 팔려간 개였어. 그런데도 소년은 팔려간 개를 찾아다니며 함께 놀았고 충직한 개는 자신을 아끼는 주인을 목숨 걸고 구했다는 것이지. 이 얼마나 감동적인 사연이냐.

ⓒ동아일보 PDF 갈무리1980년 1월24일자 〈동아일보〉에 “한국산 호랑이가 나타났다” 제하의 기사가 보도되었다.


이 소식을 보도한 KBS는 일찌감치 소년과 개를 KBS 부산총국으로 ‘모시고’ 갔어. 다른 기자들이 자신의 독점 취재원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는 행동이었지. 연합통신(현 연합뉴스)은 취재를 하지도 않고 KBS 보도 내용을 받아썼고 이 보은의 충견, 한국판 파트라슈, 20세기판 오수의 개는 전국적으로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단다. 개의 새 주인은 당장 개를 소년의 집에 돌려주겠다고 나섰고, 소년의 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었으며 이에 마을에서는 막걸리 잔치가 벌어졌다고 해(〈동아일보〉 1982년 11월3일). “우리 마을 좋은 마을. 어절씨구 좋구나.” 이 잔치판에서 소년과 개는 어울려 뛰어다니며 놀았다니 이 얼마나 흐뭇한 풍경이냐. 이 소식을 들은 경상남도 교육감은 현장으로 뛰어왔다는구나. “이 보은의 충견 이야기는 교과서에 실려야 합니다!” 이대로 일이 진행됐으면 너도 ‘오수의 개’와 더불어 ‘함안의 충견’ 이야기를 교과서에서 배웠을지도 몰라.

그런데 가만 들여다보니 뭔가 좀 이상하단 말씀이야. 이 충견은 겨우 생후 7개월이었어. 강아지를 겨우 면한 덩치의 개가 물에 빠진 여섯 살 소년을 구해낸다? 거기다 소년이 빠졌다는 지점의 저수지 깊이는 무릎 정도였거든. 뭔가 이상했지. 결국 학교의 조사를 거쳐 사건의 전말은 허무하게 드러나고 말았어. 소년은 친구들과 함께 저수지 주변을 걷다가 넘어져 굴렀지만 물에 빠지지는 않았고 혼자 기어 올라왔는데 그 주변을 개가 맴돌았을 뿐이었어(〈경향신문〉 1982년 11월4일).

소년의 친구 하나가 엄마에게 “개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라고 ‘뻥’을 쳤고, 이에 감동받은 친구의 엄마는 이웃에 살던 개 주인(개를 샀던)을 찾아가 개를 칭찬했고, 기분이 좋아진 주인은 “우리 개가 사람 살렸다”라고 자랑을 했던 게 ‘보은의 충견’ 신화의 막이 오르는 순간이었어. 이를 들은 주인의 친구가 이런 일은 방송국에 알려야 한다며 전화를 돌렸고 KBS 기자가 취재에 나섰던 거야. 아이들이 사실을 다 고백한 뒤 혹시나 싶었던 사람들은 개를 데리고 저수지로 가서 ‘실험’을 했는데 개는 짖어대며 뱅뱅 돌기만 할 뿐이었다는 후문도 있었단다. 아이들의 과장이 언론의 스피커를 타고 급기야 대한민국이 진동하는 특종으로 변신했던 것이지. 연합통신은 엎드려 오보를 사과했고 이를 받아쓴 언론들도 머리를 긁어야 했어.

여섯 살 난 아이와 7개월 된 강아지를 놓고 침착하게 들여다봤다면, 그리고 저수지를 한 번이라도 가봤다면 아마 KBS 기자는 허허 웃으며 뉴스를 낼 생각을 안 했을 거야. 사람들이 귀를 쫑긋 세울 만큼 신기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만한 미담이 결합된 이 ‘뉴스’ 앞에서 그만 KBS는 눈이 멀고, 이 ‘소중한’ 취재원을 부산으로 납치하다시피 모시고 가는 해프닝까지 벌였던 거야.

“보고 싶은 것을 보려는” 욕망이 오보를 낳고

아마 이때 낭패를 봤던 기자들은 그로부터 불과 2년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또 한번 이마를 짚었을지도 모르겠구나. “아 또 당했어.” 1980년 1월24일, 〈동아일보〉는 대문짝만한 사진과 더불어 이런 기사를 낸다. “한국 호랑이가 나타났다.” ‘한국 호랑이’가 발견된 곳은 경주 대덕산. 공교롭게도 그곳은 1922년 남한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발견된 호랑이가 사살된 곳이기도 해. 무려 58년 만에 한국 호랑이가 다시 나타났다는 뉴스였지.

구한말만 해도 외국인들의 눈에 호랑이 천국으로 비쳤을 만큼 많았던 호랑이는 근대화와 전쟁을 겪으면서 씨가 말라버렸어. 그나마 휴전선 철책이 백두대간을 가로막으면서 북한에서 건너올 길이 막혀버린 남한에 호랑이가 살 가능성은 거의 없었지만, 사람들은 어딘가에 호랑이가 살아남아 있다고 믿었어. 그중 한국 호랑이가 공식적인 최후를 맞은 경주 대덕산 주변 사람들 가운데에는 호랑이를 봤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 산에서 호랑이가 촬영됐다는 거야.

서울의 한 미용실 주인으로 “8년간 전방 고지에서 장교 생활을 하며 야생동물들의 생태에 관심을 가졌던(〈동아일보〉 1980년 1월24일)” 목격자에 의해서였지. 뜻밖의 ‘개가’에 얼떨떨하다고 소회를 밝힌 아저씨가 내놓은 사진 앞에 당대의 동물학자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단다. “한국 호랑이가 맞습니다!” 산림청은 밀렵꾼에게 호랑이가 희생당할세라 전문가 팀을 파견했어. 사람들은 호랑이 사진을 보고 또 보며 60여 년 만에 등장한 산군(山君·호랑이)을 마주하는 감회를 누렸지.

이 뉴스는 며칠 못 가 오보로 밝혀졌어. 사진의 정체는 대덕산 한국 호랑이는커녕, 서울동물원에서 한가하게 앉아 있던 벵골호랑이였던 거야. 당시 동물원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짐짓 웃음이 터져나와. “호랑이는 야행성 동물로 대낮에 나돌아 다니지 않으며 망원렌즈가 아닌 카메라로 근접촬영은 불가능할 것이다.”

아무리 수십 년 만에 나타난 호랑이가 반갑다고 해도 털 색깔과 무늬를 쓰다듬을 듯한 느낌의 근접 사진을 망원렌즈가 아닌 일반 렌즈 카메라로 찍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건 중대한 의문이었지. 인근의 돌과 나무 모습이 서울 어린이대공원 호랑이 사육장의 풍경과 아주 흡사하다는 건 덤. 결론은 가짜였어. 요즘 말로 ‘관종’에 해당하는 한 허풍쟁이 아저씨가 학자들과 언론을 속여 넘긴 거야.

내로라하는 학자들의 권위와 언론의 냉정함을 가린 것은 바로 “한국 호랑이가 살아 있다”라는 반가운 말이었어. 또 어린 주인을 구한 개의 이야기에 열광했던 것은 당시 〈동아일보〉 김중배 논설위원의 말처럼, “모두가 ‘하물며’라고 말하고 싶어서, ‘짐승도 저러하거늘 하물며 인간이야’의 경종이 울리기를 바랐던 것”(〈동아일보〉 1982년 11월6일)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 짐승을 통해서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게 된 세상을 고발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들으려는” 욕망이 오보를 낳고 여러 사람을 허탈하게 만들고, 더 큰 실망을 낳았던 거야. 지금도 우리가 마주하는 무수한 오보들처럼 그런 일은 반복되고 있어.

기자명 김형민(SBS CNBC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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