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전세 사기 피해자가 밀집해 있는 화곡동 일대.

출입구 인터폰 위에 붙은 전단지가 눈에 띄었다. “강○○씨의 세입자분을 찾고 있습니다(ㅎ 부동산 계약). 저와 같이 피해 보신 분들과 내용 공유하고 싶습니다. 카톡 아이디 ○○○○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전단지를 본 권귀현씨(33·가명)는 며칠 전 은행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떠올랐다. “임대인이 바뀌셨네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등기를 확인하고 나서야 전단지 속 강씨가 자신이 살던 전셋집 임대인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강씨가 지난 4월26일 권씨 모르게 다른 임대인에게 집을 넘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바로 전단지 속 카톡 아이디로 연락을 취했다. 초대된 단톡방에는 수십명이 모여 있었다.

집주인 강 아무개씨(52)는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 일대에 주택 100여 채를 가진 ‘큰손’이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집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280채를 소유하고 있다는 얘기도 돌았지만, 정확히 그 규모를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강씨는 가진 집 대부분을 전세로 주고 있었다. 일종의 갭투자였다. 세입자들이 낸 전세보증금은 1억3000만원에서 2억6000만원에 달했다. 대부분 매매가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서울 화곡1동을 중심으로 인근 신월1·2동, 화곡2·4·8동, 목4동까지 ‘집주인 연락 두절’ 피해자가 속출했다. 일부는 전세 기간이 끝나고도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시사IN〉은 지금까지 주소지가 확인된 세입자 54가구의 등기부등본과 부동산 매매 흐름을 전수조사했다. 이른바 ‘화곡동 갭투자 사건’은 전세 임대차 제도의 맹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띠링.” 지난 3월, 화곡1동 빌라에 살던 민정아씨(35·가명)에게 동네 ㅎ 부동산 대표 조 아무개 공인중개사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편지 한 통이 찍힌 사진이었다. “임대인 강○○씨에게 임대인 역할을 할 수 없는 사고가 생겨 강○○씨의 대리인이 전세보증금으로 거주 중인 빌라를 세입자에게 매매하는 절차를 진행 중입니다.” 살고 있는 집을 사라는 내용이었다. 더 황당한 것은 다음 대목이었다. “저도 혼란스럽고 힘들어서 4월 중으로 폐업 준비 중에 있습니다.”

급히 집주인 강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할 수 없었다. 집 주인도, 집을 소개해준 공인중개사도 사라졌다. 대리인이라는 이 아무개씨는 “집을 인수할 생각이 없으면 전화하지 말라”고 했다.

세입자가 취할 수 있는 법적 조치 없어

ⓒ권귀현 제공
세입자들은 비슷한 사정에 놓인 다른 피해자를 찾기 위해 골목마다 전단지를 붙였다.

민씨는 집주인 강씨가 집 여러 채를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짐작했지만, 비슷한 문자를 받은 사람이 수십명에 달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포털사이트 지식 검색 게시판에 자신의 사정을 알리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물었다. 질문에 달린 댓글이 이상했다. “혹시 집주인이 강○○씨가 아닌가요? 저도 같은 상황입니다.” 포털사이트 아이디로 쪽지를 남겨 만나보았다. 알고 보니 다들 같은 동네 사람들이었다.

민씨를 비롯한 세입자들은 일단 정보 공유가 급하다고 여겼고, 또 다른 피해자들을 찾아보자고 나섰다. 세입자 리스트를 알 법한 ㅎ 부동산이 사라져 정확한 세입자 규모를 알기가 어려웠다. 궁여지책으로 꺼내든 방법이 전단지였다. 동네 빌라 입구마다, 담벼락마다 붙여서 강씨 소유의 집에 살고 있는 세입자를 찾아 나섰다. 지난 5월 권귀현씨가 본 전단지였다.

단톡방에 모인 세입자들은 대부분 민씨처럼 집 매입을 거부한 이들이다. 설령 집을 매입한다 하더라도 대리인이라고 주장하는 이씨를 신뢰할 수 없었다. 잘못된 거래를 했다가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보증금을 날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리인 이씨는 거래일을 특정하고, 이 시기까지 집을 인수하지 않으면 더 이상 거래해주지 않겠다고 했다.

대리인 이씨는 자신이 세입자들에게 강씨 사정을 설명하거나 설득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7월3일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이씨는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언론에서도 쓰고 싶은 대로 쓸 것 아니냐. 마음대로 하시라. 나는 그저 전세 세입자들 가운데 매입하고 싶은 분들에게 집을 넘기는 거래에 한해서만 대리할 뿐이다. 내가 나서서 세입자들에게 일일이 위임장을 보여주며 증명할 필요는 없잖나. 강씨와는 연락이 닿고 있지만 그걸 알려줄 필요도 없다. 나는 세입자 거래만 담당할 뿐, 집을 제3자에게 양도하는 건 강씨가 알아서 하고 있다.”

만약 강씨가 세입자들에게 “내가 사정이 생겨 대리인이 대신 거래를 해야 한다. 사정을 조금 봐달라” 하고 직접 얘기했다면 거래 과정에 대한 의구심을 풀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씨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사IN 이명익
화곡동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단체 카톡방을 열고 피해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 위는 빌라 옥상에서 동네를 바라보는 한 피해자.

문제는 세입자들이 당장 법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모여든 세입자 대부분은 아직 전세 기간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법률 상담을 받아보고, 경찰을 찾아가봐도 돌아오는 건 “아직 피해가 생긴 것은 아니지 않냐”라는 답변이었다.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때 제기할 수 있는 전세금 반환 소송은 전세 기간이 끝난 일부 세입자나 가능했다. 문제의 주택을 사는 것도 세입자들 처지에서는 마땅한 방법이 아니었다.

황지석(35·가명)·김유화(35·가명) 부부는 2016년 2월 강씨 소유 빌라에 전세로 들어왔다. 전세보증금은 1억3000만원. 황씨 부부는 집주인 강씨가 자신들이 이사 오기 3개월 전에 이 집을 1억1500만원에 매입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일반적으로는 매입 가격보다 전세금을 높게 받지 않지만, 강씨는 전세 거래만으로도 1500만원 차익을 본 셈이다. 2018년 2월, 황씨 부부의 전세 기간이 끝나자 강씨는 전세금 500만원을 더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임대아파트 입주를 계획하고 있던 황씨 부부는 ‘기왕 이렇게 된 거 이사비용 아끼고 조금만 더 기다리자’는 생각에 재계약했다. 공공임대아파트에 당첨되면 중도 상환이라도 받아 나갈 생각이었다. 마침 올해 5월 공공임대아파트에 들어갈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강씨가 이미 잠적한 후였다. 몇 년을 기다린 임대아파트 계약도 물거품이 되었고, 집은 깡통주택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차라리 매입해서 처분할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유주택자가 될 경우 정부가 청년 신혼부부를 위해 내놓은 각종 주택 공급 제도 혜택을 받을 자격 역시 상실한다.

세입자 단톡방은 4월부터 운영됐지만 처음부터 연대가 쉬웠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 신혼부부거나 1인 거주자였고, 경제적 사정도 비슷했다. 일부는 법률 상담을 알아보는 비용을 부담스러워 했다. 무엇보다 강씨나 대리인 이씨, 그리고 강씨의 갭투자 규모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모여든 세입자 대부분은 직방이나 다방 같은 부동산 앱으로 ㅎ 부동산을 알게 되었고, ㅎ 부동산은 자연스럽게 강씨의 집을 소개해오고 있었다. 일부 세입자들은 ㅎ 부동산 대표 조 아무개씨가 집주인 강씨와 공모했을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조씨는 의혹을 부인했다. 지난 6월28일 〈시사IN〉과 연락이 닿은 조씨는 “부모님이 편찮아서 폐업한 뒤 부산에서 간병을 하고 있다. 언론에 나오고 있는 (세입자들이 주장하는) 의혹은 사실과 다르다”라고 주장했다. 조씨와는 이날 통화 이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후 세입자 모임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과 각종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또 다른 피해자들을 찾기 위해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열었다. 사연이 늘어나면서 구멍 난 정보가 하나둘 채워졌다.

세입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강씨가 외부 연락을 끊고 잠적한 시점은 지난해 연말로 추정된다. 당시만 해도 전세 기간이 남아 있던 대다수 세입자들은 그가 잠적한 사실조차 몰랐다. 전세 계약 기간이 2019년 초로 예정되어 있던 일부 세입자들만 강씨와 연락이 안 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ㅎ 부동산을 찾아갔다.

당시 ㅎ 부동산 공인중개사 조씨는 이 과정에서 일부 세입자들에게 강씨의 현금 흐름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조씨가 세입자에게 설명한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강씨가 한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었는데, 그 세입자가 은행에 전세대출금을 갚지 않고 도망쳐 은행이 집주인인 강씨의 금융 거래를 정지시켰다는 내용이었다. 강씨가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한 금액 규모는 1억3000만원에서 1억6000만원 사이였다(자세한 금액은 증언이 엇갈린다). 세입자들은 2억 가까운 집을 수십·수백 채 가지고 있고 자산규모가 100억원이 훌쩍 넘는 강씨가 겨우 이 정도 유동성 문제로 무너졌다는 걸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54가구 등기부등본에 근거해 세입자 규모를 체계적으로 정리해보면 강씨의 부동산 거래 흐름이 눈에 들어온다. 27쪽 인포그래픽을 살펴보자. 강씨는 2015년 7월부터 2017년 1월 사이 54개 주택을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전국적으로 갭투자가 빠르게 확대된 시기다. 다른 갭투자자들과 달리 강씨는 지방 아파트 대신 서울 빌라에 집중했다. 54가구 가운데 38가구가 화곡1동에 몰려 있었다. 강씨는 2017년 1월에만 10가구를 매입했는데, 이때 인수한 집은 모두 당시 막 완공된 신축 빌라였다.

등기부등본을 확인하던 중 이해하기 어려운 채무가 발견되기도 했다. 54개 주택 중 12개 주택에 가압류가 걸려 있었다. 모두 5월16일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의 결정에 따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걸어둔 채권 청구 가압류였다. 청구금액은 약 17억4800만원. 먼저 전세 계약이 끝나 강씨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 중 전세금 반환 보증에 가입되어 있던 일부 세입자들이 HUG에 전세보증금을 청구했고, HUG는 청구인에게 전세보증금을 지급하는 대신 강씨 집을 가압류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정상적으로 전입신고를 마치고, 확정일자를 받아둔 세입자라면 가압류 채권자(주택도시보증공사)에 비해 선순위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이미 가압류가 잡힌 상황에서는 강씨가 나타나지 않는 한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처분을 세입자가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 이렇게 가압류가 걸린 집에 살고 있는 세입자들은 설령 강씨로부터 집을 매입하고 싶더라도 그럴 수가 없었다. 매매 거래 가체가 불가능하다.

강씨는 지난 4월부터 세입자 외에 제3자에게도 집을 넘기고 있다. 54채 가운데 12채의 명의가 4월에서 6월 사이에 새로운 임대인으로 변경되었다. 이 거래에는 공통점이 있다. 집 내부를 확인하거나 세입자에게 따로 연락하지 않은 채 매매가 이뤄졌다. 지난 6월 강씨의 집 두 채를 인수한 송미영씨(42·가명)는 지인으로부터 좋은 매물이 있다며 강씨 소유 주택 리스트 사진(왼쪽 사진)을 전해 받았다고 했다. 송씨는 이들 매물을 지도 앱으로 확인해 외관상 괜찮아 보이는 두 채를 골라 매입했다. 매매가가 전세가와 똑같아 세금 등 각종 부대비용만 지불했다. 그는 “어떻게 보면 나도 이번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만큼) 갭투자를 한 셈이다. 강씨가 세입자들 사이에서 그렇게 문제를 일으킨 줄은 몰랐다. 그저 좋은 투자 매물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바뀐 새 임대인이 전세보증금을 상환할 의사가 있거나, 안정적으로 임대사업을 이어간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 바뀐 집주인이 더 골치 아픈 경우도 있다. 세입자들은 전체 명의 이전 12건 가운데 8건에 대해 의구심을 표했다. 정동석씨(35·가명)가 전세로 살고 있던 집이 대표적이다.

부동산 투자자들 사이에 임대인 강 아무개씨가 소유한 빌라 목록이 떠돌았다.

정씨가 살고 있는 집의 현 임대인은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사업을 벌이던 이 아무개씨다. 이씨는 지난 4월 강씨로부터 정씨 집을 포함해 3채 이상을 매입했다. 새 집주인 이씨는 매입 직후 정씨에게 전화를 걸어 문제가 생기면 연락을 달라며 정씨를 안심시켰다. 며칠 후 이씨한테 사기 피해를 당했다는 회사 관계자들이 정씨 집에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정씨가 살고 있는 집에 지난 5월 가압류를 걸었다. 정씨는 “강씨가 새 집주인에게 집을 넘기자마자 가압류가 들어왔다. 현재 새 집주인 이씨는 연락이 안 된다. 전 임대인 강씨와 새 임대인 이씨 사이에 어떤 공모 관계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라고 말했다.

윤영환씨(35·가명)도 집을 인수한 새 임대인이 미심쩍어 불안한 날을 보내고 있다. 등기상 임대인이 바뀐 사실을 알아챈 직후, 윤씨는 새 임대인의 주소를 찾아가보았다. 주소는 상가건물이었다. 알고 보니 집을 인수한 사람은 이 상가에 있는 고시원에 살고 있었다.  

세입자들은 강씨가 ‘페이퍼 컴퍼니’에 집을 떠넘겼다는 의혹도 제기한다. 권귀현씨의 집은 ‘유한회사 ㅂ’이라는 법인이 매입했다. 이 법인은 자본금 2000만원으로 2019년 4월10일에 설립했는데, 며칠 후인 4월26일에 권씨가 살고 있는 집을 인수했다. 법인 등기에 명기되어 있는 이 회사의 주요 사업은 ‘부동산 임대, 블록체인 연구 개발업’ 등이지만, 법인 주소지는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한 아파트였다. 법인 이사인 서 아무개씨의 자택이었다. ‘유한회사 ㅇ’이라는 또 다른 법인도 2019년 5월20일 자본금 500만원에 회사가 설립되고, 곧바로 5월31일에 강씨의 집을 2채 이상 매입했다.

세 가구에 불과했지만 강씨의 갭투자 사건을 좀 더 일찍 알아채고 대응한 세입자도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강씨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 안 아무개씨는 전세 기간이 만료된 2월 보증금 반환 소송을 제기해 지난 6월27일에 승소했다. 많은 세입자들이 ‘소송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걱정하는 것과 달리, 비교적 빠른 시간(4개월)에 법원 판결을 받아냈다.

ⓒ시사IN 이명익
권귀현씨(가명)가 거주하는 집의 소유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유한회사 ㅂ’으로 바뀌었다.

안씨는 소송 과정에서 집주인 강씨의 과거 전력도 알게 되었다. 안씨의 법률 대리인인 서보건 변호사(법률사무소 다름)는 “재판을 진행하면서 2019년 2월 거주불명등록 요청을 했다. 거주지가 불분명한 사람을 찾아내기 위한 방법이다. 이후 강씨의 바뀐 주소도 여전히 가짜 주소지더라. 이 과정에서 강씨가 2010년에도 지금처럼 연락을 끊고 잠적한 전력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라고 설명했다.

강씨의 투자 방식은 전형적인 갭투자로 볼 수 있다. 갭투자는 전세가율, 즉 매매가 대비 전세가의 비율이 높은 곳에서 주로 발생한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산 뒤 나중에 부동산 가치 상승 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원리다. 강씨가 본격적으로 빌라를 매입하기 시작한 2015년 당시 기승을 부렸다. 최근 동탄에서 180여 채를 갭투자 하다 결국 집을 경매에 내놓은 임 아무개씨 사건(30쪽 상자 기사 참조)도 마찬가지다. 동탄 지역 피해 세입자의 법률 대리를 맡은 김학무 변호사(법무법인 부원)는 “동탄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공시가격과 시세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편이다. 서울 화곡동은 동탄 쪽에 비해 세입자의 피해가 훨씬 클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깡통주택이 빌라에서 발생하는 이유

화곡동이 동탄신도시보다 취약한 이유는 빌라라는 주거 특성 때문이다. 빌라는 아파트에 비해 공개되어 있는 자료가 풍부하지 않다. ‘시세’라는 것도 그저 주변 부동산 중개업소 사이에 통용되는 가격일 뿐이다. 공시지가가 낮기 때문에 경매에 넘기더라도 가격을 제대로 평가받기가 어렵다. 경매를 하더라도 전세보증금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서울 시내 아파트는 전세가가 매매가의 60% 수준이다. 빌라는 통상적으로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가 크지 않다.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하는 깡통주택이 빌라에서 유독 발생하는 이유다. 자연스럽게 갭투자자의 현금 흐름이 막히면 빌라 세입자는 연쇄적으로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다.

강씨의 갭투자 사건은 화곡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강씨 세입자들이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개설한 직후, 비슷한 피해를 당했다는 다른 세입자들이 오픈 채팅방을 찾았다. 임대인 이름은 달랐지만 피해 지역은 같았다. 화곡동 일대에서 갭투자를 하던 이 아무개씨라는 사람도 올해 1월부터 종적을 감췄고, 이들 피해자들이 강씨 피해자들에게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다. 강씨 피해자 이웃이 이씨 피해자였고, 이씨 피해자가 새로운 강씨 피해자를 카톡방에 초대하는 식으로 연대가 이뤄졌다.

이씨의 세입자는 범주가 훨씬 넓었다. 부천, 구로 등지에서도 피해자가 속출했다. 이씨 집에서 전세로 거주 중인 한 세입자는 “6월부터 세입자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강씨 피해자 모임처럼 사람들을 찾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경기도 오산 지역에서 갭투자 피해를 보았다는 사람들도 강씨 세입자 오픈 채팅방을 찾았다. 온라인 쪽지와 발품, 전단지로 연대하기 시작한 동네 주민들이 전국 갭투자 피해자들의 대응 모델이 되고 있다.

세입자들의 연대만큼 중요한 것은 실효성 있는 대책이다. 각자의 사정이 달라 한 번에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이미 집을 매입한 세입자, 임대인이 바뀐 세입자, 가압류가 걸린 세입자, 그리고 아직 강씨 사건을 모르는 세입자까지 상황이 다 다르다. 강씨를 상대로 승소 경험이 있는 서보건 변호사는 “전세 기간이 끝났을 경우 곧바로 전세보증금 반환 소송을 제기하고, 아직 전세 기간이 끝나지 않았더라도 임대차 계약 해지 소송을 먼저 고려해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7월3일 오후, 세입자들이 모인 단체 카톡방에 기사 링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날 국토교통부(국토부)가 발표한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특례 전국 확대’ 기사였다. 종전까지 전세금 반환 보증에 가입하려면 세입자들이 ‘전세 계약 후 1년 이내’에 가입해야 했다. 국토부는 이 범위를 이달 말부터 전국적으로 ‘전세 계약 만료 6개월 전’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분명 세입자를 위한 정부 정책이었지만 강씨 세입자들 사이에서는 실망스러운 분위기가 흘렀다. 향후 갭투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으로 소개됐지만 정작 강씨 세입자들은 바뀐 제도의 수혜를 누릴 수가 없었다. 세입자가 전세금 반환 보증에 가입하고 싶어도 강씨처럼 임대인이 HUG에 채무가 있을 경우 가입이 어렵다.

잘못은 임대인이 하더라도, 결국 상황을 수습할 책임은 세입자가 온전히 지는 구조다. 이것은 화곡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식 전세제도의 틀에서 특정 기간에 벌어진 전국적인 현상이다. ‘화곡동 갭투자 사건’은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이미 동탄신도시에는…

갭투자 된서리를 먼저 맞은 쪽은 경기도 신도시 지역이었다. 화곡동 강 아무개씨의 갭투자와 비슷한 사례는 그에 앞서 경기도 화성 동탄신도시에서 이미 일어났다. 이 일대에서 180여 채를 소유했던 임 아무개씨는 동탄신도시 일대에서 전세가율이 높은 주택을 집중적으로 매입해 전세를 내주었다. 갭투자로 몸집을 불렸지만, 최근 역전세난에 집을 경매로 내놓으면서 논란이 일었다. 

임씨는 경매를 활용해 자신의 아파트를 세입자에게 떠넘긴 혐의도 받고 있다. 친인척 명의로 근저당을 설정한 뒤 고의로 경매에 올려 세입자에게 매입을 강요하는 식이었다. 결국 임씨는 세입자들로부터 형사고소를 당했고, 현재 수원지검에서 수사에 착수했다. 

동탄 세입자 모임의 법률 대리인인 김학무 변호사는 “임씨를 사기와 강제집행 면탈, 법무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지만, 이 가운데 핵심 혐의는 사기라고 볼 수 있다. 임씨는 신도시에서 아파트가 어떻게 분양되는지, 부동산 시장에서 어떻게 등기가 이뤄지는지를 업계 사람 수준으로 잘 이해하는 인물이었다”라고 말했다.

동탄신도시(위)에는 지난해부터 갭투자 경매 물량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신규 주택이 생겨나면서 갭투자 후유증이 거세다. ⓒ시사IN 조남진

아파트 갭투자는 2010년대 초·중반부터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전세가가 떨어지지 않는 게 중요했다. 수도권 신도시 외에도 충남 천안, 대전, 부산, 대구 등 적당히 ‘수요’가 확보된 지역의 소형 아파트가 각광받았다. 빌라와는 달리 아파트 갭투자는 서울에서 불가능한 방식이다. 전세가율이 60%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기 돈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집을 매입하려면 수요는 많지만 아직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은 화성 동탄, 평택 등지가 최적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주택 공급이 계속 예정되어 있던 지역에서 갭투자는 위험한 선택이 되었다. 동탄은 동탄2단지에서 신규 주택이 계속 생겨나고 있고, 평택 역시 ‘마이너스 프리미엄(분양가보다 싸게 내놓은 집)’ 매물이 지난해부터 속출했다. 자연스럽게 지방 아파트를 노린 갭투자의 후유증도 노출되고 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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