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 극영화 〈생일〉의 제작과 개봉은 작은 기적이다. 개봉 2주차부터 ‘차트 역주행’을 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5주기, 아직 상처가 아물었다고 보기 어려운 시점임에도 상영이 가능했던 것은 이종언 감독의 진정성을 유가족들이 믿어주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때 안산시의 치유 공간 ‘이웃’에서 이 감독이 봉사활동을 했던 인연이 있다. 유가족들은 이 감독이 영화를 통해 자신들을 대변해줄 것으로 확신했다.

이 감독의 뒤에는 주목받는 영화 제작자인 이동하 레드피터 대표가 있었다. 2016년 〈부산행〉이라는 좀비 영화로 1157만 관객을 모은 이 대표는 영화 투자사와 배급사들이 요즘 가장 선호하는 제작자다. 〈생일〉이 세월호 유가족을 다룬 영화인데도 설경구·전도연 같은 유명 배우들이 캐스팅에 응하고, 상업영화 투자사와 배급사가 붙은 것은 이 대표의 후광이 있었기 때문이다(이창동·이준동과 공동 제작).

이 대표가 〈생일〉 제작을 현장에서 총괄할 프로듀서로 점지한 이는 김순모 PD였다. 〈우리들〉 〈소공녀〉 등 여성 신인 감독과 작업해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초청받을 정도로 완성도 있게 영화를 만들어낸 김 PD는 신인 감독들이 함께 작업하고 싶은 사람 1순위로 꼽는 프로듀서다. 김 PD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탄탄한 영화가 나올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

ⓒ시사IN 조남진영화 〈생일〉의 공동제작자인 이동하 레드피터 대표(오른쪽)와 김순모 PD(왼쪽).

영화계에서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중박 영화가 많아야 한다.” 이 말은 실체가 없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영화가 ‘중박 영화’이고 그런 영화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다. 다만 그런 영화가 많아야 한다는 데에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영화들이 손익분기점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데 대박 영화 몇 편으로 이런 현실이 가려진다는 점이 영화인들의 고민이다.

블록버스터 영화를 제작한 이동하 대표의 방향이 ‘대박’에서 ‘중박’이라면, 독립영화를 제작한 김순모 PD는 ‘소박’에서 ‘중박’을 지향하고 있다. 〈생일〉의 제작자와 프로듀서로 의기투합한 둘에게 지금의 한국 영화산업 상황이 어떻고, 그런 상황에서 그들은 어떤 영화를 지향하고 있으며, 그렇게 만든 영화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물었다.

어떻게 〈생일〉을 함께 제작하게 되었나?

이동하:김순모 PD와는 주로 영화제에서 만났다. 오스트레일리아 브리즈번 아시아태평양 필름페스티벌에서 처음 만났고, 이탈리아 아플리아 필름포럼에 함께 심사위원 자격으로 갔을 때 〈생일〉을 제작하자고 부탁했다. 〈생일〉은 시나리오 특성상 상업영화 시스템만으로 제작할 수 없는 영화다. 이야기의 진정성을 살려주고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PD가 필요했다. 김 PD를 눈여겨보면서 틈틈이 요즘 무슨 작업 하고 있느냐며 스케줄을 체크하고 있었다.

김순모
:시나리오를 받고 하룻밤에 다 읽었다. 아빠인 정일(설경구)의 시선에서 읽게 되었다. 작품이 너무 좋았다. 바로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세월호 관련 영화라 다들 주저했을 것 같다.

이동하:세월호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이종언 감독이 여러 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어떻게 풀어가는 게 맞을까’ 궁리를 많이 했다. 단순히 유가족의 슬픈 심정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감정도 충분히 담고 있다고 생각해서 상업영화의 틀로 풀어보기로 했다. 10개월 정도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그 뒤로는 의외로 술술 풀렸다. 영화 제작 규모는 보통 어떤 배우가 캐스팅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처음 염두에 두고 있던 배우에게 제안했을 때 바로 긍정적인 답을 받았고, 그들의 결단 덕분에 투자사와 배급사도 해볼 만하다며 적극적으로 나왔다.

제작 과정이 끝없는 설득의 과정이었을 것 같다.

이동하:유가족을 설득하는 게 가장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가장 힘이 되어주었다. 허락을 받으러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에 찾아가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는데 “기운 내라, 그렇게 해서 이런 힘든 영화를 만들 수 있겠나. 응원할 테니 잘 만들어달라”며 격려해주었다.

김순모:감독이 되도록 안산에서 촬영을 하고 싶어 했다. 단원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무려 3시간 동안 설득해서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는데, 실무를 총괄하는 선생님이 반대 의사를 밝혀 무산되었다. 학부모들이 항의하면 선생님들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수긍이 되었다.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영화를 제작하며 하나부터 열까지, 사소한 것도 챙겼다. 배역 이름에 희생자 이름이 겹치지 않게 한 명 한 명 대조했다. 보도 자료에 쓸 단어 하나 선택할 때도 신경을 써서 골랐다.

영화를 본 유가족 반응은 어땠나?

이동하:어떤 어머님이 이런 말을 했다. “처음에는 같이 울어주던 사람도 3~4년이 지나니 다 떨어져 나갔다. 국민들도 그렇고. 이제 우리 몫만 남은 것 같았다. 정부가 바뀌었지만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많아서인지 우리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이야기를 해줘서 참 감사하다.”

김순모
:가장 떨렸던 순간을 꼽으라면 유가족들이 시사회 뒤에 영화에 관해 말씀하실 때였다. 설경구·전도연 두 배우가 자신들의 심정을 잘 대변해주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잘 전달해줘서 고마웠다는 말에 감정이 복받쳤다. 도저히 행사를 진행할 수 없어서 이 대표에게 마이크를 급히 넘기기도 했다.

영화를 개봉하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걱정되었나?

이동하:이 영화를 일반 관객들이 볼 수 있을까. 아무리 세월호 유가족을 지지한다고 해도 영화를 보려고 할까. 걱정이 앞섰다. 응원하기는 하지만 선뜻 영화를 감당할 용기가 나지는 않는다는 분이 많았다. 게다가 영화계도 비수기에 접어들었다. 전체적으로 관객이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소문이 나면서 관객이 늘었다.

〈생일〉 제작 현장의 김순모 PD(맨 왼쪽 선글라스 낀 이). 김 PD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생일〉 시사회 때 가장 떨렸다고 말한다.
요즘 우리 영화계를 어떻게 보는가?

이동하: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이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였다. 제작사가 영화 제작의 중심에 있어서 다양한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 그땐 영화들이 참 다양했다. 지금이라면 〈지구를 지켜라〉 (2003)가 나올 수 있을까? 분출 욕구도 강했고 준비된 크리에이터들도 있었다. 그때 데뷔한 감독들이 지금도 한국 영화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다. 그때 등장한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보통 40대가 되면 주연을 못하는데 40대를 넘어 50대가 되어도 여전히 주연을 한다. 지금은 투자사와 배급사 등 산업 관계자들의 눈을 통과한 감독만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제작사의 힘도 약해져 비슷비슷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기 검열의 문제가 알게 모르게 더 심해진 것 같다. 감독들이 투자사와 배급사 눈치를 보면서 자기 검열을 하기 시작했다. 프로듀서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시도를 자신이 직접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동하:그동안 했던 작업은 다양한 이야기의 확장이었다. 흥행이라는 시장적 의미에서 보면 성공할 때도 있었고 실패할 때도 있었다. 그런 시도는 흥행에 실패해도 영화계 안에서는 인정을 받았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생일〉도 선택했다. 시나리오를 고를 때 ‘나한테는 새로운 이야기인가’ 이것이 첫 번째 질문이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감독으로 데뷔한다.

이동하:제작자 출신인 60대 조철현 감독이 연출하는 〈나랏말싸미〉가 있고, 소설가 천명관씨가 감독으로 데뷔하는 〈뜨거운 피〉가 있다. 그리고 내가 제작한 〈미성년〉에서는 배우 김윤석씨가 감독으로 데뷔했다. 늦깎이 데뷔가 새롭고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새로운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도전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라는 산업은 누가 좋은 이야기를 쓸 수 있느냐, 그리고 그 이야기에 맞는 좋은 캐스팅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김순모 제공이동하 레드피터 대표는 배우 김윤석씨(오른쪽)를 〈미성년〉의 감독으로 데뷔시켰다.
〈미성년〉에서는 배우 김윤석씨를 감독으로 데뷔시켰다. 부담은 없었나?

이동하:〈화이〉를 제작할 때부터 김윤석씨를 눈여겨보았다. 그 어떤 배우보다 영화적 식견이 뛰어났다. 감독들보다 아는 것도 많았다. 젊었을 때 연극을 연출한 경험도 있고 그 작품으로 해외에서 초청을 받은 적도 있었다. 좋은 스태프를 알아보고 숨은 배우를 발굴하는 능력도 탁월했다. 감독으로서, 그날그날 회차를 어떻게든 마무리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작은 캐릭터에도 생명력을 부여하고 시나리오를 몇 년 동안 다듬는 집중력도 보였는데 젊은 감독들의 귀감이 될 만한 모습이었다.

한국 영화 제작 환경이 어려워졌다고 하는데 그동안 작은 영화를 주로 만든 김순모 PD는 더 힘들었을 것 같다.

김순모:작은 영화나 큰 영화나 구조는 동일하다. 단지 예산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현장에서는 차이가 좀 난다. 특히 스태프의 숙련도 차이가 크다. 그래서 작은 영화는 외적 완성도에서 누수되는 부분이 많다. 그런 상황에서 완성도 있는 영화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프로듀서가 큰 그림 안에서 예산을 짜고 규모 있게 써야 한다.

예산이 적어서 못 들어주는 요구가 많았을 텐데 그럴 때는 어떻게 했나?

김순모:특별한 방식은 없는 것 같다. 진심을 다해서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다. 일방적인 통보는 지양한다. 있는 상황을 그대로 얘기하는 편이다. 중간에서 조율해야 하는 상황도 많은데 양쪽 다 자신의 견해를 충분히 얘기하게 한다. 작은 영화는 예산과 관련해서 하기 어려운 얘기를 할 때가 많은데 솔직하게 하려고 한다.

이동하 대표는 다큐멘터리를 전공해서 그런지 영화를 저널리즘의 한 방식으로 쓴다는 생각이 든다.

이동하:이야기의 힘이 있다면 어렵더라도 가보려고 한다. 그 감독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일 때, 그런 시나리오가 가장 매력이 있다. 앞으로도 장르와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될 것 같다. 재능 있는 연출가들과 함께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여러 장르의 영화를 제작하다 보면 마주치는 문제도 다양하지 않나?

이동하:시나리오 단계, 그리고 캐스팅 단계에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문제가 될 수 있는 내용들은 먼저 말해야 한다. 경험이 많은 감독이라 하더라도 현장에서 정리할 수 있는 문제는 드물다. 영화 프로덕션은 타이밍이다. 앞단에서 해야 할 것을 뒷단으로 미루면 문제가 풀리지 않고 더 커질 뿐이다. 먼저 문제 제기를 하면 기분이 언짢을 수 있지만 미리 고민하게 된다.

두 사람이 제작한 영화를 보니 가족 영화가 많았는데, 화목한 가족은 아니다. 가족 해체의 풍경을 담고 있다.

이동하:그런 생각을 안 해봤는데 돌이켜보니 그랬던 것 같다. 〈여행자〉는 아이를 입양 보내는 이야기이고, 〈시〉는 성범죄를 저지른 손자의 이야기다. 〈화이〉는 양아버지에 의해 길러진 아이가 친아버지를 죽이는 이야기다. 〈시〉 〈부산행〉 〈염력〉 〈생일〉 〈미성년〉 모두 평균적인 가족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가족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일본 안에서 그의 영화에 존재하는 가족이 현실에서 존재하느냐는 지적이 많다. 그가 그리는 가족은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가족의 모습이 받아들여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옛날부터 있어왔지만 감춰지고 소외된 가족의 모습이 더 많이 얘기될 것이다.

김순모 PD는 가족 이야기를 풀면서도 마이너리티의 목소리에 주목했다.

김순모:독립영화는 자신이나 가족의 이야기 혹은 친구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영화가 자신의 고민에 대한 증폭기 구실을 하는 셈이다. 그동안 서로 다른 가족의 모습을 담았다. 가족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것이고 버릴 수 없는 조건이라서 영화의 주제가 되는 것 같다. 그런 가족의 이야기를 풀 때 감독과 그 나이대 사람들이 느끼는 정서를 중심으로 푼다. 독립영화의 특성일 수 있는데 이야기를 확장하는 것보다는 인물 하나로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이동하 대표는 〈부산행〉 이후 극적으로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떤 영화를 제작할지 궁금하다.

이동하:예전에는 투자받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투자받기가 조금 수월해졌다. 그것 빼놓고는 똑같다. 그동안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와 제작했던 영화들도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었지만 영화계 안에서는 지지를 받았었다. 영화를 고르는 기준도 이전과 동일하다. 〈미성년〉이나 〈생일〉은 〈부산행〉 전에 시나리오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나는 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투자를 받아냈을 것이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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