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팬덤 바깥까지도 제법 알려진 영상이 하나 있다. ‘민윤기를 고소합니다’라는 제목이다. 방탄소년단의 팬 사인회에서 멤버 슈가를 향해 한 팬이 애끓는 목소리로 외쳐댄다. “민윤기(슈가의 본명)를 고소합니다. 저를 아프게 하니까요.”
왜 우리는 사랑하면 아파야 할까 하는 상념도 들지만,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뒤흔들리는 건 팬심의 정수다. 저 목소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슈가는 황당함과 원망이 섞인 웃음을 보인다. 어쩌면 ‘아이돌을 하니 별일을 다 겪네’ 하는 감상이 섞여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슈가는 ‘아이돌이 된’ 사람이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방탄소년단 데뷔 이전 이미 래퍼이자 비트메이커로 활동했다. 지금도, 인체가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수준의 스케줄 속에서도 핵심적인 프로듀싱 멤버로 곡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열혈’ 캐릭터는 아니다. 의욕과 흥이 넘치는 멤버들 틈에서 늘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한두 마디를 던진다. 그런 그에게는, 뭐든 극한으로 애절하고도 달콤한 아이돌이란 세계는 어쩌면 한동안 ‘이상한 나라’였을지 모른다(시니컬한 모습마저 아이돌을 보는 ‘재미’의 하나가 된다는 것은 또 얼마나 희한한 풍경인가).
그도 간혹 고백했듯, 언더그라운드 래퍼에서 아이돌이 되는 데에는 저항이 따르기 십상이다. 힙합은 아이돌보다 숭고하고 수준 높은 것이라 믿는 이들이 많으니까. 가자미눈을 뜨는 이들도 있었을 테다. 그의 믹스테이프(비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는 곡)에도 ‘팔아먹었다고 생각했던 자존심’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를 다시 ‘자긍심’이라 말하는 대목은, 언젠가부터 그가 아이돌인 자신을 즐길 수 있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변화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슈가는 또한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가 된’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믹스테이프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자기혐오로 가득했던 과거를 이야기한다. 가히 드라마틱하기까지 한 생활고와 방황의 이야기는, 방탄소년단이 청춘의 불안을 노래한 ‘화양연화 연작’의 더 어두운 뒷면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는 절망 속에서 “꿈조차 없다는 게 한심”하다며 자조한다. 그런 그에게 방탄소년단의 근작들은 정확히 “꿈이 없어도 괜찮아”라고 말한다. 방탄소년단이 전하는 위로에는, 슈가가 겪은 고통과 불안, 그리고 그것에 대한 자신과의 화해가 큰 뼈대를 이루고 있다.
그가 최근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노래’를 수상하며 “음악에 높고 낮음이 없다”라고 말한 것은 그래서 더 자신감 있게 들린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방탄소년단을 바라보는 시선은 자주 결과론에 그치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다른 가치를 내려놓고라도 ‘잘 팔렸으니 이긴 것’이라는 투다. 그러나 그것이 음악만으로 선정한다는 한국대중음악상이기에, 우리는 그보다 더 나은 이유가 있으리라 기대하게 된다. 이를테면 그가 아이돌로, 방탄소년단으로, ‘러브 유어셀프’로 현신해나가는 진귀한 성취라든지 말이다. 그가 자긍심을 느꼈다면 음악의 힘으로 자신을 말하고 바꿔나가는 과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슈가의 삶은 지금 그곳에 서 있다. 가끔 고소하겠다는 투정을 듣는 이상한 세계일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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