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단에 선 강사가 수강생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 여기서 한국어 읽을 줄 아는 분 손 들어보세요.” 6명 가운데 손을 든 사람은 기자를 포함해 두 명뿐이었다. “그럼 한국어 알아듣는 건 괜찮으신가요?” 세 사람이 추가로 손을 들었다. 나머지 한 명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여기 한국분이 한 명 계시니까, 이분이 동의하시면 중국어 자막 수업 영상으로 진행하도록 하죠.” 교실에 있는 모든 사람이 기자를 쳐다봤다. 고개를 끄덕이자 강사가 교육 영상 재생 버튼을 눌렀다.

지난해 12월19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위치한 한 건설 안전교육 학원. 건설 현장 잡부 일을 하려면 이곳에서 4시간짜리 안전교육을 반드시 수강해야 한다. 수업을 듣는 이들 대부분은 재한 조선족이었다. 함께 교육을 받게 된 한 50대 남성은 지방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다 일감이 떨어져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수업은 50분씩 총 네 차례 이어졌다. 1교시는 산업안전보건법에 관한 영상을 시청했다. 2교시부터는 건설회사에서 오래 일한 강사가 각종 현장 안전수칙(비계 작업, 용접, 리프트 작업 등)을 말로 설명했다.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다던 40대 남성도 졸음을 쫓으며 강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중국어 자료는 1교시 수업에만 사용했을 뿐 나머지 시간은 한국어 자료로 수업을 진행했다. “이런 걸 조심하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라는 내용의 강의를 모두가 이해했는지 알 수 없었다.

ⓒ시사IN 신선영1월18일 새벽 남구로역 교차로에서 조선족 노동자들이 일감을 기다리며 서 있다.

안전교육을 받은 직후 작업복 매장에 들렀다. 가격별로 걸려 있는 작업복 매대에서 한국GM과 팔도식품 마크가 박힌 작업복을 발견했다. 도매상에서 덤핑으로 떼 온 제품이었다. 가격은 1만5000~3만원 정도. 디자인과 상관없이 무조건 따뜻해 보이는 옷을 집어 들었다. 대기업 협력업체 작업복이 대림동을 거쳐 각 지역 공사장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건설업은 대림동을 처음 찾은 이들이 가장 먼저 택하는 업종 중 하나다. 현재 다른 일을 하더라도 정착 초기에 ‘노가다(막일) 경력’이 없는 남성은 찾기 어렵다. 대림동은 이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한다. 저렴한 월세방, 기본적으로 필요한 장비를 파는 매장, 각종 직업소개소가 골목 곳곳에 포진해 있다.

건설 인력시장의 영향은 대림동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슈퍼마켓이나 철물점, 열쇠 가게뿐 아니라 동네 세탁소 앞에서도 붉은색 반코팅 장갑을 묶음으로 팔고 있었다. 대림역 8번 출구에서 대림역 9번 출구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각종 안전화 매장이 늘어서 있다. 280㎜ 사이즈의 안전화를 구하기 위해 인근 매장 다섯 군데를 넘게 돌았다. 근처 생활용품 매장에서는 현장에 나가는 사람들이 구입하는 대형 백팩을 팔고 있었다. 현장 노동자 대부분은 이 백팩에 작업복과 안전화 따위를 담았다.

대림동의 하루는 건설 현장 노동자들이 움직이면서 시작된다. 새벽 4시30분이면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서성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많은 재한 조선족 건설 노동자들이 팀 단위로 움직였다. 건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재한 조선족 가운데 일부는 ‘팀장(오야지)’이 되어 다른 재한 조선족 인력을 이끈다.

팀에 속하지 않고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을 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대림역 8번 출구 인근 직업소개소를 돌아보았다. 직업소개소 대부분은 재한 조선족 출신 직업소개사가 일자리를 소개하고 있었다. “처음이신가 보구나. 30대 남성이 할 만한 일이 있긴 한데…. 일단 소개비 12만원을 선납해야 해요.” 그는 경기도 화성에 있는 환풍구 설치 업체를 안내했다. 하루 일당은 10만원, 특근까지 하면 5만원이 추가되는 일자리였다. 소개받는 사람이 하루를 일하든, 1년을 일하든 소개비는 건당 12만원이었다. 당일치기로 일을 구할 수는 없었다. “그러려면 남구로역 용역회사로 가야지. 대림동에서는 주로 지방에서 숙식하는 업종을 취급한다.”

“우리도 동남아 출신이나 한족한테 밀린다”

대림동 직업소개소가 취급하는 업종은 다양하다. 건설 현장 외에도 시설 정비, 모텔, 사우나, 요양원, 제조업 공장 등 주로 숙식을 제공하는 지방 일자리를 연결해준다. 각 소개소 입구에는 ‘오늘의 일자리’를 알리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지역, 임금, 그리고 일이 가능한 비자 종류를 설명한다. 대림동 직업소개소 일대에는 재한 조선족뿐 아니라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출신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1월18일 새벽 4시, 대림역 8번 출구 앞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도림천을 건넜다. 도림로를 따라 15분 정도 걷다 보면 남구로역 교차로에 도착한다. 넥워머를 걸치고, 커다란 백팩을 멘 남성들이 줄지어 남구로역 인력시장으로 향했다. 하나은행 구로동지점 앞으로 가니 일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뤘다. 대부분 중국 출신이었다. 남구로역 교차로를 사이에 두고 남구로역 2번과 5번 출구 앞에는 한국인이, 하나은행 코너에는 중국인이 늘어서 있었다.

중국인 구역에서 일을 구하려 서성였다. 새벽 5시, 묘하게 긴장감이 흘렀다. 이곳에 모여든 수백명 인파 대부분은 중국어를 사용했다. 재한 조선족 외에 단기 체류 중이거나 불법체류 중인 한족까지 모여 있었다. 한 재한 조선족은 “이쪽에서는 중국어가 가능한 재한 조선족 팀장이 주로 인력을 데려간다”라고 설명했다. 사람을 구하는 팀장들은 조용히 다가와 중국어로 가격을 협상하고 인력을 데려갔다. 누가 일감을 제안하는 사람(팀장)이고, 누가 일감을 찾는 사람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중국어를 못하는 상태에서 일을 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길 건너 한국인들은 중국 국적 노동자에 대해 적개심을 감추지 않았다. 한족 출신 중국인 인력이 많아지면서, 임금 협상력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일부 팀장들이 불법체류 인력을 중개하면서 단가를 낮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합법적인 절차로 일을 구하는 재한 조선족 노동자도 고충을 털어놓았다. “우리도 동남아 국가 출신이나 한족한테 밀린다.”

새벽 5시58분이 되자 주변 지역을 청소하던 환경미화원 4명이 일제히 하나은행 앞에 모여 바닥에 버린 종이컵과 담배꽁초를 쓸기 시작했다. 사실상 파장을 알리는 신호였다. 일을 구하지 못한 채 다시 돌아온 대림역 12번 출구에는 하루를 공친 건설 노동자들이 하나둘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 더 많은 사진과 영상은 ‘대림동 한 달 살기’ 웹페이지(daerim.sisain.c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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