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보 어크로스 대표의 사무실 테이블에 조화와 생화가 각각 하나씩 올려져 있었다. 조화는 10년도 더 전, 후배에게 받은 선물이다. 살아 있는 식물은 죽일 게 뻔하니 조화를 건넨다고 했다. 하나는 얼마 전 다른 출판사 대표가 주고 간 포인세티아였다. 시든 기색 없이 생기 있어 보이는 게 조화와 구분이 안 갔다. 이사를 기념한 선물이었다. 지난 10월 서울 망원역 근처에서 합정역 인근으로 이사했다. 규모가 훨씬 커졌다. 어크로스는 2015년에 이어 ‘출판인이 꼽은 올해의 출판사’로 두 번째 선정되었다.

3년 전과 반응이 좀 달랐다. 김 대표는 ‘엄청나게 부담’스럽고, ‘과평가되었다’고 일축했던 당시와 달리 기쁜 기색을 드러내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두 번이나 선정된 출판사는 처음이다. 소감을 물었다. “기쁘죠. 기쁜데 겁이 많은 편이라 저희가 받을 상이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올해 일군 성과를 업계의 동료들과 관계자에게 인정받은 거니까 기분 좋고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거 하나만으로도 저희한텐 의미가 있죠.” 사진 촬영을 위해 직원들이 모두 모였다. 모두 빼는 기색 없이 자연스레 포즈를 취했다. 대표를 포함해 5명이던 직원이 8명으로 늘었고, 구성원들 면면이 달라졌다.

2015년 이후로는 김 대표가 직접 책을 기획하는 일이 줄었다. 여전히 편집장 구실을 하고 있지만 주로 관리자 업무에 치중했다. “조직이 성장하는 과정이었어요. 담당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관심 있는 것들을 밀어붙이고 내부적으로 마케팅이 결합하면서 실질적인 성과로 연결됐죠.”
최근 몇 년은 특히 SNS를 중요하게 여기고 활용했다. 페이스북 담당 직원을 보면 SNS가 물이고 본인이 물고기 같다. 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자유롭다. 이들의 DNA가 회사에 전파되기도 했다. 저자들과도 SNS로 자주 소통한다. 

ⓒ시사IN 조남진올해의 출판사에 선정된 어크로스의 김형보 대표(의자에 앉은 이)와 직원들이 단체 사진을 찍었다.

“편집자들이 한 일이다.” “지금의 멤버들이 올해의 성과를 만든 것이다.” 김 대표가 반복해서 말했다. 편집자 4명, 마케터 2명, 총무 1명에 대표까지 8명이다. 작년과 올해 새로운 사람이 많이 들어왔다. 13~15년 경력의 편집자와 마케터를 비롯해 5년차 편집자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경력자 두 명이 결합하며 질적인 성장을 이뤘다. 세련된 마케팅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편집 면에서도 안정성이 확보됐다.
출판사 관계자들에게 어크로스는 대체로 타율이 좋고 시의적절한 인문 교양서를 내는 출판사로 기억된다. ‘장르 불문 평타 이상의 성적을 내는, 다음 책이 기대되는 출판사’ ‘교양과 재미의 선을 잘 타 넘는 출판사’라는 평가를 비롯해 ‘인문사회 분야의 의미 있는 기획물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 같다’ ‘대중성 측면에서 민감하게 대응하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라는 의견도 있었다.

김 대표 역시 타율이 좋다는 점에 동의했다. 작년과 올해 특히 성과가 좋았다. 올해 출간한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의 〈열두 발자국〉은 연말까지 총 20만 부 정도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종합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을 낸 건 처음이다. 홍성수 교수의 〈말이 칼이 될 때〉는 약 2만5000부.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가 1만4000~1만5000부 나갔다. 이들을 포함해 올해만 총 14종을 냈다.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출판사를 차릴 때 김 대표는 ‘게릴라전’을 하겠노라 했다. 한 권 한 권 타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가다 보면 어디쯤 가닿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만드는 건 재밌는 일이지만 이제 진지하게 거점이 되는 도서를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호흡을 가다듬어 질적인 변화를 꾀해야 하는 시점이랄까. 

직원 가운데에는 대형 출판사를 다니다가 어크로스로 이직한 경우도 있다. 이유가 궁금해졌다. 김 대표는 어크로스가 중소형 출판사라는 점을 들었다. 큰 출판사는 워낙 많은 책을 내기 때문에 묻히는 경우가 많고, 작은 출판사는 하나하나 소중하게 내지만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다. 그 중간 규모라, 비교적 도모할 기회가 많은 편이다.

‘중소형’ 출판사의 강점 

구성원이 바뀌면서 책의 성격도 달라졌다. 타깃 독자층도 변했다. ‘대학 교육을 받은 도시 거주 교양독자층’이 주 대상이었다면 지금은 더 다양해졌다. 과거와 다른 색의 책도 많이 나온다. 밀레니엄 세대를 대변하는 책도, 에세이집도 낸다. “제가 모르는 독자들, 제가 모르는 어떤 결들에 대해 완성도 있는 책을 만들고 있어요. 저 혼자였으면 계속 같은 물에 있었을 텐데 각자가 어크로스의 영토를 확장해나가고 있는 셈이죠.”

책을 만들 때 좌고우면하는 편이다. 김 대표는 ‘이 책은 잘 모르겠는데 나를 설득해 봐’라는 식으로 질문한다. 책의 핵심이 무엇인지, 왜 그 책을 내야 하는지, 그 설명이면 충분한 것 같은지, 질문이 길고 뜸 들이는 시간도 길다. 타율이 높은 건 거기에 시간을 많이 써서 그런 것 같다. 〈열두 발자국〉도 정재승 교수의 강연을 모은 책이지만 숫자 등 팩트를 일일이 확인하고 저자의 수정을 거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3년 전 인터뷰에서 김 대표는 10명 이하의 ‘선수 편집자’ 중심의 조직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같은 생각일까. 그는 “건방졌죠. 감독 역량이 안 되는데(웃음). 돈 많은 구단주도 아니고요. 다만 편집자가 하나의 세계라서 역량이 발휘되는 구조를 잘 짜면 재미있게 일하는 환경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시엔 편집부를 중심으로 생각했지만 책을 적게 만들면 마케팅이 더 중요해지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어크로스 직원들은 아침마다 짧게 회의를 한다. 작은 조직의 강점은 커뮤니케이션이다. 10~30분 매일 각자의 업무를 이야기하고 공유할 것을 확인한다. 업무용 채팅 애플리케이션에서 계속 떠들기도 한다. 늘 그렇듯 2019년의 목표 역시 20종을 내는 것이다. 지식 기반, 교양을 중심으로 하되 형식은 다양하게. 가끔 부족한 공부 실력을 가지고도 책을 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건 걸러내고 단단한 책을 만들려고 한다. 김 대표가 기쁨을 거두고 내년의 호흡을 가다듬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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