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베트남 출장에 불평할 구석이 좀 있다. 관광 목적이었다면 찌는 더위와 역한 고수풀을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기자로서는 언어가 가장 문제였다. 현지에서 급조된 통역 때문에 의사 전달이 잘 안 됐다. 2시간 인터뷰해서 20분 분량만 건지는 상황이 반복됐다. 영어권 취재원과 달리 ‘넘겨짚기’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갑갑했다.

투덜거리는 와중에 영어가 가능한 취재원을 만났다. 현지 기자였다. 정작 ‘지옥도’는 이때 펼쳐졌다. 공식 취재가 아닌 식사 자리였기에 통역이 따로 없었다. ‘베트남 개혁·개방 모델과 북한’이라는 까다로운 주제를 두고, 발음과 어휘가 엉망인 우리는 더듬더듬 단어만 열거했다. 미소로 의사를 대신하는 일이 잦았다.

ⓒ시사IN 양한모

뜻이 제대로 통한 몇 안 되는 대화 중 이런 대목이 있다. 나는 개혁·개방으로 경제가 발전한 베트남에서 공산당 독재가 계속되는 까닭을 물었다. 베트남 기자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답했다. “공산당 정권이 정책을 밀어붙였기에 경제가 발전했고 인민들은 누구도 불만을 갖지 않는다. 한국이나 미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여론이 하나로 모이지 않고 정쟁이 계속되면서 발전이 지체되는 걸 알지 않는가?” 더듬더듬 읊은 말 가운데 이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Democracy makes things complicated(민주주의는 사람들을 복잡하게 만든다).”

공교롭게도 2016년 미국 출장에서 같은 말을 들었다. 일종의 풀뿌리 견제 기구인 ‘커미션’ 의장이 미국의 복잡한 정책 실행 과정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다만 결론이 달랐다. 그는 “커미션은 더 복잡하지만 일을 올바르게 만드는 곳이고, 민주주의란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좋게 말해 자부심, 나쁘게 말해 오만함이 느껴졌다. 부러웠다.

베트남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두 사람이 만난다면 서로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남북통일이 된다면 양측 주민 간 차이는 그보다 더 클 것이다. 경제적 문제보다 훨씬 극복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것을 실감했다. 당장 한국에도 베트남 기자처럼 독재 정권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잔존하지 않는가. 그 중심에는 얄궂게도 틈만 나면 베트남의 ‘패망’을 적개심 섞어 입에 올리던 전직 대통령이 있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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