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특별조사단)’이 5월25일 발표한 조사보고서에 2015년 2월26일 선고된 KTX 여승무원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1다78316 판결, 대법원 2012다96922 판결. 이하 ‘KTX 판결’)이 포함되어 있다. ‘그동안 사법부가 VIP(대통령)와 BH(청와대)의 원활한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적·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BH와 사전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물밑에서 예측 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한 협조 사례로 언급된다. 즉,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문건 등에 KTX 판결이 노동 개혁에 기여할 수 있는 판결이라고 소개되었다. KTX 판결 선고 당시 법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설명되지 않던 의문이 비로소 풀리는 듯해 씁쓸했다.

ⓒ시사IN 신선영2015년 11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KTX 여승무원이 패소했다.

전통적인 개념의 근로관계인 직접고용과 달리 간접고용은 노동자를 사용하는 자와 고용하는 자의 분리, 곧 권한과 책임의 분리를 의미한다. 이는 근대 노동법의 대원칙인 중간착취 금지에 반한다. 매우 위험한 고용 형태다. 그래서 노동법의 영역에서는 극히 예외적으로만 허용된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른 근로자 파견이 대표적인 간접고용이다. 현행 파견법은 제한적인 업무에만 근로자 파견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는 탈법과 불법을 일삼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위장도급’이다.

 

민법상 자유롭게 허용되는 ‘도급’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업무(생산 업무, 서비스 업무 등)를 맡겨 완료하면 보수를 지급하는 계약 형식이다. 도급은 도급인이 수급인과 수급인 소속 노동자의 업무 수행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만약 도급인이 수급인과 수급인 소속 노동자들의 업무 수행에 관여하면 진정한 도급이 아니라 소위 ‘위장도급’이 된다. 위장도급은 수급인의 실체가 어느 정도 인정되느냐에 따라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수급인의 실체 형해화)와 근로자 파견으로 구분된다.

해고된 KTX 여승무원들은 코레일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두 건(1차 소송, 2차 소송)을 제기했다. 하청업체인 홍익회나 철도유통(이하 ‘철도유통 등’) 소속이지만 자신들은 코레일 소속 열차팀장 등 정규직과 함께 같은 열차에서 근무하며 코레일의 지휘·감독을 받아 코레일과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에 있거나 근로자 파견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KTX 여승무원들의 근무 실태를 보면, 코레일로부터 상당한 지휘·명령을 받았고, 코레일 소속 정규직들과의 혼재 작업을 했다. 코레일은 KTX 여승무원들에 대한 채용, 교육 훈련, 임금항목 구성, 징계 등에도 관여했다. 코레일과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나 적어도 근로자 파견을 인정하기에 충분한 징표들이 다수 확인되었다. 이는 KTX 대법원 판결에서조차 인정한 사항들이다. 코레일(당시 철도청)이 위탁협약에 앞서 노동부에 질의한 결과 승무원 업무 특성상 독립적 업무 수행이 어렵다는 회신을 받기도 했다. 업무방해 형사사건(서울중앙지법 2007고단2912) 등 코레일과 여승무원 사이 벌어진 다른 소송에서도 모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인정됐다.

KTX 1차 소송 1·2심에서는 이겼으나…

하지만 대법원의 KTX 판결은 달랐다. 먼저 여승무원 34명이 코레일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1차 소송)과 관련해, 1심은 철도유통 등 하청업체가 코레일의 일개 부서로 기능했고 코레일이 여승무원들로부터 근로를 제공받고 임금을 포함한 제반 근로조건을 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했다. 1차 소송 2심은 여승무원에 대한 인사 노무관리의 실질적인 주체가 코레일이라는 사정까지 인정했다. 또 1심과 마찬가지로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했다.

ⓒ시사IN 신선영서울역에서 근무 중인 KTX 열차 승무원 모습.

여승무원 34명이 1심에서 승소한 뒤 여승무원 118명이 코레일을 상대로 똑같은 소송(2차 소송)을 냈다. 2차 소송 1심도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했다. 하지만 2차 소송 2심은 위장도급(묵시적 근로계약관계와 근로자 파견)을 인정할 수 있는 징표와 그렇지 않은 징표들을 병렬적으로만 나열한 채 결론적으로 위장도급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1차 소송과 2차 소송을 함께 다룬 대법원은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의 중요한 징표들은 애써 외면했다. 열차팀장과 여승무원들의 업무 지시와 업무 구분 여부에 대한 실질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 채, 1차 소송 1·2심의 결론과 정반대로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의 성립을 부정했다. 대법원은 위장도급을 인정하기 어려운 징표들에만 주목해 2차 소송의 2심과 같은 판결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2015년 2월26일 KTX 여승무원 사건(1차 소송, 2차 소송), 현대자동차 사건, 남해화학 사건에 대한 총 4개 판결을 선고했다. 이날 선고에서 기존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 판단 기준을 다시 확인했다. 한편으로 근로자 파견과 도급의 구별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현대자동차 사건과 남해화학 사건에서는 근로자 파견이 인정된다며 노동자 측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KTX 여승무원 사건에서는 2건 모두(1차 소송의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면서까지) 근로자 파견도 아니고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도 아니라며 사용자인 코레일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법원이 코레일의 불법에 면죄부 준 꼴

문제는 위 판결 4개가 모두 동일한 기준에 따라 판단했다는 점이다. 물론 동일한 법령이나 판례의 기준에 따르더라도 개별 사건마다 사실관계의 차이에 따라 다른 결론의 판결이 선고되는 것은 다반사다. 그런데 KTX 판결은 여승무원들의 근무 실태 등을 동일한 판단 기준에 제대로 적용했다면 같은 날 선고된 현대자동차 판결이나 남해화학 판결과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없는 사건이었다. 매우 이례적이다.

KTX 판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첫째, 대법원은 코레일의 상당한 지휘·명령, 혼재 작업 등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나 적어도 근로자 파견으로 보기에 충분한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이와 다른 몇 가지 사실관계 또한 인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한 논리 전개 없이 여러 상충하는 사실관계 속에서 매우 불분명한 방식으로 그와 같은 결론을 내려버렸다.

ⓒ시사IN 신선영4월5일 KTX 해고 여승무원과 코레일 자회사 ‘코레일 관광개발’ 소속 승무원이 직접고용을 촉구하고 있다.

둘째, 같은 날 선고된 현대자동차 및 남해화학 판결과 이후 여러 유사 사건에서 위장도급 징표로 판단한 사항들을 KTX 판결에서는 쉽사리 무시했다. 대법원은 하청업체인 철도유통 등이 코레일의 자회사이고, 코레일이 시설과 장비를 철도유통 등에 무상 대여했다고 인정했다. 코레일 소속 열차팀장이 상시적으로 여승무원들의 업무 수행을 확인한 것도 인정했다. 코레일 요구에 따라 철도유통 등이 여승무원을 징계했고, 코레일이 여승무원 서비스 매뉴얼을 제공했으며, 코레일이 여승무원들의 임금 세부 항목과 액수를 특정한 점 등을 모두 인정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코레일의 사업 운영 효율성이나 도급인의 정당한 권한 정도로 치부해 위장도급 징표에서 애써 배제했다. 대법원이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명확한 근거 없이 다른 잣대로 판단하고, 그 결과 노동법의 대원칙과 파견법의 문언에 반하여 위장도급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

셋째, 대법원은 코레일 소속 열차팀장이 수행하는 안전 업무와 자회사 소속 여승무원의 객실서비스 업무가 구별되고, 이례적인 상황에서만 열차팀장의 지시를 받는다면서 근로자 파견 징표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달리는 열차 안에서 열차팀장의 업무와 여승무원의 업무가 실제로 이와 같이 구분되지도 않고, 일상적으로 열차팀장의 지시를 받는다는 점에서 이는 심각한 사실 오인이자 법리 오해에 해당한다.

넷째, 여러 사실관계를 종합하면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할 수 있음에도 대법원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보호 법리로서 스스로 제시했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 법리를 지극히 엄격한 요건 아래서만 적용했다. 결과적으로 해당 법리를 사실상 사문화했다.

대법원은 위와 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로 코레일과 철도유통 등의 관계를 위장도급이 아닌 진정도급으로 인정해 사실상 코레일의 불법에 면죄부를 준 꼴이 되었다. 현재 이 판결은 사용자들이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와 근로자 파견을 부인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인용된다. 그런데 이 판결은 이후 선고된 다른 유사한 대법원 판결과 비교해도 상당한 차이가 있어서 유독 ‘튀는 판결’ ‘돌연변이 판결’로 평가된다. 양승태 대법원 법원행정처 문건대로 KTX 판결은 사법부가 BH(청와대)와 사전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물밑에서 조율한 결과로만 이해가 가능한 판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기준인데도 이해하기 어려운 ‘예측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었고, 그 부담은 온전히 당사자인 노동자들과 잠재적 피해자인 국민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추가적인 진상 규명과 재판의 교정이 시급한 이유이다.

 

 

기자명 이용우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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