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머치 토커’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라고 밀릴 리 없다. 〈워싱턴포스트〉가 인용한 바에 따르면 그가 보기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아마도 지난 100년간 중국에 나타났던 지도자 중 가장 강력한 인물”이다. 그리고 ‘세계에서도 가장 힘센 권력자’이다. 경제력에서나 군사력에서나 중국이 미국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는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기꺼이 세계 1인자 자리를 시진핑 주석에게 양보한 셈이다.
종종 증명되듯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만만치 않은 통찰력이 있다. 시진핑 주석이야말로 지금 세상에서 가장 많은 권력을 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는 감투를 얼마나 많이 썼는지 ‘모든 것의 의장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18년간 러시아를 마음대로 주무르고도 이번에 다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한 블라디미르 푸틴조차 조금은 뒤처진 느낌이다. 푸틴은 2024년이 되면 합법적으로 다시 대통령에 출마할 수 없다. 아마도 이번에는 푸틴 대통령조차 시진핑 주석에게 한 수 접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진핑 주석 처지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신과 맨 먼저 정상회담을 한 것은 지금 국제무대에서 힘이 누구에게 있는지 만천하에 과시한 쾌거였다. 그는 처음 화해의 물꼬를 튼 문재인 대통령이나 북한의 오랜 숙적인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 앞서 국제정치 무대의 뜨거운 신상품인 김정은 위원장을 선점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 인민에게뿐만 아니라 점차 한반도와 아시아 전체, 그리고 전 세계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어쩌면 늙어죽을 때까지 중국을 다스릴지 모른다는 예상이 현실이 되자 미국과 유럽의 엘리트는 복잡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체적으로는 중국에 ‘속았다’라기보다는 스스로 오판했다고 책망하는 분위기이다. 소련이 해체된 뒤 마지막 남은 공산주의의 거인인 중국을 글로벌 경제체제에 끼워줄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미국과 유럽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비관론자들은 중국이 서방과의 협력으로 날개를 단다면 결국 아시아의 안정을 위협하고 말 것이라고 걱정했지만 낙관론이 대세였다.
낙관론자는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을 가진 차세대 자본주의의 호랑이가 될 것이며 그것이 중국에도 세계에도 이로우리라 믿는다. 안타깝게도 낙관론자의 각론은 거의 다 틀렸다. 그들은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두터워진 중산층이 민주주의와 평등, 인권 같은 서양의 가치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이나 유럽의 정치인이나 전문가들이 중국을 방문하면 중국인 청중 앞에서 (글로벌 경제체제에 편입된 덕분에) 중국인들이 이룩하게 된 눈부신 경제성장을 칭찬하고 앞으로 민주주의와 인권도 점차 향상될 것이라고 점치곤 했다. 그들은 아편전쟁 이후 걸핏하면 중국에 훈계를 늘어놓던 열강의 외교관들과 다름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낙관론자들은 자기들이 오만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은 ‘아시아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조지 워싱턴이나 링컨보다는 한국의 박정희나 싱가포르의 리콴유를 더 높이 평가하는 게 틀림없었다. 미국과 유럽은 법치주의가 중국에 이롭다는 걸 이해시키려고 애썼다. 하지만 중국에서 법은 결코 당보다 우위에 설 수 없었다. 지금 법치주의를 신봉하는 친서방 성향의 법률가 중 상당수가 감옥에 있으며 나머지는 침묵한다.
중국은 거꾸로 친중국 정치가와 학술단체에 자금을 제공하고 언론을 매수하거나 출판사를 괴롭히는 방법으로 그들만의 가치를 서구에 전파하는 중이다. 중국 정부는 해외에서 거주하는 중국 유학생들의 애국심을 고취해 ‘홍보대사’로 활용하는 데도 소홀함이 없다. 중국의 젊은 세대가 서양의 가치를 쉽게 받아들일 것이라던 예상 역시 틀렸다.
통신의 발달, 특히 인터넷이 중국 정치에 권위주의가 발을 못 붙이게 만들 것이라는 예상도 무참히 빗나가고 말았다. 중국 정부는 감시 경찰 수만명을 양성해 인터넷 통제라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야 말았다. 중국은 지금 국가가 마음만 독하게 먹으면 인터넷도 얼마든지 정밀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려주고 있는 셈이다. 중국식 인터넷 통제 모델은 전 세계 독재국가에서 인기가 높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재계만은 중국에 대한 불만을 자제하는 편이었다. 중국에 밉보여 퇴출된다면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재계의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특히 중국이 특정 국가에 대한 정치적 불만을 해당 국가의 사기업에 푸는 데는 질렸다는 반응이 대세이다. 중국 정부가 한국의 사드 배치를 빌미로 롯데에 보복을 가한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과 서구의 고위 관료, 외교관, 사업가들의 사적 모임인 ‘스톡홀름 차이나 포럼’에서도 최근 이 문제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참석자들은 이 모임에서 ‘희망 피로’를 호소했다고 알려졌다. 중국의 규제자들이 새벽에 들이닥쳐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지식재산과 글로벌 고객 명단이 들어 있는 컴퓨터를 가져갈 때면 중국 시장에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첨단 기술 기업은 지식재산에 대한 중국 정부나 기업의 노골적인 염탐과 도둑질에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한 상태이다. 미국과 유럽의 대기업조차 중국 정부를 위한 치어리더 대열에서 점차 이탈하고 있다.
때마침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알루미늄과 철강 등에 관세 폭탄을 안기면서 양측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진 상태이다. 냉전 시대로 다시 돌아간다고 하기에는 이르겠지만 미국과 유럽은 불가피하게 중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과정에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노선에 반대하는 자유무역론자들조차 로봇·생물의학· 전기자동차 등의 시장에서 챔피언이 되겠다는 중국 정부의 ‘메이드 인 차이나 2025’ 계획에 우려를 표한다.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 국가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는 국영기업의 경쟁 아닌 경쟁,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 제한 등 자유무역 정신에 역행하는 반칙 행위가 지금보다도 훨씬 노골화되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작은 정치적 자유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시진핑 주석
유감스럽게도 비관론자들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중국 정부는 군대의 ‘근육’을 무시무시하게 키우고 있으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웃들에게 힘을 과시하곤 한다. 중국이 2000년 러시아에서 전함 몇 척을 사올 때만 해도 미국 해군 7함대는 중국 해군을 깔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중국군은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전력을 갖췄다. 지난해 아프리카 동부 지부티에 최초로 해외 기지를 열었다. 지난해 7월에는 유럽 관문인 발트해에서 러시아군과 합동 군사훈련도 실시했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군사용 활주로를 갖춘 인공섬도 만들었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다른 국가들에게 배타적 경제수역(370㎞) 안에서 허락 없이 군사훈련을 못하게 하는 협정을 맺자고 요구한다. 다분히 미국을 의식한 무력시위다.
중국은 여전히 지금까지 (나라로 취급하지 않는 타이완을 제외하고는) 남의 나라를 침략한 적도, 앞으로 침략할 생각도 없다고 말한다. 최근 강화된 모든 군사 행위는 해적을 막고 인권 유린을 예방하기 위한 조처라고 말하지만 비관론자들 눈에는 ‘함포 외교의 재림’으로 비칠 것이다.
그렇다. 이 모든 소동의 진앙에 바로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이 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는 아주 다른 유형이다. 국제사회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일은 없다. 해외 순방 때마다 평화와 친선의 사도, 이성의 목소리임을 자처한다. 2017년 1월 다보스 포럼에서 그는 세계화와 자유무역, 그리고 기후변화 협정을 지켜내는 챔피언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겉보기에 시진핑 국가주석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보다 훨씬 멀쩡하다.
하지만 국내에서 그의 얼굴은 다르다. 작은 정치적 자유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자세이다. 그는 잠시라도 방심하면 나라가 소련 같은 꼴을 당하리라고 믿는 사람처럼 보인다. 시진핑 주석은 경제 관료로서 입지를 다졌지만 정작 정치에 더 관심이 많다. 이번 헌법 개정을 통해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의 반열에 스스로를 올려놓았는데 덩샤오핑보다는 마오쩌둥에 가까운 인물처럼 보인다. 그는 휴대전화로 무장한 중산층과 시민단체를 신용하지 않는다. 경제 역시 당이 단단하게 장악하고 있어야만 안정되고 발전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일부 낙관론자들은 세계가 아직 시진핑 주석의 진면목을 다 본 것은 아니라며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자신의 체제를 공고히 하고 나면 그가 국내에 폭넓은 자유를 허용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그들은 묻는다. 하지만 그런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적임자는 비관론자일 것이다. 1인 지배체제를 확립한 지도자치고 언론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한 예가 있었던가. 그의 집권 기간이 10년, 15년으로 늘어날수록 중국은 점점 더 숨 막히는 곳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그는 고작 5년 만에, 덩샤오핑이 마오쩌둥 시대로 돌아가는 걸 경계해 만들어놓은 모든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말았다. 권력을 스스로에게 집중해 14억 인구의 국가를 위기에 매우 취약하게 만들었다. 중국에도, 세계에도 위험한 일이다. 우리로서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도, 경제적 이득을 위해서도 시진핑 체제를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제554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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