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다. 교사인 내게 4월은 등교할 때 쌀쌀했던 바람이 부드러워지고, 새 학기 긴장감에서 조금 해방된 학생들이 서로 반가워하는 그런 달이었다. 하지만 2014년 이후, 4월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고 슬픈 달이다. ‘수학여행’이라는 학창 시절의 추억이 가장 끔찍한 참사로 돌변하고, 같은 상황에 처했을지 모를 동료 교사들과 학생들의 공포와 희생, 무엇보다도 ‘나도 그 속에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가슴을 후벼 파는 시기이다.

2014년부터 세월호는 학교에서 ‘금기’였다. 터져 나오는 눈물까지 막을 순 없었기에 애도는 금지되지 않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허용됐을 뿐 집단적인 애도는 철저히 금지당했다. 학생들이 친구의 죽음을 기리려 노란 리본을 나눠주면 학교 측은 “애들이 뭘 아느냐, 이런 거 하지 말라”고 묵살했다. “왜 아무도 구조하지 않은 건가요? 그 시간에 대통령은 무엇을 한 건가요?”라는 상식적인 질문은 침묵 속에 메아리쳤다.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을 위한 서명을 받다가 관리자에게 서명지를 빼앗긴 학생도 있었다.

ⓒ김보경 그림

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참사 직후 교사들이 청와대 게시판에 “대통령은 자신의 책무 불이행을 뼈저리게 고백하고 이제라도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글을 올리자 ‘정치적 중립성 위반’이라는 혐의가 씌워졌다. 이러한 행위를 진압하는 데 정치권력이 동원되었다. 글을 올린 교사들에 대한 교육부의 고발과 검찰의 압수수색이 이어졌다. 권력의 침묵과 은폐에 동조하라는 ‘정치적 요구’가 ‘정치적 중립’으로 둔갑한 것이다. 대통령 퇴진과 세월호가 무슨 상관이냐고 했지만, 대통령이 탄핵되고 10여 일 뒤 바다 속에 있던 세월호가 인양되었다.

미국 플로리다 주 파크랜드 시 마조리 스톤먼 더글러스 고등학교에서 총기 사고로 친구를 잃은 학생들이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며 미국을 뒤흔들고 있다. 이들은 누구에게나 닥쳐올 수 있는 위험을 자신들이 끝장내야 한다며 나섰다. 침묵 시위, 휴업, 그리고 대규모 거리 집회 등을 이어갔다.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을 의회에서 몰아내는 것이 자신들의 안전과 존엄을 지키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교실의 정치화’를 걱정하는 그들

‘교실의 정치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교실은 ‘정치는 학교 밖의 정치인들에게 맡겨두고 학생과 교사는 진학 준비에 집중하는 학교’다. 하지만 현재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는 게 바로 정치이다. 한 학생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평소에는 요즘 애들 정말 말 안 듣는다면서 무서운 10대라고 하더니, 권리를 요구하면 판단력이 부족해서 어른들한테 휘둘린다고 하더라고요.” 세월호 참사를 목격한 학생들은 나 아닌 누구에게 판단을 맡기면 무고한 희생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견제받지 않은 정치권력이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지 않고, 권력에 의탁하는 것만으로 내 안전과 존엄을 지킬 수 없다는 것도 목격했다.

4년 전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며 부패한 권력을 비호하던 바로 그 세력이 다시 ‘교실의 정치화’를 걱정하고 있다. 아마도 그들은 교실의 정치화로 인한 자기 앞날을 걱정하는 건 아닐까?

기자명 조영선 (서울 영등포여고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