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도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우주에 대해 생각하던 날이 있었다. 2008년 4월8일 한국인 최초 우주인 이소연 박사가 탑승한 소유즈 TMA-12호가 우주로 발사되던 날이었다. “5, 4, 3, 2, 1, 발사!” 서울시청 앞 광장에 시민 5000여 명이 모여 함께 카운트다운을 외쳤다. 생중계 화면에 뜬 ‘발사 성공’ 네 글자를 보고 시민들은 함성을 질렀다. 이틀 뒤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도착한 이 박사가 방송을 통해 전한 목소리는 1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우주입니다.”
이후 10년 동안 ‘한국 최초 우주인’ 타이틀은 이 박사에게 영광이자 굴레였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에 재직하며 우주과학 기술 강연·홍보 활동을 이어가던 이 박사는 2012년 8월 미국으로 건너가 UC 버클리 경영전문석사(MBA) 과정을 밟았다. 현재 미국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실리콘밸리의 인공위성 스타트업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맡고 있다. 이 박사는 기대와 환호만큼이나 많은 인신공격과 비난을 받았다. 선발 당시 많은 사람들은 ‘한낱 여자 한 명에게 수백억원의 예산을 쓴다’라며 혀를 찼고, 이 박사가 미국으로 건너가 재미동포 출신과 결혼한 이후에는 ‘나라를 배신하고 외국에서 시집이나 갔다’라며 손가락질했다. 최근 ‘우주인 이소연, 국적 포기’라는 허위 보도가 나, 언론중재위원회 제소로 대응하기도 했다.
‘먹튀 논란’ ‘260억원짜리 우주 관광’ 같은 자극적인 기사들에 가려 미처 다 전해지지 못한 우주 이야기를 이소연 박사는 〈시사IN〉을 통해 알리고 싶어 했다. 인터뷰는 4월2일과 4월4일 두 차례 진행됐다. 지구인들이 로켓이 발사되고 우주 물체가 추락하고 달이 해를 가리는 등의 이벤트가 있을 때만 실감하는 ‘우주’를, 또 그 우주를 다녀온 ‘한국 최초 우주인’이라는 자신의 타이틀을, 이 박사는 10년 내내 고민하고 탐구해 나가고 있었다.
10년 전 우주를 다시 떠올리면?우주에 가서 지구를 내려다보니 나라는 사람 하나가 몹시 하찮은 존재 같기도 하고, 그런 내가 여기 우주까지 나와서 지구를 내려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데 굉장히 감사하기도 했다.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90분이 걸린다. 그중 미국, 러시아는 거의 10분이 걸리는 데 비해 한국을 지나는 건 채 몇 분이 안 걸렸다. 상대적인 사이즈가 확 느껴졌다. 그런데 그 작은 한국에 대해 실망감이 아니라 오히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작은 나라에서 태어난 내가 어떻게 여기 우주까지 왔을까, 또 저 작은 나라가 갖고 있는 역량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생중계 화면을 보면 매우 즐겁고 밝은 표정인데 실제 그 안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사실 힘들었다. 매일 멀미하고 머리 아프고 허리 아프고 어지러웠다. 하지만 모든 우주인의 가장 큰 의무감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아이들이다. 우주에서 날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가장 관심 있게 볼 사람들은 아이들이다. 미국 나사(NASA)에서 엄청난 일을 한 과학자 대부분이, 어릴 때 봤던 닐 암스트롱이 달에 내릴 때의 흥분을 잊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나를 보고 그 기억을 붙잡고 공부하고 과학기술을 이끌어나갈 미래 세대가 나한테는 가장 큰 관심사이고, 의무와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다.당시 우주에서 한 18가지 실험은 이후 어떻게 활용됐나?이후 2~3년 정도 실험을 주관하고 설계한 분들이 결과 분석도 하고 후속 연구 계획도 세운 걸로 안다. 언론 노출이 안 되었을 뿐이지 관심을 가지고 지속하는 분들이 분명 있었다. 내 비행 이후 한국마이크로중력학회라는 연구단체도 생겼다. 사실 연구자들은 무중력이라는 말을 잘 안 쓴다. 우주정거장도 마이크로 그래비티(micro gravity·미소 중력) 상태이다. 0.000000001이라도 중력이 있으면 무중력이 아니다. 그런 곳에서 수행한 18가지 실험이 마이크로 중력 연구였기 때문에 그때부터 발족하고 관련 연구가 이어진 것이다.후속 연구 예산을 따러 다닐 때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했다.행정적으로 3년짜리 단기 사업으로서, 실험 의뢰를 받은 우주인이 우주에 가서 실험을 대행하고 데이터를 가져오면 끝인 계획이었다. 실험을 의뢰한 다른 기관 처지에서는 후속으로 분석하고 계획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기반이 없는 경우에 항우연에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이씨는 지난 3월 〈에피〉 인터뷰에서 “귀환해서 우주인 사업이 3년짜리 단기 사업이고 후속 계획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무척 허탈했다. 심지어 우주정거장에서 갖고 온 실험 결과를 분석하는 예산을 어떻게든 확보하기 위해, 또 우주과학 팀이 뭐라도 할 수 있게끔 예산을 따러 돌아다닐 때는 정말 우울했다”라고 말했다). 항우연은 ‘우리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하고, 그 가운데 낀 입장에서 되게 미안했다. 항우연도 나름대로 당시 처한 상황에서 최대한 도와주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상황이 힘든 것에 대한 철없는 저의 볼멘소리였다.
한국의 많은 변혁과 안타까운 일을 지켜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에 한없는 미안함도 느꼈다. 2016년 광화문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촛불을 들 때는 나도 같이 걷고 숨 쉬고 함께 울고 함께하고 싶었다. 친구들 페이스북으로 라이브를 보다가 한번은 기발한 깃발 만드는 게 유행이기에 나도 깃발을 하나 디자인했다. 우주인연합회 시애틀지부 깃발(웃음). 친구들한테 ‘야, 이거 좀 들고 나가줘’라고 했다. 아는 선배가 정말 들고 나가줬다.
과학기술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대한민국의 희망이 보인다는 생각을 했나?
그렇다. 할 수밖에 없다. 어떤 분은 ‘이번 정부는 인권에는 관심이 많은데 과학기술에는 관심 없는 것 같다’라고 하던데, 일단 사람이 좀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나. 나도 과학과 우주에 정부와 국민의 관심이 많아졌으면 좋겠지만 일단은 바다 속으로 사라진 아이들과 그 부모들 마음부터 위로하는 게 로켓 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남북한 대립 상황에서 전쟁이 날까 불안한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야 로켓도 만들고 위성도 쏠 것 아니냐. 내게는 이게 최고이지만 우리 모두에게 과연 이게 가장 중요한 문제일까. 가끔 우리 각자가 너무 이기적일 때가 있는 것 같다. 이런 생각도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볼 때부터 시작됐다. 내가 저기로부터 왔는데, 내가 온 지구가 남이 된 순간. 유체이탈 같은 기분.
10년 전 우주에서 한 “언젠가 대한민국도 우주 강국이 되어서 각자 맡은 일을 우주에서도 수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우주에 나와 있는 나나, 지구에 있는 당신이나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라는 뜻으로 들렸다.맞다. ‘내가 우주에 있으면 당신이 온 것과 같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지구에 귀환한 뒤, 시청 앞 광장에 모여 내가 우주로 날아가던 순간을 마음 졸이며 지켜보던 사람들을 보고 ‘내가 뭐라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소연이 아니라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이 우주를 간 것이었다. 내가 국민을 대표해 우주에 간 것이고 그래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보답하기 위해 지금 열심히 갈고 닦고 있다. 그날이 올 때까지 조금 기다려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이소연 박사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 4년 동안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으로서 500회를 넘는 강연, 전시, 대중매체 홍보 활동을 했다. 그때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건 주로 우주인이 배출되기까지의 ‘성공’ 스토리였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뒤 이 박사는 우리에게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대한민국 우주 개발 및 과학기술의 ‘성장’ 스토리를 들려주고 있다. 그녀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같이 만들어가야 할 이 이야기의 결말은 아직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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