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6일 오후 9시30분 서울 상암동 JTBC 지하 스튜디오. 90분간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JTBC 〈뉴스룸〉이 끝나고 기자·앵커·아나운서·PD 등 제작진 3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이 모두가 꺼리는 앞자리를 손수 지정해주었다. 역대 〈시사IN〉 신뢰도 조사마다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으로 꼽혔던 손석희 사장은 이번에도 40.5%로 또다시 작년 기록(36.8%)을 갈아치웠다. ‘가장 신뢰하는 프로그램’ ‘가장 신뢰하는 언론 매체’ ‘가장 신뢰하는 방송 매체’ 역시 JTBC였다. 4관왕 소식을 전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으로 꼽혔다. 이제 덤덤할 것 같은데?

덤덤하진 않다. 성적표를 받아드는 느낌이다. 지난 1년 동안 나름 전력투구했는데 그에 대해 성적을 매겨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성적표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긴 하다. 그냥 나나 다른 언론 종사자들이나 각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니까. 그래도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인지 1등을 했다고 하면 기분 좋다.

자신의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기본적으로 영향력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판단하는 부분이 더 크다. 내가 하는 역할은 그런 판단에 도움이 되거나 참고가 되는 것이다.

〈손석희 저널리즘〉 〈손석희 현상〉 같은 책이 출간되었다. 위인전 형태의 학습만화도 있던데.

강준만 교수가 서문에 쓴 걸 보니 책(〈손석희 현상〉) 내는 걸 내게 무척 미안해하시더라. 나에 대한 책이 나오는 걸 내가 부담스러워하고 무안해한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정철운 기자는 〈손석희 저널리즘〉을 내기 직전 내게 귀띔을 해주어서 그때 출간 사실을 알았다. 학습만화책은 좀 과장된 면도 있어서 더 무안했다. 강 교수나 정 기자 책을 보면서 기록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다시 깨달았다. 과거 내가 한 말이나 일들이 고스란히 어딘가에 모두 남아 있으니까. 뭐랄까, 자세를 다시 가다듬는 계기가 됐다.

오랜 세월 대중과 직접 대면해왔다. 롱런의 비결은 뭔가?

내 일을 좋아한다. 앞으로도 하는 동안은 그럴 것이다.

ⓒJTBC 뉴스룸 갈무리심수미 JTBC 기자가 최순실씨 태블릿 PC 관련 뉴스를 전하고 있다.

JTBC 〈뉴스룸〉도 가장 신뢰하는 프로그램으로 꼽혔다. 가장 신뢰하는 언론 매체·방송 매체도 JTBC다.

그 전부터 우리는 취재와 보도의 장벽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왔다. 완벽하진 못했어도 그런 노력을 시청자들이 알아주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작년 가을에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로 탄핵 국면을 연 이후 시청자들의 기대감도 더 커졌을 것이다. 크고 작은 실수도 많이 했다. 그 때문에 몇 번씩 사과도 해야 했다. 기본적으로 언론이 힘들었던 시기에 그래도 제 목소리를 내려 했다는 걸 알아준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다. JTBC 〈뉴스룸〉뿐 아니라 다른 보도 프로그램이나 채널 전체에 대한 신뢰도에 성과가 있는 건 고무적이다. 보도가 채널 이미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더 잘해야겠다.

시청자들이 공영방송 대신 종편인 JTBC를 선택하고 있다는 게 명확해졌다. JTBC의 역량 때문인가, 방송 환경의 변화 덕인가?

두 가지가 모두 해당된다고 본다. 초기에 예능에 주력했던 것이 보도에도 힘을 실으면서 전체적인 역량이 커졌다. 또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내내 공영방송이 제구실을 못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는데 그것도 요인이 됐다고들 분석하더라.

JTBC의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는 대통령 탄핵의 결정적 국면을 만들었다. 봉준호 감독이 지난 6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지난해 10월24일 저녁 7시59분의 심경을 역으로 묻기도 했는데, 이 정도의 파장을 예상했나?

파장은 당연히 커질 것으로 봤지만 결과를 예측하긴 힘들었다. 조금 있으면 벌써 1년인데 그동안 너무나 격동의 시간이었다. 봉 감독의 질문에도 답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마음을 비웠다. 최순실 태블릿 PC를 우리가 발견하게 된 것도, 그냥 갑자기 그런 기회가 우연히 온 게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의 보도를 접하고 우리를 믿었던 건물 관리인의 도움이 있었다. 우리가 해온 것의 연장선상에서 모든 일이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미리 걱정하고, 계산할 일이 아니었다. 팩트가 나오면 확인하고 또 확인한 다음 그대로 전부 보도했다. 매순간 전력투구하듯이 그렇게 했고, 그러는 사이에 촛불은 커졌고,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이 택했던 전술은 전부 무너졌다.

‘태블릿 PC 조작설’도 있었다.

조작설은 지금도 친박 세력들의 주된 메뉴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태블릿 PC가 얼마나 중요한 증거인지를 말해준다. 검찰은 그 태블릿 PC 내용 중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만 최대한 보수적으로 판단해 법원에 증거로 넘겼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가 다가오니까 또 조작설이 준동하지만, 태블릿 PC는 입수 경위부터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까지 조작이나 왜곡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조작설이 한창 나올 때 두 번에 걸쳐 자세히 방송에서 말한 바 있다. 필요하면 또 해야 한다. 그런데 친박 세력들이 저렇게 나오는 건 아까도 말했지만 태블릿 PC 조작설을 내세우지 않으면 탄핵 무효를 외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뭐라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다.

JTBC 〈뉴스룸〉 3주년이다. 취임 당시 세운 보도 원칙이나 철학 중 고수하고 있는 것과, 달라진 게 있다면 무엇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선택과 집중이란 전략은 같다. 낮에 뉴스를 다 소비한 시청자들이 똑같은 뉴스를 반복해서 볼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한 걸음 더 들어간 뉴스’가 필요하다고 봤다. 각양각색의 플랫폼에서 뉴스가 넘쳐나고, 1인 미디어까지 가세해 전통적인 ‘어젠다 세팅’ 기능이 상당 부분 무력화됐다. 하루 이틀만 지나면 뉴스 가치가 떨어진다. 그래서 도입한 게 ‘어젠다 키핑’이다. 이 이슈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이라면 끝까지 가보자. 그게 비록 시청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도 우리가 놓지 않으면 시청자들도 알아줄 것이라고 판단했다. 세월호 참사, 4대강, 국정원 해킹 의혹 등을 몇 달씩이나 보도했다. 달라진 것은 기자들의 취재력이라고 생각한다. 한두 번 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끝까지 가다 보니 매일 새로운 팩트를 찾아내야 했다.

취임 초반 ‘손석희 체제의 JTBC’에서 유일한 걸림돌은 ‘삼성 비판’이라는 시각이 있었다. 항간의 우려에 대해 지난 3년을 자평해보자면?

우선 그것이 왜 JTBC만의 걸림돌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삼성 문제에 관한 한 모든 언론사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비슷한 상황 아닌가? 우리에게 삼성이 걸림돌인 것 같은가? 나는 부임 때부터 그렇게 생각한 적 없다. 팩트가 나오면 보도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그래서 처음에 삼성의 노조 관련 문건을 단독 보도했더니 ‘삼성이 JTBC 장사를 위해 거기까지는 봐줬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냥 웃었다. 뭘 해도 그런 음모론은 돌아다니니까. 그 이후 3년 동안 보도 내용은 따로 거론하지 않겠다.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우리가 어떻게 했는지를 상기해보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보면 된다. 물론 우리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건 우리는 취재된 팩트는 그대로 다 보도했다.

지난 1년, JTBC 〈뉴스룸〉은 시청률 면에서도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처음엔 지루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간 ‘팩트체크’ 등 간판 코너들의 성과에 대해 말해달라.

솔직히 요즘도 가끔 고민하긴 한다. 이른바 백화점식 보도로, 그것도 사뭇 흥미진진한 사건·사고 소식으로 뉴스 대부분을 채우면 적어도 시청률은 담보되니까. 하지만 그때마다 초심을 다잡는다. ‘그렇게 했다간 JTBC 뉴스는 죽는다’고. ‘팩트체크’ 등이 간판 코너라고 표현해주었는데 그건 잘 살아남았다는 증거다. 사실 ‘팩트체크’는 〈뉴스룸〉이 효시였고, 그 이후로 다른 언론사에서도 가져갔다. ‘밀착 카메라’나 ‘비하인드 뉴스’도 힘들지만 데일리(매일)로 밀어붙여서 아이덴티티가 살아났고, 지금은 제 몫을 잘하고 있다. ‘앵커 브리핑’은 우리만의 특별한 코너다. 물론 다른 채널에서도 가져갔지만, 형식이나 내용이 우리와는 좀 다른 것 같다. ‘소셜 라이브’는 레거시 미디어(전통적인 미디어)에서 디지털로 연결되는 독특한 콘텐츠인데 레거시와 디지털이 따로 노는 게 아니라 서로 한 몸으로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셈이다.

ⓒ시사IN 이명익JTBC 〈뉴스룸〉의 대표 코너가 된 ‘팩트체크’ 방송 모습.


‘손석희 없는 JTBC’에서도 지금과 같은 성적표가 가능할까?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가능하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나는 방향을 제시했고 후배들은 거기에 동의해서 뛰었다. 방향이 옳다고 믿는 한 그 방향으로 갈 테니 그건 내가 있고 없고와 무관하다.

국정원이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집요하게 사찰했다는 사실이 최근에 밝혀졌다.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당시 MBC 상층부 사람들이 내게 했던 얘기들이 국정원 문서에 나와 있는 문장과 거의 비슷했다는 점이다. 어떤 건 토씨 하나 안 틀렸다. 그게 신기하기도 했고, 좀 슬프기도 했다.

ⓒ시사IN 윤무영2010년 10월9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10주년 기념 방송 장면.


국정원에서 왜 당시 프로그램에 좌편향이라는 낙인을 찍었을까. 하차할 때의 정황과 심경이 궁금하다.

왜 좌편향으로 찍혔느냐 하는 건 모두가 다 추정할 수 있는 사실이다. 동시에 인정할 수 없는 사유이기도 하다. 그만두기 전에 한동안 이어져왔던 일들에 대해선 당시 PD들이 모두 언론에 얘기했다. 내가 나서서 또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만둘 때도 이런저런 얘기는 하지 않았고, 그냥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말만 하고 나왔다. 핑계를 대고 싶지도 않았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말하면 후배들이 힘들 것 같아서였다. 이제는 그들 자신이 말하고 있으니 그걸로 됐다.

팟캐스트의 영향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전통적인 미디어를 대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글쎄, 많이 들어보질 않아서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건 이낙연 국무총리가 공영방송을 안 봤다는 것하고는 의미가 다른 얘기다. 나도 화제가 되는 팟캐스트는 듣는 편인데, 무엇인가 평가할 만큼 많이 듣는 건 아니란 얘기다.

최근 한 자리에서 JTBC 뉴스의 디지털 전략에 대해 ‘다양한 채널 이용자들에게 JTBC 뉴스만의 정체성을 잘 찾아가는 것, 디지털을 통해 더 JTBC다운,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소셜 라이브’에 대한 얘기였다. 〈뉴스룸〉이 끝나면 페이스북과 유튜브로 방송되는데 취재의 뒷얘기와 미처 보도로 다 내지 못한 얘기들을 한다. 본의 아니게 나와 기자들의 대거리 등 우리 직장 문화까지 다 담기게 됐다. 디지털 콘텐츠라고 해서 특별히 독립적으로 무엇을 만들기보다 원래의 플랫폼에서 다룬 콘텐츠의 확장판이나, 다른 각도에서 본래 버전을 ‘모바일 온리(Mobile Only)’ 콘텐츠로 만든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기존 플랫폼과 디지털이 유기적으로 결합된다. 심지어 ‘모바일 온리’로 만든 콘텐츠가 기존 플랫폼으로 역주행하는 경우도 생긴다. 다만 우리는 기존 플랫폼에서 다루지 못한 아이템을 디지털에서만 다루는 경우는 없다. 즉, 뉴스에선 말 못하고 디지털에서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지는 않는다.

저널리즘의 미래와 관련해 요즘 가장 깊은 고민은 무엇인가?

나는 우리나라 컬러텔레비전 방송 초기에 입사했다. 그리고 JTBC로 옮기기 전까지 13년 동안 가장 올드한 미디어에 속하는 라디오에서 일했다. 내가 고민하는 것은 늘 뉴미디어가 생겨나는 상황에서 저널리즘의 의미가 바뀌어가는데 나는 그걸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어찌 보면 JTBC 뉴스를 가장 먼저 디지털 쪽으로 드라이브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 재차 생각한 것은 전통적 저널리즘, 그러니까 본래적 의미의 저널리즘은 바꿀 수 없고 바뀌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디지털이든 뉴미디어든 그건 단지 도구(tool)이고 장치(device)일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 영화 〈카사블랑카〉에 나오는 ‘As time goes by’란 노래가 있는데 그 가사 가운데 이 구절을 좋아한다. ‘시간이 흘러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The fundamental things apply as time goes by).’

KBS와 MBC 노조가 파업 중이다. 특히 MBC는 오랫동안 몸담은 곳이기도 하고, 스스로도 공영방송의 기치를 걸고 싸운 경험이 있어서 생각이 복잡할 것 같다.

물론 감회가 있다. 지금 파업 중인 조합원들이 대부분 같이 일했던 후배들이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지만, 그들도 파업이 벌어질 때마다 늘 같은 얼굴인데 나이만 들어가면서 파업 현장에 나타난다. 내가 과거에 ‘공영방송의 사나운 팔자’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는데 그 얼굴들을 보면서 또 그 생각을 한다. 빨리 마무리되길 바라고, ‘공영방송의 사나운 팔자’도 이참에 마무리됐으면 한다.

방송에서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하는 것 같다. 주요 현안에서 민주주의의 위기 혹은 후퇴를 읽어내는 것 같은데.

그건 나뿐 아니라 시민 모두가 체감하고 입에 올렸던 말 같다. 지난 몇 년 동안 모두가 느꼈던 위기이니까. 원래 국가권력이란 시민들이 만들어주었다. 우리가 세금 내서 유지해줄 테니 시민사회를 지키고 보호해달라고. 국가권력이 비대해지면 그게 거꾸로 간다는 건 역사가 다 말해주고 있다. 언론은 시민사회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걸 할 수 없게 된다는 게 바로 민주주의의 후퇴이고 언론 종사자 처지에선 직업인으로서도 견디기가 어려운 상태다. 거창하게 말할 필요도 없이 말이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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