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미국에서 문화사회학을 공부하고 2005년 대구 계명대학교 사회학과에 부임한 최종렬 교수(52)는 처음 학생 MT를 따라갔다가 문화 충격을 받았다. 사회과학 세미나를 펼치고 공적 이슈를 논하는 자리까지 기대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군복과 ‘깔깔이(군용 방한 내피)’, 여학생을 안고 한 발로 오래 서 있기 게임, “부어라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쭉 쭉쭉” 노래가 뒤섞인 대학생의 MT 풍경에 최 교수는 적잖이 당혹했다.

10여 년간 지켜본 제자들은 성별로 일정한 패턴을 보였다. 1학년 남학생은 대개 술 마시고 당구 치고 피시방에서 시간을 ‘죽인다’. 어차피 곧 군대에 가기 때문이다. 제대 후 깔깔이를 입고 후배 여학생들과 어울리며 쉬운 과목을 골라 듣다 보면 어느새 4학년. 불안해진 남학생은 스펙을 쌓기 위해 휴학계를 낸다. 많은 여학생들은 신입생 때 만난 복학생 오빠와의 연애로 대학 생활을 시작한다. 연애가 끝나고 학교생활이 시시해질 3학년쯤 되면 우르르 휴학을 한다. 돌아온 제자들에게 그간 뭐했냐고 물으면 헌혈, 서빙 알바, 해외여행, 자격증 공부 등이라고 답한다. 앞으로 뭘 할 거냐는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라는 답이 돌아온다.

ⓒ시사IN 이명익계명대 사회학과 최종렬 교수는 문화사회학의 관점으로 지방 청년을 연구했다. 그는 “기존 청년 담론은 지방대 학생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안타까웠다. 그 도돌이표를 끊어주고 싶었다. 방법을 궁리하던 중 제자의 권유로 웹툰 〈복학왕〉을 뒤늦게 보았다.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그간 목격했던 제자들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이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생각했다. 문화사회학의 관점으로 지방 청년을 연구하기 시작한 계기이다. 지난 2월 학술지 〈한국사회학〉에 발표한 논문 〈‘복학왕’의 사회학:지방대생의 이야기에 대한 서사분석〉이 그 연구의 결과물이다. 특정 지역, 특정 학교에 국한된 현상을 전체 지방대 학생에게 적용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위험은 분명 존재하지만, 지방 청년을 바라보는 새로운 분석의 틀을 끄집어냈다는 점은 분명하다. 6월13일 계명대 성서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난 최 교수는 “기존의 청년 담론이 지방대 학생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최 교수가 논문에서 지방 청년을 분석할 때 사용한 기존 청년 담론은 사회학자 김홍중(서울대 교수)의 ‘진정성 세대’ ‘동물·속물론’ ‘생존주의 세대’, 이 세 가지 틀이다. 여기서 진정성 세대란 “내면으로부터 솟아나오는 목소리인 참된 자아와의 대화에 의거하여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태도”를 지닌 세대다. “1980년 광주항쟁 이후부터 민주화운동을 거쳐서 1997년 위기에 이르는 약 20년간 지속적인 헤게모니를 발휘”했다. 동물·속물 세대는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내면성을 상실하고 타자의 잣대를 따라 살아가는” 세대이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심화되자 청년 세대는 “생존을 위해 전력투구”한다. 이른바 ‘생존주의 세대’이다. 자기계발을 기만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되게 한다는 점에서 동물·속물과 다르다. 생존주의 세대의 마음은 성공이냐 실패냐가 아니라, 생존이냐 낙오냐다.

착하고 관계 중심적인 지방대 학생들

그럼 2017년 대한민국의 지방대 학생은? 진정성 세대는 아니다. 동물·속물론으로 바라보기에는 최 교수 눈에 이들은 너무도 ‘착하다’. 가족과 친구에게 충실하고 매우 관계 중심적이다. 그렇다면 낙오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생존주의자인가? 최 교수는 이런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해 지방대 학생 6명을 만나 질문을 던졌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좋은 삶을 추구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좋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행하고 있는가?”

웹툰 〈복학왕〉의 한 장면. 〈복학왕〉은 기안대학교라는 가상의 대학 풍경을 그렸다.

좋은 삶과 그것을 위한 방법을 묻는 질문에 지방대 학생들은 모두 ‘가치의 언어’가 아닌 ‘선호의 언어’와 ‘가족의 언어’로 답했다. “제 꿈은 그냥 평범한 직장 다니면서 예쁜 아내 얻고 아들딸 예쁘게 크는 걸 보면서 오래 사는 것입니다(남학생 1).” “돈이 어느 정도는 있고 재산을 유지하고…(남학생 2).” “저녁이 있는 삶, 가족과 친구와 함께 놀 수 있는 삶이요(여학생 2).” 


경제적 여유와 행복한 가정을 ‘선호’하는 이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공을 위해 독하게 자기계발에 나서지 않는다. 연구 대상자 6명 중 대다수가 행복한 삶을 위해 ‘공무원 같은 것’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하지만 막상 경쟁에 뛰어들지는 않는다. “제가 학교 수업도 잘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 다 해도 많이 안 되는데… 공부 싫어하는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남학생 2).” “준비하는 과정이… 경쟁이 심하잖아요. 제가 할 자신이 없는 것 같아요. 영어도 해야 되고 역사도 해야 되고 그럴 자신이 없는 것 같아요(여학생 1).” 이 같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식의 결론은 “괜히 혼자 중뿔나게 굴지 마라”는 가족 혹은 유사 가족(학교 동기, 선후배)의 조언으로 말미암은 것이기도 하다.

최 교수는 현재 청년들을 신자유주의적 주체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는 논문에서 말한다. “생존주의자에게 생존은 ‘경쟁에서 낙오되지 말자’는 것인 데 비해, 지방대 학생에게 생존은 ‘가족 안에 머물자’이다. 생존주의자는 낙오되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하지만, 지방대 학생에게 생존은 오히려 경쟁에 뛰어들지 않고 지금처럼 가족 안에 살면 되는 것이다.”

이런 결론과 더불어 최 교수는 연구를 진행하며 지방대 학생에게서 두 가지 모습을 더 발견하고 거기에 이름을 붙였다. 이들은 도전해도 안 될 것 같다며 포기하지만 그런 자기 자신이 겸연쩍기는 하다. 이른바 ‘성찰적 겸연쩍음’이다. 또 그가 보기에 지방대 학생은 “앎에 대한 의지가 아니라 알지 않으려는 의지, 자기계발 의지가 아니라 자기보존 의지”가 강하다. ‘습속’이다.

‘성찰적 겸연쩍음’에 대해 최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지방대 학생은 공부를 통해 인정받아본 경험이 거의 없다. 특히 지방대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이들을 위축시킨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해도 되지 않은 쓰라린 경험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권리 인정 형식을 통해 자기존중의 길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해도 안 되는 걸 시도하는 것은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희망 고문하는 뻔뻔한 일이다. 다시 말해 진정성이 없고 위선된 것이다. 그렇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는 자신이 겸연쩍기는 하다.”

대신 지방대 학생들은 수업에 삼선 슬리퍼를 신고 오거나 MT 때 깔깔이를 걸치는 식으로 ‘상황을 느슨하게 만들기’ 전략을 택한다. 이른바 ‘습속’이다. 최 교수 말에 따르면 그런 습속은 “상황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상황 자체를 깰 수는 없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저항책”이다. “무엇에도 몰두하지 않고 느슨하게 유지하니 목표치도 적당하게 세우고, 성취도 적당하게 하고, 실패해도 타격을 안 받는다.”

연구 대상자들은 아직 본격 취업전선에 뛰어들기 전의 대학 3~4학년생들이다. 조만간 ‘성찰적 겸연쩍음’과 ‘습속’을 버리고 이들도 곧 생존경쟁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연구 대상자들의 에필로그가 궁금하다는 질문에 최 교수는 답했다. “서울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청년과 지방에 남은 청년이 극명하게 갈린다. 서울로 가면 엄청난 경쟁 세계에서 생존주의 청년이 된다. 정말 열심히 일하는데 이직이 매우 잦다. 지방에 남은 청년들은 졸업 후 몇 년 지나 연락해보면 신기하게도 그럭저럭 다 결혼도 하고 애도 키우고, 저 월급으로 가능할까 싶은데 잘들 살고 있다. 그런 선배들의 모습이 보이니 후배들도 굳이 자신을 경쟁으로 내몰지 않는다.”

그들이 갇힌 세계를 깨고 나오려면?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청년들이 지방에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는 건 분명 기존 생존주의 청년 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이 발생한다. 경쟁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있다면 거기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최 교수는 단호하게 ‘문제 있다’고 말한다. “자아는 누구와 대화하느냐에 따라 만들어진다. 대부분의 지방 청년은 대화하는 사람이 가족 아니면 유사가족이다. 젊을 때는 괜찮은데 30대, 40대 점점 나이 들수록 그 세계 안에서만 자기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 밖에서 그런다. ‘저 지역은 왜 저 모양일까’ ‘어휴, 아직도 저렇게 생각하고 있네.’ 지금 당장 행복할 수는 있지만 그 이유는 만나는 타자가 너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방 청년들이 앞으로 계속 자기 세계에 갇혀 새로운 타자를 못 만나고 자기 자신을 대상화할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될까 봐 안타깝다.”

지방 청년이 갇힌 세계를 깨고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 교수는 다른 집단에 들어가 새로운 타자들과 상호작용하는 체험을 넓혀야 한다고 말한다. “주어진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있어야 한다. 다르게 사유하고 다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도록 지역사회와 대학도 적극 도와야 한다. 좁은 가족적 연결망을 넘어 나 자신을 다양한 타자의 눈으로 대상화해보는 초월적 체험 장을 마련해줘야 지방 청년도 다른 세계를 꿈꿀 수 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