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병원의 젊은 교수가 진료실을 찾아왔다. 아주 우울한 표정이었다. 오랫동안 허리가 아파서 고생하다가 수술을 받은 병력이 있는데 이번에는 목이 문제인가 보다. MRI를 보니 경추 4~5번 디스크가 약간 탈출되었고 종판 손상되어 찌그러진 것이 보인다.

“목 디스크 손상으로 보입니다.” “저는 참 재수가 없네요. 허리가 안 좋아서 그렇게 고생했는데 이제 또 목 디스크가 문제라니.”“재수가 없다는 것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원래 허리 아픈 분이 흔히 목도 아픕니다.” “그건 왜 그런 거지요?”“크게 보면 재수라고 할 수도 있지만 꼭 재수 탓만 할 수는 없어요. 교수님 연구 업적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연구 업적이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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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신선영카페에서 사람들이 허리와 목에 좋지 않은 자세로 컴퓨터를 이용하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독서를 하고 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허리 아프다가 목이 고장 나는 경우는 흔하게 본다. 크게는 두 가지 이유로 허리와 목의 문제가 연관되어 있다. 하나는 고칠 수 없는 요인이고, 나머지 하나는 노력으로 고칠 수 있는 요인이다. 재수가 없다고 한탄만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고칠 수 없는 요인이란 유전적 요인을 뜻한다. 디스크의 강도, 디스크 손상, 퇴행이 일어나는 정도는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부분이 크다. 1995년 캐나다 앨버타 대학의 미셸 베티 박사는 핀란드·미국 연구팀과 공동으로 핀란드의 쌍둥이 집단등록 시스템에서 살아 있는 쌍둥이 2050쌍 중 평생 허리를 사용한 강도가 서로 크게 다른 남자 일란성 쌍둥이 115쌍을 뽑아 허리 MRI 검사를 한 결과를 발표했다. 일란성 쌍둥이이지만 디스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들, 즉 직업상 무거운 물건을 다루는 정도, 오래 앉아 있는 정도, 과격한 운동을 하는 정도, 자동차 따위를 타서 진동을 겪는 정도, 담배를 피우는 정도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사람들만 모았다.

분석해보니 일란성 쌍둥이 형제들은 허리를 쓰는 정도가 서로 크게 달라도 디스크가 퇴행되는 정도는 비슷했다. 유전적 요인이 디스크 강도·손상·퇴행에 그만큼 중요하다는 결과다. 최근에는 디스크 손상이 잘 생기는 유전자가 어떤 것인지에 관한 연구도 속속 나온다.

허리 디스크가 유전적으로 약해 요통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목 디스크도 당연히 유전적으로 약하다(MRI 사진 참조). 허리가 아파서 고생한 사람이라면 허리뿐만 아니라 목도 잘 관리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유전적으로, 체질적으로 디스크가 약한데 어쩌란 말인가? 당연한 질문이다. 그렇지만 ‘고칠 수 있는’ 요인도 있다. 바로 자세다. 허리 디스크를 망치는 자세가 목 디스크도 똑같이 손상시킨다. 허리 디스크에 나쁜 자세는 한마디로 ‘요추 전만’이라는 허리 곡선을 무너뜨리는 자세다. 쉽게 말하자면 구부정한 자세다. 이런 허리 자세를 취하면 필연적으로 목도 구부정하고 일자 목이 되는 것이다(아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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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정한 자세 때문에 굽은 척추(위 왼쪽)가 된 사람은 일자 목(위 오른쪽)이 되기 쉽다.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다. 서 있는 사람을 옆에서 보면 목과 허리는 앞으로 튀어나오는 커브를 갖고, 윗등(흉추라고 한다)은 뒤로 튀어나오는 커브를 갖는다. 앞으로 나오는 커브를 ‘전만(前彎)’, 뒤로 나오는 것을 ‘후만(後彎)’이라고 부른다. 목의 정상 커브는 경추 전만이고 허리의 정상 커브는 요추 전만이다. 다양한 경로로 요추 전만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므로 이제 아는 분들은 다 아시리라.

그런데 요추 전만보다 먼저 발달하는 것이 경추 전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요추 전만은 아이가 태어나서 서고 걷기 시작할 때 생기는 것이고 경추 전만은 아기가 고개를 가누면서부터 생기니까 경추 전만이 요추 전만보다 몇 달 빠른 형님이다. 가장 자연스럽고도 정상적인 목뼈의 정렬 상태인 것이다. 이 C자 커브, 즉 경추 전만이 되어야 앉아 있거나 서 있을 때 머리의 무게가 목뼈의 중심을 지나게 되어 목 디스크에 걸리는 압력이 줄어든다.

2010년 재활의학계에서 아주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앉아 있을 때 허리가 구부정하거나 꼿꼿한 것이 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한 것이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앉으면 꼿꼿하게 앉을 때보다 목과 머리가 앞으로 수그러지게 되고 목덜미 근육의 수축이 훨씬 더 높아진다. 구부정한 허리 자세가 이른바 ‘일자 목’을 만들고 목 디스크에 압박을 더 가하게 된다는 결과였다. 나쁜 허리 자세가 몸에 밴 사람은 당연히 목도 나쁜 자세를 갖게 된다. 허리 보증기간을 백년으로 늘리는 방법을 알면 목 보증기간도 백년으로 늘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우울한 표정으로 찾아왔던 젊은 교수도 유전적으로 디스크가 약한 이유가 있었지만 산더미 같은 연구에 치여 허리와 목이 무너졌음이 분명하다. 가슴 아픈 일이다. 한두 가지만 주의했더라면 지금만큼 심해지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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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신선영요추 전만이 무너지면 거북 목이 된다(왼쪽). 허리만 세워도 목이 건강해진다(오른쪽).
올 초에 〈백년 허리〉라는 허리 통증에 대한 대중서를 출판한 뒤 독자들이 보여준 관심에 좀 놀랐다. 그런데 척추 문제에 대한 현 상황을 자세히 보면 수긍이 간다. 2007년부터 매년 10만 건 이상 척추 수술이 시행되고 2013년도에는 17만 건 이상 수술을 했다고 한다. 2007년 이후 지금까지 척추 수술을 받은 사람들만 100만명이 넘는다는 계산이다. 척추 통증이란 위암이나 폐암과 같이 가만히 놔두면 생명을 위협하는 병이 아니라 당장은 좀 불편해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는, 우리 몸이 100년을 사는 동안 생기는 사소한 퇴행의 증상인데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수술을 선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전문가들이 척추 통증에 대해 너무나 모른다

척추 통증 환자를 진료하는 전문가이면서 스스로 심한 척추 통증을 겪어 수년간 이곳저곳을 방황했던 사람으로서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전문가들이 척추 통증에 대해 너무나 모른다’는 것이다. 왜 허리가 아픈지? 해부학적으로 어느 부위 때문에, 그 부위에 어떤 문제가 생겨서 허리가 아픈지? 그 아픈 문제가 어떤 자연 경과를 거치게 되는지? 좀 더 빨리 회복하려면 어떤 치료를 해야 하는지? 운동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어떤 운동이 좋고 어떤 운동이 나쁜지? 어떤 운동을 어느 정도의 강도로 해야 하는지? 이에 대해 정확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전문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척추 수술이 우리나라에서만 연간 17만 건, 미국에서는 연간 50만 건 이상 이루어지는데 전문가들이 잘 모른다니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동감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렇지만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정답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 이후이고, 아직도 완벽한 답이 나오지 않은 부분이 수두룩하다. 그렇다면 이전에는 어떻게 척추 치료를 했나? 당연히 정답을 모르는 상황에서 시행되었고 그중 상당 부분은 오해에 근거했다. 솔직히, 필자도 심한 허리 통증을 겪으면서 2009년까지는 허리를 망치는 운동을 스스로 열심히 했고 필자한테 찾아오는 환자들한테도 열심히 가르쳤다. 그때도 이미 17년차 재활의학 전문의였고 12년차 서울대병원 교수였다. 부끄럽지만 이렇게 고백해야 현 상황이 명확히 이해되리라.

백년 허리와 백년 목을 만들기 위해서는 스스로 공부하고 알아야 한다. 백년 목을 만드는 첫걸음을 떼기 위해 허리와 목을 비교해보자. 우리 몸의 기둥인 척추의 일부로 목과 허리는 비슷한 점도 많고 다른 점도 많다. 목은 허리보다 버텨야 할 무게가 훨씬 적다. 4.5~5kg 되는 머리만 이고 있으면 된다. 목은 뼈도 작고 디스크도 작다. 디스크의 모양과 내부 구성물의 성질이 좀 다르기는 하지만 목과 허리 둘 다 척추뼈와 뼈 사이에 디스크(추간판)라는 물렁뼈가 있어서 충격 흡수를 해준다. 뒤쪽으로 돌기가 있고 후방 관절이 있다는 점도 같다. 물렁뼈 바깥쪽은 섬유륜이라는 딱딱한 껍질이고 안쪽은 수핵이라는 말랑말랑한 젤리로 구성된 것도 동일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공통점은 둘 다 뼈 사이에 들어 있는 물렁뼈, 즉 디스크가 낡고 부서지면서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 디스크들을 소중하게 잘 보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설명한 C자 곡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도 허리와 똑같다. 다시 말해 요추 전만, 경추 전만을 유지해야만 백년 허리와 백년 목을 가질 수 있다. 요추 전만이 무너지면 경추 전만도 같이 무너진다. 아우(요추 전만)가 꼿꼿이 버텨줘야 형(경추 전만)도 꼿꼿이 서고 백년을 편안히 살 수 있는 척추를 가지게 된다. 다음 회에는 목을 살리는 자세와 망치는 자세를 살펴보겠다.

기자명 정선근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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