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4년차인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문화재 현장을 최소한 세 번 찾았다.  2013년 5월4일 숭례문 복구공사 완공 기념식, 지난해 9월7일 경주 월성 발굴 현장에 참석한 데 이어 올해 3월18일 아산 현충사를 방문했다. 물론 세 차례 방문을 근거로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 문화재에 유별나게 애착을 가졌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역대 한국 대통령 가운데 박 대통령만큼 문화재 현장 방문 기록을 남긴 이가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물론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첫 방문지인 숭례문 복구 완공 기념식의 경우, 어떤 대통령이라도 참석했을 행사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두기는 힘들다. 2008년 2월 ‘숭례문 방화’는 국가적 사고였던 만큼 복구 완공을 기념하는 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복구된 숭례문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준 내상(內傷)은 적지 않은 듯하다. 떠들썩하게 복구를 완료했다고 발표한 직후, 전통 방식으로 재현했다는 숭례문의 단청이 벗겨지고 만 것이다. 더욱이 단청을 재생한 방법 역시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 곧이어 드러났다. 이는 결국 단청뿐 아니라 숭례문 복구공사 자체가 총체적으로 엉터리였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심지어 숭례문을 넘어 한국의 문화재 현장 전반이 부실 덩어리로 간주되는 상황까지 확대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해(2013년) 11월11일, “숭례문 부실 복구를 포함해 문화재 보수 사업의 관리 부실 등과 관련한 문화재 행정 전반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통해 문제점을 밝히라”고 지시하게 된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연합뉴스2015년 9월 경주의 신라왕경(월성) 발굴조사 현장에서 조사단의 설명을 듣는 박근혜 대통령(오른쪽).

그런데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를 단지 ‘언제나 있는 일’ 정도로 봐서는 안 된다. 시점이나 경로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었다. 당시 서유럽 순방에서 막 돌아와 공식 일정도 잡지 않은 상황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을 통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 ‘특별 지시’를 전달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지시를 전파한 이정현 당시 홍보수석의 어조도 매우 강경했다.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것을 보면 (문화재 복원·관리 문제가) 원전 비리 못지않게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박 대통령도 원전 비리 커넥션이나 그로 인한 문제점 못지않게 굉장히 심각하게 이 사안을 보신 것 같다.”

발언 그대로만 보면, 문화재 비리를 당시에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던 원전 비리에 견준 이가 박근혜 대통령 본인인지, 아니면 이정현 수석인지 애매하기는 하다. 하지만 두 사람 중 누가 그 발언의 장본인인지에 상관없이, 그 이후 진행된 경과를 보면 문화재 계통의 비리는 원전 비리만큼 취급을 받았다. 경찰과 감사원이 대대적인 문화재 비리 수사·감사에 착수하면서 문화재계는 그야말로 쑤셔놓은 벌집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박근혜 대통령과 문화재계의 관계는 출발부터 심상치 않았다. 사실 문화재계는 박 대통령이 취임하자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왜 그랬을까?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 때문이다.

문화재계에 대통령 박근혜의 등장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물론 문화재계에도 다양한 정치 성향의 인물과 흐름이 있기 때문에 하나로 수렴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저변에 ‘박정희의 재림’이라는 기대가 짙게 깔려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어떤 지도자였나? 독재자, 경제발전의 역군 등 그를 지칭하는 상징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적어도 문화재계에서 그는, ‘단군 이래 그랬던 적이 없었다’고 표현될 만큼 문화재가 각광받는 시대를 연출한 대통령이었다. 문화재계는, 그런 아버지에게 적지 않은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데다 실제로 아버지를 따라서 경주 등 여러 문화재 현장을 다니기도 했던 박근혜 ‘신임 대통령’에게 그 아버지 같은 모습을 기대했던 것이다. 특히 숭례문 복구 완공 기념 행사장에 노란색 한복 차림으로 나타났던 박근혜 대통령의 당시 모습은 문화재계가 또 다른 박정희로 반길 만한 풍모를 지니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문화재계의 기대가 숭례문 부실 사업의 폭로와 그 여파인 수사 확대로 인해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연합뉴스1973년 경주의 천마총 발굴 현장을 찾아 상황 보고를 받고 있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가운데, 주머니에 손 넣은 사람).

‘박정희의 재림’을 기대했던 문화재계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실제로 문화재계를 원전 비리급 인사가 득실거리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을까? 이후 행보를 보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박 대통령은 한동안 문화재 쪽에는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2년4개월여 만에 문화재 현장에 다시 나타난다. 지난해 9월 경주 월성 발굴지였다. 박 대통령의 행보가 그동안 원전 비리급 집단으로 비친 문화재계에 대한 사면복권을 의미하는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속내가 어떠하든, 박 대통령의 경주 월성 발굴 현장 방문 자체는 문화재계에 상당히 중요한 사건이었다. 비로소 완연한 ‘박정희의 재림’으로 보이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고고학 발굴 현장을 찾은 이는 오직 박정희 전 대통령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에 이어 두 번째였다. 더욱이 그 많은 발굴 현장 중에서도, 아버지가 생전에 그토록 지극정성을 기울였던 경주를 그 딸이 다시 밟은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경주 월성 조사는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의 세부 과제 중 하나다. 경주를 ‘역사문화 창조도시’로 조성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는 경주 현장에서 “전통문화 자원이 문화 융성을 견인하는 핵심 자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적극 활용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무튼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은 ‘역사도시 경주’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움직임에 가속페달을 밟아준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노출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다만 독자들께, 대한민국 역사상 현직 대통령이 고고학 발굴 현장을 찾은 두 번째 사건이 지난해 9월 경주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해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그 두 대통령이 공교롭게도 부녀간이라는 것도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세 번째 문화재 현장 방문은, 올해 3월18일 현충사 참배였다. 아산 경찰대학에서 열린 경찰대학생·간부후보생 합동 임용식에 참석한 뒤, 청와대 참모진을 대동하고 이순신 장군 사당인 현충사를 참배했다. 방명록에는 “충무공의 정신을 이어받아 한반도의 번영과 평화의 기틀을 만들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 일을 두고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오늘 참배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사이버 테러 등으로 안보 현실이 엄중한 상황에서 조국 수호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국민의 단합된 국가안보 의지를 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현충사가 어떤 곳인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가를 위해 충(忠)하는 ‘국민’의 이상형으로 이순신을 발견해내면서 이곳을 추모 시설로 재단장했다. 이런 곳을 그의 딸이 찾았다. 대통령 박근혜에게 아버지 박정희의 짙은 그림자가 늘 따라다닌다는 지적을, 우리는 현충사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김태식
경북 김천 출신으로 연세대 영어영문학과를 나와 1993년 1월, 〈연합뉴스〉 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디뎠다.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문화재 역사 전문기자로 일했다. 〈풍납토성〉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 〈직설 무령왕릉〉 같은 단행본을 냈으며, 한국 고대사와 문화재 정책 관련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기자명 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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