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 생활 4년차 나셀프씨(가명)는 요즘 이른바 ‘집방(집 꾸미기 방송)’ 프로그램을 눈여겨본다. tvN 〈내 방의 품격〉에 출연한 인테리어 고수가 가르쳐준 대로 헌옷을 잘라 화분걸이를 만들어보고 JTBC 〈헌집 줄게 새집 다오〉에 소개된 벙커침대 만드는 법을 메모해두기도 한다. 집 구입부터 리모델링, 인테리어까지 싹 다 바꿔주는 미국의 집 꾸미기 방송 〈집 나와라 뚝딱(Fixer Upper)〉에 등장하는 저택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차가 없는 그는 가끔 이케아 매장을 방문하지만 주로 쇼룸을 보며 눈요기를 하고 구매는 이케아와 비슷한 디자인의 온라인 전용 국내 가구업체에서 한다. 큰돈을 들이기보다 계절에 따라 창가 화분을 교체하는 것으로 기분 전환을 한다.  

ⓒtvN 제공tvN <내 방의 품격>(왼쪽)은 인테리어 초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집방, 셀프 인테리어, 홈퍼니싱(집 꾸미기). 2016년의 트렌드로 꼽힌 말이다. 나셀프씨의 일상이 트렌드를 반영한다. 그중에서도 최근 두드러지는 현상이 ‘집방’이다. 최근 시즌2 방영을 결정한 tvN 〈내 방의 품격〉 시청자 게시판은 ‘레몬테라스’(대표적인 인테리어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를 연상케 한다. ‘붙박이장을 셀프로 철거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이불 커버랑 침대 시트 색이 너무 안 어울려요. 도와주세요.’ 이 프로그램의 부제는 ‘방구석 환골탈태 쇼’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꿔야 할지,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귀찮은 건 딱 싫은 인테리어 초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말 시작된 〈내 방의 품격〉보다 한 주 앞서 방영을 시작한 JTBC의 〈헌집 줄게 새집 다오〉(이하 〈헌집 새집〉)도 있다. 연예인의 방을 스튜디오에 그대로 옮겨 와 인테리어 배틀을 벌이는 콘셉트다. 유명인의 방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두 개 팀이 의뢰인의 예산과 요구에 맞춰 방을 꾸미고 이긴 쪽의 디자인대로 방을 꾸며준다. 지난해에 이어 시즌 2가 방영 중인 XTM 〈수컷의 방을 사수하라〉는 남편이 아내 몰래 집에 만화방·수면실·격투기방 등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만들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시골 주택을 개조해주는 채널A 〈부르면 갑니다, 머슴아들〉도 있다(3월19일 종영). 집 구조를 바꿔주는 tvN 〈렛미홈〉도 방영을 앞두고 있다.

ⓒjtbc 제공JTBC <헌집 줄게 새집 다오>는 연예인의 방으로 인테리어 배틀을 벌인다.

성격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쿡방(요리 방송)’ 다음의 트렌드로 ‘집방’을 주목한 데서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김종훈 〈내 방의 품격〉 책임프로듀서(CP)는 “쿡방·먹방 다음의 트렌드에 대해 고심했다. 〈러브 하우스〉 같은 프로그램은 최근의 트렌드와 맞지 않는 것 같아 토크쇼에 집중하게 됐다. 시청자들이 ‘내 방을 고쳐볼까’라는 생각을 들게 하고 싶었다. 내 방, 우리의 공간을 다루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집을 꾸미는 콘셉트의 방송 자체가 새로운 건 아니다. 소외 계층의 주거 환경 개선에 초점을 맞춘 MBC 〈러브 하우스〉가 있었고 유명인의 집 인테리어를 공개하는 건 아침방송의 단골 소재다. 이전과 다른 대목은 적은 비용으로 할 수 있는 일반인의 ‘셀프 인테리어’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인테리어는 전문가의 영역이었다. 몇 년 사이 인테리어를 취미 생활로 하는 비전문가가 크게 늘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직접 꾸민 방을 보여주는 ‘온라인 집들이’도 유행이다. 방송 역시 전문가를 섭외할 때 그 점을 염두에 둔다. 성치경 〈헌집 새집〉 CP는 “포트폴리오도 보지만 중요한 건 면접이다. 이를 통해 성향을 알 수 있다. 비싼 돈으로 비싸 보이게 하는 건 쉽기 때문에 우리는 적은 돈으로 효과를 낼 수 있는 인테리어에 초점을 맞춘다”라고 말했다.

ⓒ채널A 갈무리채널A <부르면 갑니다, 머슴아들>은 시골 주택을 개조해준다.

전세니까 대충 살자고? 지금 여기서 행복할래

우리만의 ‘집방’ 트렌드는 또 있다. 집보다 방이다. 단위가 크지 않다. 리빙 전문 케이블채널 홈스토리는 한국보다 앞서 ‘집방’을 많이 제작한 외국 프로그램을 다수 방영한다. 이들 외국 프로그램은 집 한 채를 통째로 바꾸거나(〈집 나와라 뚝딱〉), 해외 이사를 권하는(〈이색적인 이사〉) 등 제작 규모가 다양한 데 비해 국내 프로그램의 경우 각계 전문가 남성의 방을 보여주거나(〈그 남자의 방〉), 셀프 인테리어 달인의 노하우를 보여주는(〈자신만만 인테리어〉) 등 주로 방 단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집방’이라기보다 ‘방방’에 가깝다. 성 CP는 “미국같이 땅덩이가 큰 나라의 경우 셀프 인테리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원래 본인이 한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집을 스스로 고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월세 때 못도 안 박고 살다가 어렵게 집을 사면 업자를 불러 고치는 문화였다. 점차 집을 소유하기 어려워지고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방 한 칸, 원룸, 소규모 아파트 등의 주거 형태가 늘었다. 이에 따라 인테리어 정보가 상대적으로 많아지고 접근성도 높아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방송 역시 그런 경향을 반영한다. 시청자 층도 젊은 1인 가구가 많은 편이다. 그의 설명처럼 과거보다 전월세에 별로 구애받지 않는다. 〈전셋집 인테리어〉의 저자 김동현씨는 자신이 꾸민 전셋집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유명해졌다. 그는 ‘나중에 언젠가 내 집을 마련하면 최소한 동네 인테리어 가게에라도 맡겨 멋지게 꾸며야지. 그때까진 대충 살자’라고 마음먹었다가, 지금 이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집을 꾸미기 시작했다.

ⓒtvN 제공XTM <수컷의 방을 사수하라>는 남성이 선호하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가구업계의 변화도 ‘집방’에 대한 관심과 결을 같이한다. 세계 최대 홈퍼니싱 업체 이케아의 연착륙이 결정적이었다. 패스트 패션에 이어 패스트 퍼니처(저렴하게 사서 쓰고 부담 없이 버리는 가구) 현상이 자리를 잡았다. 국내 온라인 가구 시장 규모는 지난해 1조2000억원 규모로 매년 20% 이상 성장하고 있다. 오피스텔이나 원룸에 거주하는 1인 가구를 위한 제품을 꾸준히 내놓고 있는 한샘은 한샘몰을 오픈해 6년 만에 5배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숫자는 늘고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집방’의 시대라고 보긴 어렵다. 예능의 특성상 재미와 정보 전달이라는 실용성을 고르게 끌고 가야 하는 데 균형 맞추기가 쉽지 않다. 시청률은 1%대다. 음식처럼 누구나 관심 있는 소재도 아니다. 한 방송 관계자는 “아직은 쿡방의 시대다. 셀프 인테리어가 우리 사회 트렌드니까 방송에도 올 거라는 예측이 있지만 단언하기는 이르다”라고 말했다. 〈아메리칸 아이돌〉이 미국에서 붐을 일으킨 후 국내에서도 〈쇼바이벌〉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제작됐지만 반응이 없다가 2년 뒤 〈슈퍼스타 K〉로 붐이 일었다. ‘집방’ 역시 알 수 없는 운명이다. 다만 계속 늘어나리라는 게 방송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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