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경기도 용인에 사는 김 아무개씨(43)는 100만원을 주고 갓 태어난 아기를 ‘샀다’. 김씨의 집에는 태어난 지 10개월이 지난 아기가 한 명 더 있었다. 두 아기는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았다. 미혼모의 아기였다. 김씨는 입양을 알아보는 부부에게 ‘개인 입양’을 제안했다. 연결 통로는 인터넷이었다. 경찰은 아동 매매 혐의로 김씨를 구속했다. 생모 2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아기는 보호기관으로 보냈다. 지난 1월에도 충남 논산에서 미혼모에게 돈을 주고 갓난아기 6명을 데려온 임 아무개씨가 체포됐다.

개인 간에 불법으로 아기를 거래하는 건 온라인상에서 만연한 현상이다. 기자가 포털사이트에 입양 기관을 문의하는 글을 남기자, 곧바로 쪽지가 왔다. ‘아기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글을 보니 너무 마음이 아파서 남겼어요. 제가 그 애 데려가면 안 될까요?’ 구매자가 아기를 받으며 지불하는 비용은 100만∼1500만원으로 제각각이다. 원하는 성별, 아기의 출생 기간, 친모의 몸 상태 등에 따라 달라진다. 친모는 병원비 명목으로 30만원 정도 받기도 한다. 기자와 연락한 다른 브로커는 “미혼모는 출산 기억을 지우고 싶어 하기 때문에 생모에게 사례비를 줄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다.

법망을 피해서 입양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미혼모가 임신 중일 때부터 입양을 원하는 여성 이름으로 산부인과에 등록해 진료를 받는다. 관공서에 출생신고를 할 때는 산부인과에서 발급받은 출생증명서를 제출하는데, 출생증명서의 ‘산모’란에 입양받을 사람의 이름을 기재한다. 출산 전부터 입양하려는 사람이 친모로 행세하는 것이다.

ⓒ시사IN 이명익주사랑공동체교회의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신생아 6명을 자원봉사자들이 돌보고 있다.

아기가 태어난 이후에는 인우보증제를 통해 출생신고를 한다. 성인 2명이 보증을 서면 자신이 낳은 것처럼 출생신고가 가능하다(인우보증제가 악용되는 사례가 늘어 이를 폐지하고 가정법원이 직접 출생등록을 확인하도록 하는 ‘가족관계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이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돼 있지만 19대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

2012년 개정된 입양특례법 제11조 1항에 따르면 출생신고 증빙서류를 갖추어야만 가정법원의 입양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친모의 출생신고 의무화는 아동 보호와 아동의 ‘친부모를 알 권리’를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됐지만, 주변에 알리기를 꺼려 하는 10대와 20대 초반 미혼모나 부적절한 관계에서 임신한 여성은 제도 밖에서 해법을 찾는 경우가 많다. 앞서 나온 사례처럼 아기를 ‘거래’하거나 ‘유기’하는 것이다(미혼의 경우 여성만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미혼부는 ‘친모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다’는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야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아빠는 어디 가고…미혼‘모’만이 떠안는 책임

합법적으로 출생신고 후 입양이 완료되면, 친부모의 가족관계등록부에서는 자녀 기록이 삭제된다. 하지만 영구적으로 입양되지 않거나 파양될 때 ‘혼외자녀’로 기록이 살아난다. 대부분 이런 경우를 두려워한다. 예를 들어 장애아나 혼외자는 출생신고를 하고 입양을 보내려 해도 입양이 되지 않아 기록에 남는다. 입양이 완료되지 않은 혼외자녀를 둔 미혼모는 형제·자매, 직계 존·비속(혈연관계)이 증명서를 발급받을 경우 출생 사실이 드러난다(그러나 미혼부에게는 기록이 남지 않아 책임질 일이 없다).

이런 이유에서 주사랑공동체교회 조태승 목사는 현행 입양특례법이 불법 매매, 유기와 낙태를 조장한다며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10대의 출산 사실이 알려지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겠나? 미혼모에 대한 편견과 사회적 고립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동의 ‘친부모 알 권리’만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면 낙태하거나 유기하려는 동기를 가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9년 52건, 2010년 69건이던 영아 유기 건수는 2012년 법 개정 이후 급격히 증가해 2013년에는 225건, 2014년에는 280명에 이른다.

현행 입양특례법 존치에 찬성하는 이들은 ‘부모를 알 수 없는 아이’로 만들어 아동 유기 문제를 해소하려는 태도야말로 미혼모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킨다고 주장한다. ‘뿌리 찾기’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인권 흐름을 거꾸로 돌린다는 것이다.

산모의 ‘익명 출산권’을 주장해온 독일·체코·폴란드 등 일부 유럽 국가는 정부와 민간(산부인과 병원)에서 베이비박스를 설치해 산모가 신원을 밝히지 않고도 안전하게 아기를 출산하고 입양까지 완료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다. 이에 대해서도 논란은 뜨겁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이들 국가에 설치된 베이비박스가 영아 유기를 부추긴다며 철거를 권고한 바 있다.

한국에서도 주사랑공동체교회가 설치한 베이비박스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실상 아동 유기를 확대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되어왔다. 한 미혼모 지원단체 대표는 “‘아동 유기’는 학대인데도 불구하고 베이비박스에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 대상자가 보호를 받는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미혼모들이 베이비박스에 아기와 함께 두고 간 편지들. 인적사항, 예방접종 기록 등이 남겨져 있다.

베이비박스에는 지난 한 해 동안 신생아 278명이 들어왔다. 매년 300명가량 들어오는데, 60% 이상이 10대와 20대 초반 미혼모가 낳은 아기다. 베이비박스에 온 아기들은 경찰을 통해 실종아이 시스템에 등록된다. 관할 구청에 아기를 인도해 병원에서 건강 검사를 마치면 서울시 아동복지센터를 거쳐 전국의 보육원으로 흩어진다. 베이비박스에 놓고 갈 당시 친모가 목사와의 면담을 거쳐 출생신고를 한 경우에는 곧바로 입양 절차가 진행되고, 몰래 놓고 가 ‘유기’된 경우에는 6개월간의 친모 찾기 기간을 거친 뒤 ‘단독 호적’을 갖는다.

3월1일부터 9일까지 신생아 7명이 베이비박스에 들어왔다. 한 아이는 부모가 다시 데려갔지만, 나머지 네 아이는 출생신고를 거쳐 입양됐다. 두 아이는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버려’졌다. 주사랑공동체교회의 조태승 목사는 “사실상 베이비박스는 미혼모가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라고 말했다.

미혼모의 출산과 양육을 제도권으로 유도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은 현재로서는 전무하다. 법적 지원은 미미하고, 사회적 편견은 손가락질을 넘어 생계 위협으로 다가온다. 10개월 된 남자 아이를 키우는 19세 안 아무개씨는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라 월 15만원(2인 가구 기준 한 달 수입이 157만6572원 이하 대상)을 지급받는다. 기저귀 등 자녀 양육에 필요한 물품 구입비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그녀는 “기업 입사는 꿈도 꾸지 못한다. 직업학교에서 기술을 익히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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