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시민이 에너지 대안 시나리오를 만든다?


“원자력발전 비중 0%로 낮춘다”


선진국은 대비하는데 한국은 아몰랑?

 

“선택하지 않은 길?” 1976년 10월, 미국의 물리학자 에이모리 로빈스는 학술지 〈포린 어페어〉의 기고문 제목 끝에 물음표를 붙였다.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오일쇼크 직후였다. 로빈스는 이 글에서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에너지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근시안적인 (에너지 시나리오) 예측은 선택권을 없애고 자기 충족적 예언을 반복한다”라고 비판했다. 로빈스는 이런 방식 대신 “전략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되짚어 나가는,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드러내는 방식”을 택하자고 주장했다. 6년 후, 캐나다의 존 로빈슨 박사는 로빈스의 방법론을 체계화하고 ‘백캐스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재현1986년 4월26일 폭발한 체르노빌 원자로 4호기 앞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탑이 서 있다.

독일은 정부도 백캐스팅 시나리오를 활용한다. 2000년 독일 연방정부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앙케트 위원회를 설치했다. 위원회는 백캐스팅 방법론을 사용해 탈핵과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달성하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독일 연방정부는 이러한 선행 연구를 바탕으로 2022년까지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한다. 캐나다와 영국도 연구기관들을 중심으로 전력 수급 계획에 백캐스팅 방법론을 활용한 적이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현재 상황이 그대로 유지된다(BAU:business as usual)’는 전제 아래 예측(forecasting)을 중심으로 에너지기본계획을 짠다. 에이모리 로빈스가 ‘자기 충족적 예언’이라고 비판했던 바로 그 방식이다. 2차 에너지기본계획의 수요 전망 총괄을 맡았던 강윤영 에너지경제연구원(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연구위원은 한 토론회에서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을 고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기자명 신한슬 기자 다른기사 보기 hs5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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