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탄생’

‘메갈리안’… 여성혐오에 단련된 ‘무서운 언니들’

여성 향한 외침, “왜 넌 날 사랑하지 않는 거니”


 

‘김치남’ 또는 ‘씹치남’이라고 있다. 이제는 여성혐오 정서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된 ‘김치녀’의 대응 단어다. ‘김치페이’도 있다. “먹을 땐 8대2, 돈은 5대5, 계산은 남자가 해야 가오가 산다는 김칫국식 더치페이”라는 뜻이란다. 역시 원본이 있다. 여성혐오 담론의 본진 격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서 ‘더치페이’는 여성혐오를 부르는 도깨비방망이 키워드다. ‘갓양남’은 뭘까. “김치남에 비해 모든 것이 뛰어난 서양남”이라는 의미다. 원본은 ‘스시녀’다. 일베에서 ‘김치녀’와 대조해 일본 여성을 거론할 때 쓴다.

여성혐오 폭발의 원년이라 할 만한 2015년(〈시사IN〉 제417호 연속기획 ❶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탄생’’ 기사 참조)은, 또한 아주 독특한 반격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디시인사이드 ‘메르스갤러리(메갤)’를 거점 삼아, 여성혐오를 거울에 비쳐 돌려주는 전략을 채택한 여성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남녀의 성 역할과 권력이 뒤바뀐 세상을 묘사한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스테디셀러 〈이갈리아의 딸들〉에 빗대어 자신들을 ‘메갈리안’이라고 부른다(〈시사IN〉 제410호 ‘메갈리아의 딸들 여성혐오를 말하다’ 기사 참조). 8월에는 같은 이름의 홈페이지도 생겼다.

메갈리안은 등장하자마자 크게 두 가지 논란에 휩싸였다. 첫째, 이것은 ‘미러링’(거울에 비추듯 되돌려주기)인가, 남성혐오인가? 메갈리안이 구사하는 공격적인 언어는 전략적으로 기획된 여성혐오의 패러디인가, 그저 혐오의 악순환인가? 둘째, 설사 그것이 미러링이라고 해도, 혐오의 언어를 그대로 빌려와 혐오에 대응하는 전략은 제대로 작동할까? 구경꾼을 질리게 만드는 역효과는 없을까?

〈시사IN〉과 데이터 기반 전략컨설팅 회사 아르스프락시아는 메갤 담론 지도를 그렸다. 6월1일부터 8월31일까지 메갤에서 10건 이상의 추천을 받아 ‘개념글’이 된 게시물 전체(2만7888건)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온라인에 만연한 여성혐오에 맞서 여성들이 구축한 ‘역공의 거점’ 메갤을 데이터로 분석한 최초 시도다. 그 결과가 〈그림 1〉이다.
 

〈그림 1〉 메르스갤러리 담론 지도 

 


메갤 담론 지도의 기본 뼈대는 삼각 구도다. 삼각형의 세 꼭짓점은 각각 ‘여성’ ‘남성’ 그리고 ‘씹치남’이다. 일단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왼쪽 위 ‘씹치남’을 중심으로 하는 남색 대륙이다. ‘이중잣대’와 ‘이기야’는 일베의 패러디다. ‘미개’와 ‘클래스’도 패러디 성격이 강하다. 메갤이 주장하는 ‘미러링’이다.

메갈리안이 보기에,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사고체계 근간에는 ‘데이트 비용’ 문제가 있다(왼쪽 아래 푸른색 대륙). 여성이 ‘더치페이’를 하지 않는 것을 여성혐오의 동력으로 삼고, 한국 사회에서 남자가 ‘역차별’을 받는다고 믿으며(역차별의 대표 사례로 ‘군대’가 있다), 여자들이 남자를 고를 때 ‘사랑’이 아니라 ‘능력’을 본다고 믿는 남자. 이것이 메갈리안이 그리는 여성혐오 남성의 원형질이다.

오른쪽 초록색 ‘여성’ 대륙은 이런 현실에서 한국 여성이 처한 상황에 대한 메갈리안의 현실인식이다. 전방위 ‘여성혐오’에 둘러싸인 한국 여성은 ‘처녀’가 아니면 ‘걸레’라는 식의 공격에 시달린다.

삼각형 구도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분석을 진행한 아르스프락시아 김학준 연구원은 오히려 삼각형 내부의 작은 대륙 셋에 주목했다. “흥미롭네요. 셋을 관통하는 일관된 정서가 있습니다.” 일관된 정서란 뭘까. 공포다. 범죄 공포, 결혼 공포, 그리고 시선 공포. 세 축으로 구성되는 공포는 메갤 담론지도의 속살을 이룬다.

〈시사IN〉과 아르스프락시아는 세 공포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상세 지도를 그려봤다. 〈그림 2〉는 ‘범죄 공포’ 지도다. 여성은 일상적으로 ‘성폭행’ ‘성희롱’ ‘모욕’ ‘데이트 강간’ ‘살인’ 위협에 노출된 존재다(노란색). 이 구도에서 ‘남성’은 범죄 ‘가해자’이거나 ‘성매매’ 구매자로 배치되는 반면(푸른색), 여성은 ‘피해자’이면서도 ‘걸레’라고 ‘비하’되거나 ‘편견’에 시달리며 ‘차별’받는다(붉은색).

 

 

〈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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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이별’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이전부터 간간이 쓰였으나 메갤 등장 이후 사용 빈도가 급증했다. 연애 관계를 정리할 때 여성은 스토킹부터 물리적인 위협까지 온갖 위험을 짊어진다고 느끼는데, 이 때문에 ‘이별은 만나서 통보해야 한다’라는 남성이 생각하는 불문율이 전복된다. 문자나 메신저 등으로 이별을 통보하는, 당하는 남성의 관점에서 보면 ‘못 배우고 싸가지 없는’(그래서 여성혐오의 논거로 쓰이는) 행위가, 메갤에서는 무엇보다 안전 이슈다. 뿌리 깊은 범죄 공포는 남성지 〈맥심 코리아〉 9월호 화보 사건으로 그야말로 폭발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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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은 ‘시선 공포’다. 외모로 대상화되는 상황에 대한 공포가 잘 드러난 지도다. ‘여성’은 늘 남성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고, 시선은 ‘골반’ ‘가슴’ ‘얼굴’ ‘몸매’ 식으로 여성의 외모를 마치 부위별로 등급 매기듯 ‘평가’한다(붉은색). 이 구도에서 ‘남성’은 보는 존재다. 이 남성 시선의 극단적인 형태가 ‘몰카’다(푸른색).〈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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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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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 이슈는 메갤 초창기 최대의 승전보였다. 6월부터 메갤은 ‘소라넷’ 등 유명 음란 사이트에 들어가 몰카 공유 사례를 확보하는 등 이슈화에 나섰다(온라인 용어로, 소라넷을 ‘털었다’). 몰카 문제는 시선 공포와 범죄 공포의 접점에 있고, 메갈리안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슈를 사회 의제로 띄우는 경험을 공유했다.〈br style=
〈그림 4〉는 ‘결혼 공포’다. 로맨스는 온데간데없고 격한 키워드가 ‘결혼’을 둘러싸고 있다. ‘기피’ ‘자살’ ‘이혼’ ‘포기’ ‘독신’ 등이 줄줄이 나온다. 결혼하면 여자가 ‘손해’라는 인식이 확고하고, ‘시댁’은 코앞의 부담으로 다가온다(붉은색). ‘남편’은 도움이 될까? 그럴 리 없다. ‘집안일’과 ‘육아’는 ‘아내’에게 떠넘길 것이다(푸른색). 시댁의 무리하거나 뻔뻔스러운 태도를 응징하는 며느리의 경험담은 메갤에서 단골로 히트하는 인기 콘텐츠다.

 

〈그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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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를 평가하는 시선, 범죄의 위협, 그리고 결혼 회피. 담론 지도에서 드러난 공포의 세 축은 메갈리안이라는 ‘무서운 언니들’에게 고유한 이슈가 아니다. 한국 여성 일반이 공유하는 공포에 가깝다. 그러나 메갈리안은 여성혐오의 언어를 비트는 방식으로 이 보편적인 공포에 반격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그림 1〉의 회색 ‘시선 공포’ 대륙을 보자. 메갈리안은 여성의 외모에 점수를 매기는 남자를 끄집어내 역으로 평가 대상으로 세워버린다. 그것도 남자들이 단연 공포를 느끼는 방식으로 돌려준다. 두 키워드가 눈에 띈다. ‘고추’ ‘작다’. 이 ‘무서운 언니들’이 왜 온라인 공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키워드다.

이것은 미러링인가 남성혐오인가? “메갤의 담론 구조가 일베의 그것과 지나칠 정도로 유사하다.” 분석을 진행한 김학준 연구원의 논평이다. ‘지나칠 정도’라니, 무슨 뜻일까. “원본이 존재하고, 그 원본의 맥락을 이해하며, 그에 맞춰 의도적으로 패러디를 한다는 뜻이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메갤 이용자들이 원본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이건 자연발생적인 혐오의 분출이라고 보기 힘들다.” 여기서 ‘원본’이란 일베로 대표되는 여성혐오의 기본 문법을 가리킨다.

〈그림 5〉는 일베와 메갤에서 추출한 담론의 중심 키워드를 대칭으로 배열한 결과물이다. ‘이기야’(일베 특유의 문장 종결 표현 중 하나. 메갤에서도 널리 쓰인다), ‘삼일한’(여자는/남자는 삼일에 한 번씩 패야 한다) 등의 키워드는 일베와 메갤이 아예 함께 쓴다.

 

그다음으로는, 분명히 패러디를 노리고 배치한 키워드가 줄줄이 등장한다. 거의 모든 여성혐오 용어에 일대일 대응 용어가 태어나다시피 했다. 특히 상징적인 키워드는 ‘탈김치녀’ 대 ‘코르셋’이다. 일베가 소수의 ‘각성한 여성’을 ‘탈김치녀’로 찬양하는 동안, 메갈리안은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흔히 쓰이는 ‘코르셋’을 일베와는 정반대 의미의 ‘각성한 여성’으로 쓴다.


혐오의 유탄이 미러링 밖으로 튀지 않도록 관리

메갤의 혐오 발화는 일베식 여성혐오의 거울상이라는 목표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계산이 따라붙는다. 메갈리안 홈페이지의 용어사전 ‘갓양남’ 항목을 보자. 한껏 ‘김치남’을 조롱한 후에(“김치남에 비해 모든 것이 뛰어난 서양남”) 작성자는 이 단어에서 인종혐오의 혐의는 차단하려 시도한다. “백인만을 뜻하는 개념이 아닌, 흑인과 라틴 계열 등, 서양 국적과 성평등 사상을 가진 남성들을 아우르는 의미.”

하반기에 떠오른 키워드인 ‘맘충’을 메갈리안 용어사전은 “엄마가 없으면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는 김치남”으로 뒤집는다. 그리고는 덧붙인다. “애비충·파피충 등의 대응어가 등장했으나, 육아는 특정 성의 역할이 아니라 부모의 영역이므로 사용을 부정적으로 본다.” 혐오의 유탄이 미러링 밖으로 튀지 않도록 관리하는 계산이 있다. 자연발생형 혐오에서는 보기 힘든 중요한 차이다.

이 의식적인 계산이야말로 메갈리안의 강점인 동시에 위험 요소가 된다. 미러링이란 여성혐오의 문법에 익숙하고 충분히 갖고 놀 수 있으면서도 과속하지 않는 사람만이 가능한 외줄타기다. ‘탄생 정신’을 공유하지 않는 신규 유입이 이어지고 혐오 발화가 자체로 놀이코드로서 매력을 갖게 된다면(일베가 정확히 이렇다), 그때도 섬세하게 지금 궤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더 중요한 질문도 있다. ‘혐오를 혐오로 돌려주는 방식’은 습관적으로 여성혐오 언어를 써왔던 남성에게는 충격요법으로 먹혀들기도 했다. 하지만 맥락 없이 접해야 하는 온라인 공간의 다수 구경꾼에게 메갤발 혐오 발화는 그저 ‘여자 일베의 등장’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전략은 얼마나 유효할까. 메갈리안에서도 그를 둘러싼 논쟁이 주기적으로 벌어진다.

외부의 시선이야 어떻든, 오랫동안 온라인 공간의 여성혐오에 시달리며 단련된 이 ‘무서운 언니들’은 당분간 충격요법을 유지할 생각이다. 메갈리안 홈페이지의 공지사항에 걸린 한 문답이 위 질문을 다룬다. “좀 더 성숙하게 논리적인 분위기로 바꾸자? 그 짓 10년 넘게 했다. 돌아온 거 없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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