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2일 현재까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의 핵심 고리 구실을 한 ‘슈퍼 전파자’는 세 명이다. 1번, 14번, 16번 환자다. 1번 환자는 아산·평택·서울에서 모두 31명을 감염시켰다. 14번 환자는 평택성모병원에서 1번 환자에게 감염되었고, 이후 평택과 서울에서 62명을 감염시켰다. 지금까지 확진 환자 60명이 발생한 삼성서울병원으로 메르스를 옮겨온 것이 14번 환자다. 16번 환자도 평택성모병원에서 1번 환자에게 감염되었다. 그는 메르스를 대전으로 옮겨가 17명을 감염시켰다(아래 인포그래픽 참조).

세 환자가 어떻게 ‘슈퍼 전파자’가 되었는지를 되짚어보면 메르스가 걷어낸 한국 의료 시스템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메르스가 한국에 들어온 것이 보건 당국의 실패라면, 일단 들어온 메르스가 국내에서 확산되는 과정은 보건 당국의 무능과 취약한 의료 시스템의 합작품이었다.

안전에 취약한 ‘다인실-비전문가 간병’ 조합

1번 환자는 증상을 느낀 후 병원 네 군데를 돌아다녔다. 앞서의 세 병원에서 메르스 진단을 받지 못했고, 네 번째로 찾아간 삼성서울병원에서 최초로 의심 진단을 받았다. 의원급은 물론이고 종합병원인 평택성모병원도 전문적인 감염병 진단을 내려주지 못했다.
 

ⓒ시사IN 신선영6월11일 삼성서울병원 본관 1층 입구에서 병원 방문객이 발열 검사를 받고 있다.

병원에서 감염내과 전문의가 하는 역할은 전형적인 ‘리스크 관리자’에 해당한다. 감염병 유행과 같은 위기 상황에 필요한 자원이지만 평소에 돈을 벌어다 주지는 않는다. 감염내과가 환자 한 명을 30일 동안 입원시켰을 때, 건강보험 재정에서 감염치료 항목으로 병원이 받는 돈은 1만890원이다. 전문의를 두는 인건비가 보전될 리 없다. 그나마 일반 입원료와 별도로 건강보험 수가가 책정된 것도 2009년의 일이다. 병원 처지에서 보면 감염내과를 최소화하거나 아예 없애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평온할 때 푸대접을 받는 것은 리스크 관리자의 숙명이다. 한국 의료 시스템에서도 리스크 관리자는 멸종 위기종이 되었다. 한 해에만 의사 국가고시 합격자 3000명이 나오는 한국에서, 감염내과 전문의는 모두 합쳐 191명이다. 대형 병원이 밀집한 서울에 77명이 몰려 있다. 울산은 광역시인데도 감염내과 전문의가 1명이다(대한감염학회 자료).

16번 환자는 평택성모병원에서 1번 환자에게 감염됐다. 그는 5월28일 대전 건양대병원으로 옮겨 입원했다. 메르스 확진을 받기까지 사흘 동안 16번 환자는 6인실에 있었다. 이 병원에서 감염자 9명이 더 나왔고, 그중 2명이 사망했다.

예방의학 전문가들은 한국의 6인실과 가족 간병 관행이 감염병을 확산시키는 주범이라고 지목한다. 좁은 병실에서 다닥다닥 붙은 병상에 머무르는 6인실은 감염이 확산되는 배양소 구실을 한다. 가족과 간병인이 자유롭게 들락날락하기 때문에 6인실은 사실상 12인실 이상의 인구밀도를 보이게 된다.

의료인들은 여러 언론에 ‘6인실 문화를 바꾸자’는 기고를 쏟아내고 있다. 병원을 감염 위험이 있는 격리 공간으로 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 진단은 절반만 맞다. 6인실·가족 간병 관행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면, 핵심은 문화보다는 비용 문제였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어 저렴하게 쓸 수 있는 ‘일반병실’의 기준이 6인실까지였다. 지난해 9월 정부는 일반병실 기준을 4인실로 넓혔다.

이로부터 기묘한 타협이 등장했다. 건강보험은 비용 최소화를 위해 감염 리스크가 큰 다인실을 사실상 장려했다. 대형 종합병원은 1~2인실을 호텔식 특실에 가깝게 만들어 수익을 올렸다. 환자들은 보험 적용이 되는 일반병실을 선호했지만 늘 만원이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1~2인실을 쓰곤 했다. 이런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1인실을 감염 관리라는 의학적 목적보다는 병원의 돈벌이 목적으로 받아들였다. 정부는 여론에 반응한다. 올해 9월부터는 대형 종합병원의 일반병실 확보 의무비율이 50%에서 70%로 높아진다.

이런 와중에 ‘감염 관리를 위한 1인실’이라는 의학적 접근법은 설 자리를 잃었다. 예방의학 전문가인 황승식 교수(인하대 예방의학과)는 “감염 예방은 공간 격리가 핵심이다. 좁고 간소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1인실로 입원실 인프라를 바꾸고 건강보험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감염 관리와 의료 공공성을 모두 잡으려면, 정부가 장려하는 다인실도 병원이 추구하는 호텔식 1인실도 답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렇게 해도 현재의 호텔식 1인실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재정 부담은 추가된다. 그동안 없는 셈 쳤던 리스크 관리 비용이 반영되는 결과다.

간병 역시 의료기관의 전문 영역이지만, 그동안 한국 의료 시스템은 이를 가족에게 떠넘겼다. 건강보험 체계에서 간병은 수가로 보상받지 못한다. 만성적 저수가 구조에서 병원은 인력 운영을 최소화하면서 비용 절감으로 대응한다. 간호 인력은 간병은커녕 의료 보조 업무만으로도 허덕이도록 최소한으로 유지한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겠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포괄간호제’다. 제도의 취지는 간병을 간호사가 전담토록 해 전문적인 의료 영역으로 다시 끌어들이자는 것이다. 이 제도를 시행하려면 간호 인력 6만5000명이 더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는데, 의료계는 정부가 이만큼의 추가비용을 수가로 보전해줄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추가 지출이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여론은 건강보험료 인상에 극히 적대적이다.
 

다시 한번 기묘한 균형이 등장한다. 병원은 간병 업무를 가족에게 떨어낸다. 정부도 그 덕에 간병 업무를 건강보험으로 보전해줄 필요가 없다. 부담은 환자 가족에게로 전가되고, 가족들은 ‘다인실-비전문가 간병’ 조합으로 비용을 최소화해 방어한다.

누구도 비용을 부담하려 들지 않을 때,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당장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안전 관리 비용이다. 시스템은 갈수록 위험을 감수하는 방향으로 미끄러져 가다가, 위험성이 아주 치명적이라고 하기도 힘든 메르스 한 방에 간단히 휘청거렸다.

‘빅5’로 몰리는 ‘과적’ 의료전달체계

1번 환자는 충남·경기·서울의 병원 네 군데를 돌아다닌 뒤에야 메르스 판정을 받았다. 14번 환자와 16번 환자는 병원 세 군데를 돌아다니며 서울과 대전에 메르스를 확산시켰다. 감염병 환자를 ‘슈퍼 전파자’로 만드는 핵심은 이 걷잡을 수 없는 이동성이다. 병원 내 감염은 잘만 대응하면 병원 담벼락 안에서 차단할 수 있지만, 감염자가 제 발로 돌아다니면 사실상 대응책이 없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의료기관을 찾는 환자는 마음대로 ‘서울의 큰 병원’(대형 종합병원)으로 갈 수 없다. 고도의 전문성과 고가 장비가 필요하지 않은 경증 환자는 동네 의원이나 중형 병원에서 치료한다. 이 단계에서 대형 병원의 진료가 필요하다고 의사가 판단하면 소견서를 써서 3차 의료기관인 대형 종합병원으로 보낸다. 이를 의료전달체계라고 부른다.

왜 이렇게 제도로 장벽을 쌓을까. 의료는 건강보험 체계 때문에 가격을 통해 자원 배분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 치료가 어렵지 않은 경증 환자도 대형 병원으로 몰리는 자원 왜곡이 일어난다. 의료는 공공재 성격이 있으므로 이런 식의 낭비는 막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제도의 취지다.

하지만 의료전달체계 원칙이 현실에서는 이미 유명무실하다. 환자들은 ‘서울의 큰 병원’을 압도적으로 선호한다. 의료 서비스의 품질은 환자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브랜드의 힘이 위력을 발휘한다. 이른바 빅5 대형 종합병원(삼성서울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대병원·서울성모병원·서울아산병원)이 대표적이다.

일선 개업의들도 환자의 요구를 웬만하면 들어준다. 대학병원에서 일했던 한 내과 전문의는 “의사들은 아무리 쉬운 사례라도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환자가 원하면 소견서를 써서 대형 병원으로 보내는 게 마음 편하다”라고 말했다. “아예 소견서도 쓰지 않고 구급차 불러서 응급실로 보내는 경우도 있다. 이런 걸 ‘쏜다’고 하는데, 응급실은 거부권이 없고 무조건 받아야 하니까.” 이제 감염병은 극도로 이동성 높은 환자를 타고 병원 순례를 다니게 된다.

14번 환자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사흘 동안 머물렀다. 응급실은 그야말로 긴급한 환자를 받아서 응급처치를 한 후 집으로 보내거나 입원을 시키거나 하는 곳이다. 그런데 대형 병원이 만성 과포화에 시달리기 때문에, 14번 환자와 같이 응급실에 사흘씩 머무르는 ‘응급실 입원’이 현실에서는 흔하다. 응급실이 사실상 저등급 병실 구실을 한다. 다인실 리스크는 응급실로 오면 훨씬 증폭된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접촉으로, 단일 감염원 중 가장 많은 확진자 59명이 나왔다.

이렇게 보면 대형 종합병원도 의료전달체계가 복원되어 장벽이 생겨야 숨통이 트일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형 병원도 중증 환자 중심의 체제 개편을 반기지 않는다. 현재의 건강보험 수가구조에서 응급실과 중환자실 수가는 원가에 한참 못 미친다. 중환자실은 병상 하나마다 한 해 8000만원씩 적자라는 것이 의료계에서 통용되는 이야기다. 중환자실 병상을 티 안 나게 줄이는 것이 대형 병원의 경영 전략이 될 정도다. 앞서의 내과 전문의는 “경영 관점에서 보면 중환자실은 ‘미끼 상품’이다. 대형 병원 수익은 외래 진료와 부대사업에서 나온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한 대형 병원의 6인실. 예방의학 전문가들은 한국의 다인실이 감염병 확산의 주범이라고 말한다.

외래 진료는 ‘규모의 경제’가 관철된다. 의료수가는 진료 건수대로 일괄 책정되는데 핵심 비용인 인건비는 고정비다. 병원 경영자의 관점에서 보면, 외래 진료를 최대한 많이 돌릴수록 수익이 올라간다. 웬만하면 보내는 1차 의료기관과 웬만하면 받는 3차 의료기관의 이해관계는 이렇게 만나고, 브랜드를 신뢰할 수밖에 없는 환자들은 기꺼이 이 파이프라인을 타고 대형 병원으로 흘러간다.

모두가 나름의 합리적 판단으로 움직인다. 그 결과는 지독한 ‘과적’이었다. 황승식 교수는 “온 국민이 ‘빅5’에 올라탄 과적 상태로 의료 시스템이 항해하고 있다”라고 표현했다. 과적은 차라리 한국 사회에 보편적인 수익 모델인데, 리스크를 없는 셈 쳐서 비용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과적 모델의 핵심이다.

누가 어떻게 안전 비용을 낼 것인가

비용을 최대한 절감해 기본 의료 서비스를 널리 제공하는 것은 개발 국가 시절에는 일리가 있는 전략이었다. 국가 재정은 공공 의료를 공급할 여력이 없었고, 시민 대다수는 높은 건강보험료를 감당할 수 없었다. 보험료는 최소한으로 억제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건강보험 체계는 민간 의료 시장을 저수가로 묶어두는 대신 ‘3분 진료’ 물량공세, 비급여 진료, 부대사업 등의 방식으로 수익을 보전하도록 했다. 25년을 이어온 이 저비용 구조는 안전 비용을 체계적으로 무시했다.

의료 소비자는 비급여 진료비, 실손보험료, 간병비 등의 형태로 낮은 건강보험료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메르스 쇼크를 계기로 차라리 저비용 구조를 적정비용 구조로 바꾸자는 제안도 그래서 등장한다. 건강보험료를 더 내는 대신, 보험 적용 범위를 늘려서 민간 보험이나 간병비로 빠지는 ‘뒤로 밑지는 장사’를 멈추자는 논리다. 이렇게 확보되는 추가 재원은 의료계를 비용 절감 압력에서 건져낼 수도 있고, 아예 국가가 공공 의료 투자를 늘리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될 수도 있다. 이 전략에는 조세 저항에 준하는 ‘건보료 저항’을 뛰어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난관이 있다.

안전에는 돈이 든다. 한국 사회가 되풀이해 배우고 또 잊어버리는 교훈이다. 평시에는 그럭저럭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던 시스템의 약한 고리를 메르스는 정밀 타격했다. 안전 비용을 얼버무리는 오래된 습관이 또다시 폭로되었다. 이번 일격이 시스템을 재기 불능에 빠트릴 정도로 치명적이지는 않았지만, 다음에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