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법관 임용 예정자들을 면접조사해온 사실이 SBS 보도로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견해를 묻기도 했단다. 사상 검증이 오만이라면, 정보기관이면서 그걸 들키기까지 한 것은 무능이다.

이 조직이 기록한 무능의 역사는 정치 편향을 둘째 문제로 보이게 만들 지경이다. 2013년에는 노무현·김정일 정상회의록을 NLL 포기 선언으로 읽었다. ‘창조독해’였다. 2012년 대선 때에는 국정원 요원이 민간인의 미행에 오피스텔 위치를 파악당하고도 까맣게 모른 채 구국의 댓글 활동에 열중했다. 그 후폭풍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정권 성패를 결정한다는 임기 첫해를 날려먹었다. 2011년에는 12월17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정보를 놓쳤다. 이틀 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고깔모자를 쓴 생일파티 사진을 내보냈다가, 직후 김정일 사망 소식이 타전되어 국제 망신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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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무능과 어리바리함을 파트너들은 비싸게 갚아왔다. 이번에는 대법원이다. 대법원이 국정원에 예비 법관 면접을 의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법조계는 발칵 뒤집혔다.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는 인사의 독립성을 헌법으로 보장받는다. 대법원은 헌법이 준 권능을 행정부의 일개 정보기관과 나눠 가졌다.

권위 추락이 새삼스럽지는 않다. 사법부의 정점이라는 대법관 출신이 행정부에 가서 총리도 하고 다시 개업해서 전관 변호사도 하는 시절이다. 대법관과 총리를 거친 김황식 변호사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 개입 재판 변호를 맡았다. 인사 검증 서비스와 법률 서비스를 창의적으로 맞교환하는 창조경제의 모범 사례다.

신영철 전 대법관(사진 왼쪽)은 재임 시절 재판에 개입하는 이메일을 보내고, 촛불집회 사건을 보수 성향의 재판부에 몰아주기 배당해 사법파동을 일으킨 인물이다. 사법부 안팎의 거센 사퇴 요구를 용케 뭉개고 임기를 다 채워서 퇴임했다. 퇴임 후에 단국대 석좌교수로 간 그는 학생들의 반대 집회에 올해 4월 사의를 표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사퇴서를 내지도 않았고 단국대로부터 급여도 받고 있다고 〈뉴스타파〉가 보도했다. 버티기 솜씨만은 사법부 제일이었는데, 녹슬지 않은 모양이다.

신 전 대법관의 후임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검사 출신 박상옥 대법관(사진 오른쪽)이다. 인사청문회와 국회 인준 과정에서 박상옥 후보자는, 대법관의 자질은 모르겠고, 청출어람 소리가 절로 나오는 버티기로 신영철의 후계자 자격만은 넘치게 증명했다. 그의 대법관 임기는 5년11개월 남았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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