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8일. MBC 노조는 170일간의 파업을 끝내고 업무에 복귀하기로 선언했다. 여야가 19대 국회 개원 합의를 하면서 ‘8월 초 구성될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가 신속한 정상화를 위해 합리적 경영 판단 및 상식과 순리에 따라 처리하도록 협조하고 언론 관련 청문회가 문방위에서 개최되도록 노력한다’고 합의한 이후였다. 파업이 끝나고 40여 일이 지났다. 하지만 파업 이후에도 MBC 상황은 뒤숭숭하다.

해고 6명, 정직 38명, 대기발령 54명 등 파업의 흔적은 무더기 징계로 남았다. MBC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기존에 하던 업무 말고 용인 드라미아, 사회공헌실, 경인지사, 신사옥건설국, 미래전략실 등으로 전보 발령된 이까지 포함해 140여 명이 ‘업무 복귀’를 못하고 있다. 9월 첫 주까지도 계속 인사발령이 날 것으로 보인다. 파업 이후에도 노조의 표현대로 ‘인사 보복’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사IN 자료파업 68일째인 4월6일 20년 이상 근무한 MBC 고참 직원들이 방송국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파업이 끝나고 회사 측의 무더기 징계가 내려졌다.

파업 참가자 전원 최하위 등급

지난 8월9일 MBC는 2012년도 상반기 업적평가 결과를 통보했다. 개인평가는 S, T, O, R 네 등급으로 나뉘는데,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 전원(약 770명)에게 최하 등급인 R등급을 부여했다. 통상 R등급 해당자는 1% 정도였다. 김재철 사장이 R등급을 5% 강제 할당한 적은 있었는데, 파업 종료 이후 ‘무더기 R등급 평가’를 내린 것이다. R등급을 받은 사람은 사규에 따라 재교육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런 사규에 따라 MBC는 지난 8월18일 기자 9명, 아나운서 2명, 시사교양 PD 4명, 라디오 PD 2명, 카메라 감독 1명, 카메라 기자 2명 등 20명에게 3개월 교육 발령을 냈다. 1개월 정직이 끝나가는 이들과 1차로 대기발령을 받았던 이들이다. 이우호 전 논설주간, 이정식 한국PD연합회 차기 회장, 임대근 전 방송기자연합회장, 박경추·김완태 아나운서, 김연국·왕종명·김수진 기자, 임경식·김동희·서정문 전 〈PD 수첩〉 프로듀서 등이 포함돼 있다. 교육을 받고 있는 한 조합원은 이를 ‘삼청교육대’에 빗대 ‘신천교육대’라고 표현했다. 교육이 신천(서울 잠실)에 위치한 MBC 아카데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8월30일, 이들은 직무 재교육의 일환으로 ‘브런치’를 만드는 교육을 받았다. MBC 노조의 한 관계자는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로 베테랑 방송인들이 직무 재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샌드위치를 만드는 교육을 받았다. 다음 날은 요가를 배웠다. 3개월 과정인데, 결국 11월 말 대선 전까지 이들을 배제하겠다는 의도다”라고 말했다.

그뿐 아니다. MBC는 파업 이후 〈PD 수첩〉 작가들을 해고했다(40~41쪽 딸린 기사 참조). 8월21일 재개하기로 했던 〈PD 수첩〉은 이로 인해 계속 불방되고 있다. 한국방송작가협회는 이에 대한 항의로 〈PD 수첩〉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보이콧’ 선언을 한 상태이다. 또 보도영상 부문 조직을 폐지하는 개편을 하면서 영상 취재 기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MBC 노조 관계자는 “영상 취재 기자들이 파업에 주도적으로 참가해왔는데, 이에 대한 보복성 조직 개편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파업 이후 드라마와 예능은 건드리지 않고, 시사교양과 보도 부문을 ‘타이트하게’ 통제하고 있다. 정치부와 사회부는 파업 불참자와 ‘시용기자’들로 채웠다. 뉴스가 제대로 나갈 리가 없다. 대선 때까지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MBC 노조가 보기에, 여야가 합의한 ‘정상화’는 곧 ‘김재철 사장 퇴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MBC 노조 관계자는 “8월 중에 김재철 사장 문제가 정리되는 줄 알았는데, 미루어지니까 조합원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8월27일 김재우 이사장이 9기 방문진 신임 이사장으로 ‘조건부 연임’된 것도 노조로서는 좋지 않은 신호다. 김 이사장은 논문 표절, 법인카드 남용 등 논란으로 이사장 연임이 불투명했다. 그러나 ‘단국대에서 조사 결과가 나오면 이 자리에 있지 않겠다’는 선에서 ‘조건부 연임’이 결정되었다. 김 이사장은 김광동·차기환 이사 등과 함께 김재철 사장의 손을 들어준 8기 이사 출신이다. 김광동·차기환 이사는 9기 이사로 재선임됐다.


김재철 사장의 시간 끌기 전략

파업 이후, 김재철 사장은 ‘새 방문진이 경영 평가를 하려면 한 달은 걸린다. 회사 일정 등으로 방문진 회의에 두 번 정도 빠지게 되면 10월 중순으로 넘어가는데, 그렇게 되면 대선을 코앞에 두고 공영방송사 사장 교체가 이슈화되기 어렵다. 임기를 끝까지 채운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방문진은 모두 9명의 이사로 구성되는데(여당 추천 6명, 야당 추천 3명), 이 중 야권 추천 몫인 최강욱 이사는 “김재철 사장이 시간 끌기를 하려고 했다”라고 말했다. 김 사장이 9월20일 이후에 업무 보고를 하는 게 어떠냐고 하기에, 회의에 출석해 이유를 설명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노조 안팎에서는 김재철 사장 해임안이 상정될 경우 여권 추천 몫 이사 6명 중 1명인 김충일 이사(〈경향신문〉 출신)가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는 말도 들려온다. 김재우 이사장 연임이 결정되던 날, 여권 몫 이사 6명이 따로 모여 회의를 하는 바람에 방문진 회의가 30분여 지연된 일이 있었는데 이 모임을 김충일 이사가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문진 이사회는 첫째·셋째 주 목요일 오후 3시에 하게 되어 있는데, 9월6일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회의를 열기로 했다. 9월6일에 업무 보고가 시작되고, 이날 김재철 사장과 관련한 진상조사 소위원회 구성을 논의할 계획이다. MBC의 ‘파행’이 언제 종료될지, 매주 목요일 열릴 방문진 이사회에 사회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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