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자마자 달걀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머니의 사체가 누워 있던 8개월의 흔적은 냄새로 남았다. 지난 3월20일 서울 광진구 ㄱ고교 3학년생 하승우군(가명·18)은 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어머니 박 아무개씨(51)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 하군은 8개월 동안 사체를 안방에 둔 채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학교를 다녔다. 사건은 5년 전부터 별거 중이던 아버지가 집에 찾아온 11월23일이 되어서야 세상에 드러났다.

지난 12월1일 찾은 승우네 집은 거대한 쓰레기장이나 다름없었다. 105㎡(32평) 빌라의 거실 바닥에는 과자 봉지, 주전자, 이불, 책 따위가 한데 엉켜 너저분했다. 그 사이에 그동안 승우가 잠을 청한 2인용 전기매트가 놓여 있었다. 집 안 세간은 모두 승우를 위한 것이었다. 책상 두 개, 책꽂이에 꽂힌 위인전기, 해리포터 시리즈, 성문종합영어, 교과·토익 문제지….


벽에 붙은 서울대 캠퍼스 그림

집 안 벽에는 ‘17세 공부법’ ‘청해·문법·어휘·독해 공부법’ ‘신문→독서→사탐 공부…’ 등 학습 요령이 적힌 종이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승우가 일곱 살 때 부모와 함께 서울대에 놀러 갔다가 그렸다는 서울대 캠퍼스 전경 그림도 ‘서울대학교’라는 글씨와 함께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가족사진도 보였다. 승우와 어머니, 단둘이었다. 나무 기둥에 기대어 아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 박씨는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시사IN 윤무영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하승우군(가명)이 12월1일 서울 성동구치소로 이송되고 있다.

 


승우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어머니의 바람대로 모범생으로 살아왔다. 승우가 다니는 ㄱ고등학교 부장 교사는 “승우는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이었다. 기대가 컸다”라고 말했다. 중학교 3년 내내 성적우수상, 고등학교에서 시행한 영어경시대회를 비롯해 외부에서 주관하는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도 수없이 입상했다. 2009년에는 광진구청장이 주는 모범학생 표창장도 받았다. 한 이웃 주민은 “인사도 잘 하고 예의가 발랐다”라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영어를 잘했던 승우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영어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다. 영어 신문을 만들면서 모든 친구의 영어 기사를 검토해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장래 희망도 영어 선생님이었다. 어머니는 승우가 외교관이 되기를 바랐다. 한 학교 친구는 “승우는 영어만은 다른 선생님보다 잘 설명해줬다”라고 말했다.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했던 한 친구는 “영어 동아리 활동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모임이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참석했으며 후배들에게 특히 잘해줬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승우는 마냥 평범한 아이는 아니었다. 승우의 한 친구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속을 잘 알 수 없었다. 가끔씩 이해 못할 행동을 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학교에 화약을 가져와 복도에서 불을 붙이는 바람에 친구들 사이에서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중학교 때는 같은 반 친구들이 체육복을 갈아입으면서 승우의 피멍 든 다리를 보았다. 이유를 물었지만 승우는 대꾸하지 않았다. 같은 학교 출신인 한 친구는 “그때부터 승우가 집안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하루 전날인 3월19일에도 어머니는 승우를 때렸다고 한다. “너 맞아야겠다.” 잔소리는 어머니의 체벌을 알리는 신호였다. 고3인데도 너무 나태하고 의지가 약하다는 게 이유였다. 승우는 자연스럽게 ‘맞을 때 입는 솜바지’로 갈아입고 거실에 꿇어앉았다. 체벌은 밤 10시부터 이튿날 오전 8시까지 이어졌다. 어머니는 골프채를 두 손으로 쥐고 수직으로 승우의 엉덩이를 내리쳤다. 승우는 새벽 1시·4시·6시 3차례에 걸쳐 40여 대씩 총 120여 대를 맞았다. 솜바지의 왼쪽 엉덩이 부위가 찢겼다. 살점이 떨어져나가 피가 나면서 골프채에 피가 묻었다.

기나긴 매질이 끝나자 어머니는 아침잠이 들었다. 승우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오전 11시, 부엌에 있던 칼을 들고 안방에 들어갔다. 경찰에 따르면, 승우는 안방 문 가까이에서 잠들어 있던 어머니의 얼굴을 칼로 찔렀다. 잠에서 깬 어머니는 승우의 머리를 잡으며 “너 왜 이러느냐, 이러면 잘못된 삶을 사는 거야”라고 말했다. “엄마는 몰라. 내일이면 엄마는 날 죽일 거야.” 목을 조른 뒤 다시 목을 찔렀다. 어머니가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승우는 칼을 두고 방문을 닫았다. 일주일 뒤, 이불을 꺼내기 위해 안방 문을 열었을 때 어머니는 피가 흥건한 이불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옷장에서 이불을 꺼내 나왔다. 엄마를 보았으나 무섭지 않고 오히려 덤덤했다고 그는 증언했다. 다음 날 피가 묻은 옷가지를 세탁했다.

어머니는 늘 좋은 성적을 원했다. 승우도 따랐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토익 900점을 넘겼다. 중학교에 진학해 반에서 1∼2등을 했다. 중3이 되면서 달라졌다. 점수가 많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승우는 두려워졌다. 성적표를 조작했다. 상황은 더 악화됐다. 어머니가 이를 알아챈 것이다. 승우는 “죽도록 맞았다”라고 그때를 회상했다.

고등학교 진학 이후 전국 모의고사 등수는 매번 편차가 심했다. 첫 시험 결과가 전국 4000등이었지만 다음 시험에서는 2만 등이었다. 어머니가 무서웠다. 승우는 성적표를 계속 위조해야 했다. 2500등, 1500등, 700등, 500등, 250등, 67등, 62등으로 점차 향상되는 성적표를 어머니 앞에 내보였다. 어머니는 더 기대했다. “우리 승우는 전국 1등도 할 수 있는 애야.” 승우의 두려움은 극에 달했다. 승우가 어머니를 살해한 3월20일은 학교 학부모 총회를 이틀 앞둔 날이었다. 어머니가 담임 선생님과 면담하면서 자신의 실제 성적을 알게 될 것이 두려웠다. 승우의 두려움이 살인을 낳은 것이다.

 

 

 

 

 

 

ⓒ시사IN 윤무영하군의 어머니가 웃고 있는 사진은 비비탄 총에 맞아 금이 갔다.

 

 

승우가 처음부터 어머니에게 맞았던 것은 아니다. 매질이 본격화된 건 5년 전 즈음이다. 아버지와 별거가 시작된 시점이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정식으로 이혼을 요청한 올해 초부터는 체벌의 강도가 한층 강해졌다. 승우의 아버지 하씨(가명·52)는 승우에게 먼 존재였다. 승우가 태어난 지 1년 만에 가출해 6개월을 떨어져 살았고, 그 뒤로도 이따금씩 집을 나갔다. 승우의 이모(41)는 “그럴수록 언니(박씨)가 아들과 아들 성적에 집착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족 모두 친인척과 인연 끊고 살아

승우의 어머니 박씨는 일찍이 모친을 여의었다. 열다섯 살이던 박씨가 다섯 살 막내를 포함해 세 동생을 모두 돌봤다. 박씨의 아버지는 두 남동생만 극진히 아꼈다고 한다. 박씨의 막내 동생인 승우 이모는 “언니는 고집이 셌다. 혼자 힘으로 서울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유학도 다녀왔다. 하지만 그만큼 외로웠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따금 승우 아버지와 싸울 때면 박씨는 벽에 머리를 찧는 등 분을 삭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승우가 태어난 직후 친정과 인연을 끊었다. 승우 아버지 역시 승우가 네 살이 될 무렵부터 친인척과 왕래를 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한 가정에서도, 다른 친척들 사이에서도 철저한 외톨이였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결국 승우가 중학생이 되면서 본격적인 별거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승우는 추석이나 설날에도 어머니와 단둘이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 박씨는 외부 활동을 일절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고가 난 3월20일부터 아버지가 실종 신고를 한 11월18일까지 그녀의 자취를 궁금해하거나 수상히 여긴 사람은 없었다. 박씨는 승우가 태어난 경기도 부천에서 시작해 안양, 서울 청량리·잠실·신림동·둔촌동·구의동에 이르기까지 뚜렷한 연고 없이 자주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승우가 “엄마는 가출했다”라고 말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승우 아버지는 아내가 외부 사람과 관계 맺기를 꺼려하는 성격이어서 한곳에 오래 정착하려 들지를 않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외부와 관계가 단절된 박씨에게는 오직 승우밖에 없었다. 승우 역시 이 사실을 잘 알았기에 어머니에게 반항하지 않았다. 경찰서에서 승우를 만난 이모가 “차라리 도망가지 그랬니?”라고 묻자 승우는 “도망갈 곳이 없었다”라고 대답했다. 어머니를 죽이고 3개월이 흐른 지난 6월, 자전거를 타고 가던 승우는 자동차 사고를 크게 당했다. 병원 측은 치료를 위해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승우는 “엄마는 전화 안 받을 거고, 아빠는 소용없을 거다”라는 말로 연락을 거부했다. 결국 병원 측이 알아낸 아버지의 연락처로 소식을 전하고 나서야 부자가 만났다. 2년 만이었다.

 

 

 

 

 

 

 

ⓒ시사IN 윤무영하군이 8개월 동안 지낸 집 안. 표창원 경찰대학 교수는 하군 집의 내부 사진을 본 뒤 “삶 자체에 대한 흥미를 상실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어머니를 죽인 뒤 이틀 동안 승우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4월에는 한 달 중 보름 이상을 결석했다. 오랜만에 학교에 갔을 때 담임 선생님에게 “엄마와 따로 살기로 했다. 성적과 이성 친구에 대한 고민이 있다”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방치된 지 3주쯤 지나, 안방 문틈 사이로 시체 썩는 냄새가 새어나왔다. 문구점에서 공업용 본드를 사서 안방 문틈에 발랐다. 한 이웃 주민은 “승우 친구들이 자주 놀러 와서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놀았기 때문에 이상한 점을 눈치 채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승우는 안방에서 죽은 엄마를 그대로 두고 바로 옆 거실에서 친구들을 불러 컴퓨터 게임을 하고 라면을 끓여 먹고 피아노를 치며 놀았다. 그 사이에 “엄마가 살아 있었으면 꿈도 못 꿨을” 여자 친구도 두 명이나 사귀었다.

승우는 여자 친구에게 집착했다. 지난 5월 여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는 “요즘 투검술 연습을 한다. 누가 내 여자 친구를 건드리면 투검 3개와 수리검 5개를 배에 꽂아주겠다”라고 적혀 있었다. 여자 친구와 다퉜을 때에는 “안 만나주면 네 앞에서 죽어버릴 것이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경찰 “정신적 문제 없다”

승우는 ‘무기 마니아’이기도 했다. 살인을 저지른 뒤부터 아버지가 어머니 통장으로 매달 150여 만원씩 보내온 생활비로 활·일본 칼·서바이벌 총·야구방망이·투검·수리검·표창·비비탄 따위 무기를 사 모았다. 특히 수리검과 투검으로 ‘다트 게임’을 즐겼다. 게임판이 된 방문에는 사인펜으로 그린 사람의 형상이 선명했다. 인터넷 총 판매 사이트에도 자주 드나들었다. ‘전동 핸드건용 파워스프링’ 재입고 여부를 묻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경찰대 표창원 교수(범죄심리학자)는 “타인에 의해 남성성이 훼손된 사람이 무기류에 집착하는 경향이 높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 무기를 소장하면서 자기 위안을 삼는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사체로 발견되기 직전인 지난 11월22일 밤 11시30분께, 승우가 끝까지 집 문을 열지 않는 점을 수상히 여긴 아버지가 119 구급대를 불렀다. 경찰이 함께 출동했다. 승우가 사시나무 떨듯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엄마가 안에 있니?” 아버지가 물었다. 승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실 전기 매트 위에 털썩 주저앉은 승우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이미 반 이상 넋을 잃은 상태였다. “아빠,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나 안 버릴 거지?” 승우의 목소리는 크게 떨렸다.

12월1일 경찰은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승우를 조사한 경찰관은 “프로파일링 조사 결과 아이에게 정신적 문제 등 특이 사항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머니가 학교에 가면 위조한 성적이 들킬까봐 심한 압박을 받아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아버지와의 최초 면회에서 승우는 “아빠를 못 믿었다. 버려질 것이 두려웠다”라고 말했다. 승우에게 어머니는 자기를 때리는 증오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유일한 애착 관계를 맺고 있는 가족이기도 했다. 어머니 시신과 동거한 8개월 동안 승우는 매일 밤 꿈에서 엄마를 만났다고 했다. 승우는 뒤늦게 “후회한다. 자살도 떠올랐지만 뻔뻔스럽게 살아왔다”라고 말했다. 이젠 승우 곁에 어머니 외의 다른 가족이 있다. 아버지, 큰아버지, 고모, 이모, 그리고 승우를 걱정하는 학교 선생님과 친구, 이웃들까지.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열여덟 살 소년이 살인범이 되는 동안 그의 손을 잡아준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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